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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독립에 모든 것 바친 '위대한 집안'이 수원에 있었네
김우영/시인, 언론인
2018-02-28 14:12:13최종 업데이트 : 2018-03-02 16:38:31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기자

'독립운동을 하면 삼대가...'라는 말이 있다. 목숨과 재산, 모든 것을 이 나라에 바쳐 헌신한 독립투사들의 후손은 넉넉지 못한 삶을 살고 있다. 반면 많은 친일파 후손들은 정치·경제·문화·학문 등 각계의 주류로서 부족한 것 없이 살고 있다.

임병무란 친구가 있다. 나이는 나보다 두어 살 많지만 워낙 사람이 좋은데다 내가 그의 시집 해설을 써준 인연으로 절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이 친구가 한번은 서류봉투에서 무언가를 주섬주섬 꺼내 놓았다. 그의 할아버지 필동 임면수 선생에 관한 기록이었다. 그때까지 나는 필동 선생의 존재를 잘 모르고 있었다. (사)화성연구회 활동을 하면서 수원의 역사에 관해서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해왔었는데 내 눈앞에 있는 이 친구의 할아버지, 삼일학교를 설립하고 국채보상운동과 만주 신흥무관학교 운영에 앞장선 필동 임면수(必東 林勉洙, 1874~1930) 선생을 잘 모르고 있었다니...그저 '삼일학교 운동장에 있는 무덤의 주인으로서 학교 설립과 관련된 인물' 정도로만 알고 있었다.

 

임병무 시인은 조심스럽게 할아버지의 독립운동 이야기를 들려줬는데 그저 부끄러울 따름이었다. 그 이야기와 자료를 토대로 2000년 내가 주간이었던 수원시정신문 '늘푸른수원'에 '애국지사 임면수 선생, 일제 항거 독립투사, 교육선각자의 삶'이란 일대기를 썼다. 그리고 극단 성에서 2003년과 2004년 청소년극 '임면수'를 올리기도 했다. 그럼에도 선생의 이름은 수원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필동 임면수 선생

​필동 임면수 선생

세간에 회자되고 있는 말처럼 '3대가 가난하게 살고 있는 독립투사의 후손'이 그였다. 그는 14년 전 뇌수술을 3차례나 받았다. 그 후유증으로 말투도 어눌해지고 기억력도 나빠져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직장도 잡을 수 없어서 집안 형편이 말이 아니다. 아내가 식당일 등 힘든 노동을 하면서 근근이 가계를 꾸려가고 있다.

13년 전 나는 경기신문에 임병무 시인의 딱한 사정을 소개하고 "독립유공자 후손들은 경제적으로 궁핍한 생활을 하기 때문에 질 높은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었고, 이에 따라 경쟁에서 뒤처질 수밖에 없다. 특별법이라도 만들어야 한다. 독립유공자들을 제대로 예우하지 못하는 국가...친일파 후손들이 득세를 하고 정작 국가를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유공자와 그 후손들을 모른 체 하는 나라에 애정을 갖고 충성을 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라는 내용의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친일파와 그 후손들이 득세하고 독립유공자와 후손들을 적극 예우하지 않는 한 이 나라의 미래는 어둡다. 중국 삼국시대 조조의 위나라가 강성했던 이유는 나라를 위해 싸우다 죽은 장병들의 가족들을 책임지는 보훈 제도가 잘 돼있었기 때문이다.

 

전기한 것처럼 임병무 시인의 할아버지 임면수 선생은 일제 강점기 만주에 설립된, 독립군 지도자를 양성하는 사관학교인 신흥무관학교(양성중학교) 교장을 지낸 유명한 항일투사였다. 이곳 출신 독립군 간부들은 죽음을 두려워 않고 용감하게 전투에 임했다고 한다.

임면수 선생은 수원지역의 대표적인 계몽 운동가이기도 했다. 수원 삼일학교 설립자 중 한 명이었으며 수원지역 국채보상운동을 주도하기도 했다.

선생은 서울 상동교회와 상동청년학원에서 민족 목회자 전덕기(全德基) 목사, 이동휘(李東輝), 이회영(李會榮) 선생 등 수많은 애국지사들과 만났다.

이후 1910년 일제 강점기가 시작되자 젖먹이와 갓 걸음마를 시작한 어린 아이들을 이끌고 만주로 망명한다. 그리고 통화현 합니하(哈泥河)에 개교한 제2의 신흥무관학교인 양성중학교 교장으로서 독립군을 양성했다. 무장 결사대의 일원으로 현장에서 활동하다가 일제에 의해 체포됐다.

1921년 밀정의 고발로 체포된 후 심한 고문으로 인해 반신불수가 되어 1922년 수원으로 돌아왔다. 그런 상태에서도 삼일학교에 아담스기념관(1923)을 건축하고, 1924년 수원 최초 수원유치원 발기인으로 참여하는가 하면, 수원소작인상조회 조직을 이끄는 등 열정적으로 교육운동과 시민운동을 지속적으로 전개했지만 안타깝게도 1930년 56세로 순국했다. 고문의 후유증이었다.

 

선생의 장남은 독립군 군자금을 운반하다 만주벌판에서 동사했다. 당시 20세였다.

부인 전현석 여사도 '부창부수' 독립운동의 길을 걸었다. 혁명투사의 아내로서 독립운동의 거점지인 객주업을 하며 손수 지은 밥을 독립 운동가들에게 제공하고 빨래도 해줬다. 이런 희생과 헌신으로 '독립군의 어머니'라 칭송받았다. 내가 신문의 사설에도 쓴 바 있지만 한마디로 '조국 독립을 위해 생명과 재산, 모든 것을 바친 위대한 집안'이었다.

 

1964년 4월 삼일학교 탄생 90주년을 맞아 교내에 묘비가 건립되고, 1980년엔 대통령표창을, 1990년엔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됐고, 묘소는 국립 현충원으로 이장됐다. 그리고 2015년 2월 '독립운동가 필동 임면수 선생 기념사업추진위원회'가 발족됐고, 선생의 정신을 되새기는 학술 세미나가 그해 7월 1일 수원문화재단에서 개최됐다. 8월 15일엔 수원시청 앞 올림픽공원에 시민 모금으로 선생의 동상도 건립됐다.

2015년 8월 15일 수원시청 앞 올림픽공원에 시민 모금으로 건립된 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 동상 왼쪽이 필동선생의 손자 임병무 시인이고 그 왼쪽은 염태영 수원시장이다.

2015년 8월 15일 수원시청 앞 올림픽공원에 시민 모금으로 건립된 필동 임면수 선생 동상. 동상 왼쪽이 필동선생의 손자 임병무 시인이고 그 왼쪽은 염태영 수원시장이다.(사진 수원시 포토뱅크/강제원)

수원시와 '수원시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사업 추진위원회'는 올해 3월 1일 오전 10시 화성행궁광장에서 '제99주년 3.1절 기념식 및 시민문화제'를 개최한다. 이 자리에서는 필동 임면수 선생의 삶을 다룬 뮤지컬 '백 년의 침묵'과 수원의 독립운동가들을 주제로 한 연극 '끝나지 않은 여정'이 공연된다.

 

3월엔 조국 독립을 위해 자신의 목숨마저 걸었던 임면수 선생 등 독립운동가들을 기억하자. 선열의 조국을 위한 뜨거운 열정과 노력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김우영, 조국, 독립, 임면수, 친일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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