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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
윤수천/동화작가
2016-10-10 14:38:31최종 업데이트 : 2016-10-10 14:38:31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가을과 어울리는 그림 한 폭을 고르라 하면 나는 밀레의 '만종'을 꼽고 싶다. 저녁노을을 배경으로 교회의 종소리가 울리는 가운데 한 가난한 농부 부부가 고개를 숙인 채 기도를 하고 있는 저 평화로운 모습. 들녘에는 캐다 만 감자가 흩어져 있고 멀리 보이는 교회당은 어둠에 잠기려하고 있다. 대자연의 엄숙함과 인간의 빛나는 노동이 잘 어울려진 것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 그림은 프랑스의 자랑이다.

밀레는 이 그림을 1859년에 그렸다. 그러나 작품이 처음 만들어진 당시 밀레는 물감을 살 돈조차 없는 가난뱅이 화가였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화상 아르투르 스테반스가 그림을 인수하는 조건으로 1천프랑을 지원하였다. 이 1천프랑으로 탄생한 그림이 바로 '만종'이다. 
이렇게 탄생한 '만종'은 100년 만에 80만 프랑의 값어치를 얻었고, 그로부터 또 100년이 지난 오늘날엔 프랑스의 자존심이자 전 세계 관광객을 끌어 모으는 보물이 되었다.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_1
가을에는 기도하게 하소서_1

가을은 감사의 계절이란 생각이 든다. 곡식과 과실로 그득한 가을을 보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특히 가을걷이가 끝난 빈 들녘을 보면 자연의 그 너른 품에 저 농부 부부처럼 기도를 하고 싶어진다. 밀레는 바로 그런 마음을 화폭에 담았을 것이다.
 밀레의 '만종'이 가을에 딱 어울리는 그림이라면 한국문학에서 제일 먼저 생각나는 작품은 아무래도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와 '감사하는 마음'이란 시詩일 것이다.

'가을에는/기도하게 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가을에는/호올로 있게 하소서.../나의 영혼,/굽이치는 바다와/백합의 골짜기를 지나/마른 나뭇가지 위에 다다른 까마귀같이.'-'가을의 기도'

'...(생략) 지금 농부들의 기쁨으로 거두는 땀의 단들보다도/지금 파도를 헤치고 돌아온 저녁 항구의 배들보다도/지금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주택가의 포근한 불빛보다도/더욱 풍성한 것은 감사하는 마음이다!/그것들을 모두 잃는 날에도 감사하는 마음을 잃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감사하는 마음'

김현승 시인은 평양 출생으로 기독교 집안에서 성장하였다. 부친이 장로교 목사였던 관계로 목회지를 따라 학교도 옮겨 다녀야 했다. 그의 작품 속에 기독교적인 요소가 들어 있는 것은 이런 연유에서 비롯되었다 할 것이다.
 김현승 시인은 숭실전문학교 재학 때 장시 '쓸쓸한 겨울 저녁이 올 때 당신은'으로 등단하여 제1시집'김현승 시초'(1957), 제2시집 '옹호자의 노래'(1963), 제3시집 '견고한 고독'(1968), 제4시집 '절대 고독'(1970)을 세상에 내놓았다.

김현승 시인의 작품 경향은 주로 자연에 대한 주관적 서정과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고독을 노래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특히 절제된 언어로 보여주는 시세계와 함께 가을· 까마귀· 고독· 커피· 기도 등의 어휘를 즐겨 사용하였다. 

며칠 전 한 카페에서는 가을을 주제로 한 시만을 선정하여 낭독하였는데, 퍽 인상적이었다. 특히 김현승 시인의 '가을의 기도' 낭독이 단연 압권이었다. 낭독자는 낙엽을 상징하는 짙은 고동색깔의 개량 한복을 입고 나와 분위기를 살렸을 뿐 아니라 음성 또한 가을 하늘 같은 낭랑한 목소리여서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었다.

여기에다 진행을 맡은 여류 시인의 멘트도 일품이었다. "어떠세요? 이 땅의 고독했던 시인 김현승 님의 '가을의 기도', 좋으셨나요? 저는요, 가을이 오면 이 시가 제일 먼저 생각난답니다. 특히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란 구절이 참 좋아요. 혼자라는 것! 그래서 한없이 외롭고 쓸쓸할 수밖에 없는 그 절대의 고독! 커피 한 잔을 놓고 바라보는 쓸쓸한 들녘, 눈물 한 줄기, 이런 것 때문에 더욱 가을을 사랑하게 되나 봐요. 교회에 나가지는 않지만 기도의 의미도 알 것 같구요.'

그렇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란 생각이 든다. 그 기도는 신에 대한 감사의 기도여도 좋을 것 같고, 자연에 대한 고마움의 기도여도 좋을 것 같고, 이웃에 대한 사랑의 기도여도 좋을 것 같다. 아, 또 있다. 비록 화려하진 않지만 성실히 땀 흘리며 열심히 살고 있는 나를 위한 기도는 또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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