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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성벽 위 느티나무 수령(樹齡)이 궁금하다
김우영 언론인
2021-12-20 09:32:31최종 업데이트 : 2021-12-20 13:41:17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성벽 위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그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성벽 위에 있는 거대한 느티나무. 그 옆에 있는 사람과 비교해보면 그 크기를 알 수 있다.

'글 감옥'에 갇혔던 올 한 해는 바빴지만 행복했다. 여기 저기 연재하는 칼럼과 사설을 써야 했고, 수원의 오래된 나무들에 관한 글을 써야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결과물은 지난 가을 '수원 역사 속의 나무들'(수원문화원)이란 책으로 출판됐다. 나는 '수원의 오래된 나무'를 썼고, 나무학자 김은경박사는 '조선시대 수원의 산림정책'을, 역사학자 이달호 박사는 '수원의 역사와 화성 신도시'를 집필했다.

 

나는 집필 후기 '나무와 사랑에 빠졌다'를 통해 나무와 만나던 감동을 이렇게 썼다.

 

"사진작업에 참여한 이용창 작가와 함께 수원시가 지정한 보호수와 노거수(老巨樹)들을 만났다. 북쪽으로는 노송지대, 서쪽으로는 호매실동 노송, 동쪽으로는 영통 청명중학교 옆 느티나무, 남쪽으로는 권선동 은행나무...차를 타지 않고 모두 걸어서 수차례 답사했다. 그래야 그 지역이 보이고 그 나무가 보이기 때문이다. 지역민들의 삶과 나무와의 관계를 살펴보려면 걸어서 답사하는 것이 옳다.

 

이 과정에서 큰 소득이 있었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또는 모르고 지나쳤던 오래된 나무들을 발견한 것이다. 80~100년 정도 되는 라일락 십 수 그루, 거대한 귀룽나무와 계수나무, 거대한 뽕나무, 100~150년 살았음직한 팽나무들도 확인했다...(중략)...이 책을 만들면서 나무와의 사랑에 빠졌다. 어떤 때는 내가 나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가 나를 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나는 눈으로 나무를 보면서 형체를 파악하고, 손으로 만지며 감촉을 느끼며, 코를 벌름거려 나무의 꽃냄새를 맡지만 나무는 멀리서도 전신으로 나를 느끼는 것 같다. 내 영혼의 상태까지도."

 

책이 출판되자 많은 사람들이 전화를 걸어 수고가 많았다고 격려해줬다. 반면 한 시민기자는 얼마 전 e수원뉴스에 발표한 '수원 역사 속의 나무'란 글을 통해 화성 성벽 위, 거대한 느티나무의 수령에 대해 의문을 나타냈다.

 

'수원화성 북서포루 안 내탁 부분에는 커다란 느티나무가 있다. 얼핏 보기에 몇 백 년은 되어 보인다. 그렇지만 1940년대와 1950년대 사진을 보면 느티나무가 안 보인다. 그 이후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데 심을 당시 100년 된 느티나무를 심지 않았다면 현재 느티나무의 나이는 그렇게 많지 않은 것이다.'

 

그러면서 '수원의 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역사적인 자료 등 고전적인 역사적 관점에 더해 사진 역사학, 통계학 등을 활용해야 오류를 줄일 수 있다.'고 했다. 아무렴, 지당한 말이다. 그의 지적처럼 자기모순에 빠지면 안 되고말고.

 

그래서 재차 확인 작업에 들어갔다.

 

먼저 과연 그의 주장대로 옛 사진 자료에 이 느티나무가 없는가를 확인했다.

 

이 사진은 장안문 문루가 사라진 것으로 보아 6.25 후 1950년 대 쯤에 찍은 것으로 보이는데 현재 느티나무가 있는 자리에 나무들이 보인다. 확대를 해보니 커다란 나무의 형상이 나타난다.

 

6.25후에 화서문과 북쪽 성벽을 찍은 사진

6.25후에 화서문과 북쪽 성벽을 찍은 사진

현재의 북쪽 성벽 모습

현재의 북쪽 성벽 모습

 

현재 사진을 확대했다. 옛 사진에 있는 나무가 저 느티나무다.

옛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큰 나무의 형태가 보인다.

옛 사진을 확대해 보았다.  큰 나무의 형태가 보인다.현재 사진을 확대했다. 옛 사진에 있는 나무가 저 느티나무다.

 

위 사진들을 비교해보면 사실여부가 밝혀진다

 

사진도 그렇지만 내가 수원북중학교 1학년 때인 1970년 내 눈으로 보고 들은 말이 있다, 이 나무 바로 아래에 있는 집에 김인환이란 내 친구가 살았다. 중학교에 다니는 동안 나는 장안문 밖 에 살았기 때문에 가끔 이 친구네 집에 놀러갔다. 갈 때마다 집 뒤에 는 거대한 느티나무에 반했다. "우리 시골 집 뒤에도 저렇게 큰 느티나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부러워했다.

 

내 친구의 아버지는 교통경찰이었는데 내 말을 듣고는 "동네 어른들로부터 이 나무가 100년이 훨씬 넘었다는 얘기를 들었다"고 전해주기도 했다. 그 기억은 어제 일처럼 또렷하다.

 

어찌됐거나 이 거대한 느티나무에 대해 나는 "흡사 수원화성을 지키는 든든한 장수 같다. 아니다. 어찌 보면 세계문화유산 화성 성신(城神)이 인자한 모습으로 현신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고 썼다.

 

어찌됐건 한 시민기자의 의문으로 인해 나 또한 궁금증을 다소나마 해소했다.

 

그는 궁금한 건 못 참는 사람이다. 문헌을 뒤지고 발품을 팔아 규명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인물이다. 나의 고등학교 후배이자 함께 (사)화성연구회에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코로나19가 오기 전까지 화성낙성연에 관한 기록을 찾고 고증을 거쳐 거의 완벽하게 재현하기도 했다.

 

나와 의견이 엇갈려 티격태격한 적이 있을 정도로 고집스러운 면이 있지만 그 고집이 오류를 바로 잡기도 했다.

 

그러고 보니 코로나19 이후 막걸리 잔 부딪힌 지도 꽤 오래됐구나.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자약력

 

 

공감칼럼, 느티나무, 역사 속의 나무, 김우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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