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인문칼럼] 동지 밤의 고샅을 돌아보며
정수자 시조시인
2021-12-22 10:55:07최종 업데이트 : 2021-12-22 18:21:34 작성자 :   e수원뉴스

인문칼럼

 

동지. 일 년 중에 밤이 제일 길다는 날이다. 팥죽을 쑤어 먹으며 역귀를 쫓아내는 동지 세시풍속이 있다. 요즘도 동지 즈음이면 '동지팥죽'이 거리에 많이 나붙어서 지나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길을 끈다. 추울 때 속이 따뜻해지는 팥죽이 역귀까지 물리친다니 같이 먹기에도 좋은 것이다.

 

동지 즈음이면 또 지나칠 수 없는 의례가 있다. 그 중 하나가 황진이의 '동짓달 기나긴 밤'을 읊어보고 넘어가기다. 이 시조는 교과서는 물론 TV드라마나 영화 같은 매체 출연이 아주 많았으니 웬만한 독자는 다 알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동지 무렵에 무슨 모임이라도 있으면 한번쯤은 소리 높여 외우는 사람이 나올 정도로 널리 즐기는 대중적 명성까지 쌓아온 명편이다.

 

동지(冬至)달 기나긴 밤 한 허리를 버혀내여

춘풍(春風) 니불 아래 서리서리 너헛다가

어론 님 오신날 밤이어든 구뷔구뷔 펴리라

 

원문 표기를 그대로 옮겨도 알아보는 가편. 이 시조를 두고 어느 국문학과 교수는 조선 이후 한국의 최고 명시로 꼽기도 했다. 그만큼 기나긴 밤의 허리를 베어내서 이불 아래 둔다는 발상이나 '봄바람 이불' 같은 언어 조합이 뛰어날 뿐 아니라 "서리서리"니 "구뷔구뷔"처럼 운율을 타고 노는 감각도 빼어나다. 45자 안팎의 구조에 맛깔나게 버무리는 가락과 참신한 이미지 조율이 다시 봐도 무릎을 치게 하는 것이다.

 

이렇듯 명편은 시간을 뛰어넘는다. 아니 시간이 갈수록 예술성이 빛난다.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는 것이다.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리며 가치를 더해가는 명작의 힘이다. 이 시조도 동지 때면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애송시로 이름값을 더해왔다. 우리의 말맛을 높이는 가락과 쉽게 입에 붙으며 전해지는 3장 형식도 한몫 거들었지 싶다. 예전에 우리가 시조 몇 수쯤은 술술 외웠듯, 짧은 노래 같은 시가 우리 핏속의 가락이나 정서에도 잘 어울리기 때문일 것이다.

 

동지 명시 불러내며 팥죽을 톺아보니 여러 모로 맛이 깊어진다. 그런데 방역 강화로 만날 수 있는 사람도 적어져 올해 역시 집에서 기나긴 동지 밤을 보내야 할 듯하다. 서로 깊이 그리운 사람들은 미뤄둔 책들 꺼내 읽다가 좋은 구절 만나서 톡 톡 나눈다면 더 오래 남는 만리장성을 쌓으리라. 그러고 보면 최근에 문학 응모작이 늘어난 것도 밖으로 나가기 어려울 때 안으로 더 들어가는 인문적 성향의 투영이다.

 

특히 밤이 길어지는 겨울에는 내면으로 향하는 읽기나 쓰기 같은 인문적 활동이 더 풍성해지는 것이다. 그런 동지 즈음에 자신의 내면을 돌아본다는 것은 한해 마무리에도 좋은 자기 점검이겠다. 더 깊이 보고 더 널리 보기 같은 돌아보기가 인문적 성찰의 기본이기도 하니 말이다. 그럴 때 돌아보기란 더 나은 앞을 위한 나아감의 한 방식이고 방향이다.

 

방역 강화로 더 길게 느껴지는 겨울밤. 지나온 날을 되짚고 애쓴 자신을 다독이며 나아갈 가닥을 잡아보는 것. 그런 밤을 보내노라면 이후 마음의 방역도 단단해질 것이다. 무릇 돌아보고 나아가기를 거듭하며 사람다운 삶 또한 풍요로워지는 것이려니.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자약력

 

동지, 팥죽, 황진이, 인문칼럼, 정수자


추천 8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독자의견전체 0

SNS 로그인 후, 댓글 작성이 가능합니다. icon 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