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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칼럼] 기념일의 이름값
정수자 시조시인
2021-11-07 14:07:26최종 업데이트 : 2021-11-07 14:06:13 작성자 :   e수원뉴스

인문칼럼

 

달력을 보면 기념일이 퍽 많다. 무슨 이름 붙인 날이 이리 많은가 싶다. 예전에 농사 절기를 중시했던 것과 다른 기억의 날도 늘었다. 이번 주만 봐도 '입동'부터 '소방의 날'에 '농업인의 날'까지 있어 하루건너 기념일인 셈이다. 입동 때면 '소방'과 '농업인'이 다 관련되니 준비를 짚게 한다.

 

이름표를 단 날은 이름값이 따른다. 국경일이나 절기 같은 집단적 기념일은 그에 맞는 의식을 통해 생활을 가다듬게 한다. 상강이면 서리에 대비하거나 입동에 겨울 맞을 준비를 하도록 일깨우는 것이다. 이보다 앞서 지나온 중양절(음력 9월 9일)은 예부터 시 짓고 국화전 부쳐 먹으며 노는 세시명절이었다. 이에 착안한 광교박물관에서는 아담한 문화잔치를 열어 인근 시민들과 즐기는 중양절의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 사회적 기념일은 함께하는 놀이로 삶의 활력을 만든다. 농사에 중요한 세시풍속 또한 반복의 나날에 새로움을 불어넣으며 일상을 풍요롭게 하고 계절 음식도 나누는 날이었다. 요즘은 그런 세시명절이 사라져 가는데 반해 '발렌타인데이'부터 '할로윈데이' 같은 외국 기념일 따라 놀기는 더 늘어서 아쉽다. 게다가 '삼겹살데이', '한우데이', '빼빼로데이'까지 만들어 먹방 자극하는 '00데이'들도 넘친다. 그 판에 한술 더 뜨는 상술은 새로운 브랜드 내건 '00데이'로 판촉에 불을 지르는 데이 판이다.

 

시중의 유행을 무시하더라도 개인적 기념일은 지나칠 수 없다. 특히 묘한 신경전을 동반하는 기념일들은 그날의 성의에 따라 보상과 후환이 오갈 소지가 크다. 생일이 그렇고 결혼이나 첫 만남 같은 기념일 등에서 자주 보이는 뒤끝이다. 그날의 기념을 얼마나 뜻깊게 하느냐로 우정이며 애정을 시험하는 까닭이다. 대부분 기억이나 기념의 방식에 민감한 여성 쪽의 불만이 문제다. 달력에 동그라미 쳐놓고 선물을 기다리면 차라리 편한데, 분명 둘의 기념일이건만 때를 놓친 남성 쪽에 후환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럴 때마다 깊이 닿는 시가 있다.

 

아침부터 일손을 놓게 하더니

저녁답엔 목을 놓게 만들고

결국은 또 너를 놓을 수 없게 만드는

오늘, 하루

- 이인원, 「기념일 The longest day」-

 

제목의 영어를 빼고 보면 보통 기념일의 속내를 절묘하게 보여준다. 짧게 압축한 시행 사이로 지나가는 무수한 감정의 소용돌이가 훤히 보인다. "아침부터 일손을 놓게 하"는 그 무슨 기념일이란 야속하게 지나가기 십상이다. "저녁답엔 목을 놓게 만들"기 일쑤건만 "결국엔 또 너른 놓을 수 없게 만"드는 그 기념일. 설렘과 기다림과 실망을 널뛰는 하루는 잔인할 정도다.

 

그럼에도 우리는 기념일을 기다리고 즐기며 더러는 배반당하며 살아간다. 축제로 무료한 일상에 새로운 신명을 불어넣고 잊었던 춤까지 꺼내 추며 카타르시스에 이르듯. 감정의 최대한 고양과 표출도 삶의 또 다른 동력을 만들어가는 충전에 특효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주말에 한판 놀자' 같은 놀기나 짧은 여행도 일상을 더 힘내어 살려는 자기 충전이다.

 

이름표 없어도 기념일은 가능하다. 처진 어깨에 바람 넣는 번개모임도 일상의 작은 기념일로 삼으면 된다. 자신을 위한 날을 잡고 뭉친 피로 날리기도 소소한 기념의 방식이겠다. 그렇게 과로사회를 견뎌가다 보면 나날이 다 의미 있는 하루로 생을 빚을지니.


* 본 칼럼의 내용은 e수원뉴스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저자약력

 

인문칼럼, 기념일, 디데이, 국경일, 결혼기념일, 정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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