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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 한글박물관이 있기에
김재철/칼럼니스트, 농학박사
2016-10-13 13:36:55최종 업데이트 : 2016-10-13 13:36:55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지난 해 가을 '국립한글박물관'이 바로 전 해(2014.10) 개관한 것을 알게 되었다. 그동안 국립국어원이 운영하는 '디지털한글박물관'을 통해 고전문헌 검색을 해 왔지만, 늦게나마 알게 된 개관소식에 괜히 마음이 들떴다. 왜냐하면 간직해 오던 일부 한글관련 자료들을 기증하려 수원시를 비롯한 몇몇 공공도서관에 문의하였지만 웬일인지 기증받기를 꺼려한 일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일례로 1947년 미군정시절 문교부 발행 육학년 소용 '초등글씨본'을 교육도서관에 기증하려니 필요 없단다.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당연히 한글박물관 개관이 반가웠다. 즉각 기증할 목록을 보내니 자료관리팀은 기다렸다는 듯 반긴다. 직접 방문하겠단다. 한가한 내가 박물관 구경도 할 겸 가방 메고 나섰다. 

가방 속에는 '대한국어는 투라니아(우랄알타이) 언어 중 하나'라고 지칭한 김규식의 '대한문법' 유인본이 들어있다. 서울대와 연세대에 전하는 것이 있는 희귀본이다. 김규식은 1904년 귀국, 1908년 '대한문법'을 저술하였다. 경신학교의 교재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중학시절 내용을 확인하여 표지에 어설프게 붓 가는대로 '大韓文法'이라 써 넣었던 책이다.

가을, 한글박물관이 있기에_1
가을, 한글박물관이 있기에_1

그리고 순한글의 '기해일기'가 있다. 이 책은 현석문 등이 기해박해(1839) 때부터 병오박해(1846) 때 순교한 순교자들의 전기를 기록한 것을 뮈텔 주교가 발견 광무9년(1905)에 출판한 것이다. 또한 처음으로 '자전'이라는 용어를 책명으로 사용한, 근대옥편인 지석영의 '자전석요'는 비록 간지가 떨어져 정확한 간행연대는 알 수 없으나 1913~18년 사이로 추정된다.

'한글'이란 용어는 언제부터 쓰였을까? '한글'의 유래를 처음 기록한 최남선의 '조선상식문답'(1946)도 들어있다. 이 책에서 '한글'이란 용어는 1910년 조선광문회에서 만들어졌다는 것과 이 말이 쓰인 최초의 기록은 1913년에 나온 아동잡지 '아이들보이'라 하였다. 

그밖에 정약용과 신만의 경험약방문을 지송욱이 편찬한 '단방신편'(1915)과 최남선의 '고사통'(1944)이 있다. '단방신편'에는 물먹고 체했을 때는 우물 가운데 이끼를 다려먹거나 모래 두세 개를 삼켜도 좋다는 경험방도 있다. 기타 '논어언해', '맹자언해', '중용언해', '시경언해' 등 언해 방각본과 해방 전후 및 1950년대 국민, 중등학교 교과서, 부교재, 상장 그리고 유엔군사령부 발간 '자유의 벗' 등 각종 자료가 있다. 이 중에는 앞서 말한 '초등글씨본'도 있다. 

재미난 기록물은 국방부정훈국 검필 제작된 아주 작은 1951년도 '일기수첩'이다. 대구에서 미군부대 경비대 일을 보면서 쓴 무명인사의 1년 치 일기로 친구사이 갈등, 여성교제, 집안문제, 부친사망 등 사적인 내용이 깨알 같은 글씨로 기록되었으며, 부대 암구호, 가뭄에 농사걱정 등 언급이 있다(실제로 1951년도 경상도 지역은 극심한 가뭄). 이 해 우리 가족은 대구 신암동에서 피난살이 중이었다. 

해외서적으로는 유형기가 워싱턴 D.C.에서 발행한 '한영사전'(1952)과 북경 민족출판사에서 발간한 한글 컬러그림만화 '곤이 이야기(1955)' 등이다. 일본서적으로 우에노(上野英三郞)의 '농업토목교과서'(1926)가 있다. 저자는 충견 하치(ハチ)의 주인이다. 하치는 우에노 교수 생전 교수를 배웅하거나 배웅을 나가곤 했다. 교수가 세상을 뜬 후에도 매일 시부야역 앞에서 주인 오기를 기다렸다고 한다. 이후 많은 이들로부터 충견으로 불리게 된다. 그리고 1934년, 시부야역 앞에 그 동상이 세워졌는데 제막식에는 하치도 참석했다. 

가져간 책들을 보물 다루듯 취급한다. 돌아오는 길에 "디지털한글박물관은 한글박물관에서 운영하는 것이 이용자 혼란을 덜지 않겠느냐?"고 조심스럽게 물으니 그럴 계획이라고 한다.(2016.3.21부터 한글박물관에서 운영) 

그 후 출장 나온 자료관리팀에게 한글이 표기된 근세주화 '大朝鮮·開國五百四年 오푼' 동전(1895) 등과 사각나무상자인 1900년대 '석유상자'를 넘겨주었다. 석유상자 겉면에는 '미국 솔표 셕유' '뉴욕쓰텐다드 셕유회샤'가 외로 쓰여 있다.

가을, 한글박물관이 있기에_2
가을, 한글박물관이 있기에_2

이 나무상자는 농촌생활 할 때 이웃동네 아무개 집 쌓아놓은 땔감 속에 어설픈 한글 '샤'가 눈에 띄어 뒤적거려 꺼낸 것이다. 흔한 물건은 아니다 싶어 '샤' 부근부터 빛바래고 너덜너덜한 겉면의 나비, 모란문양 색지를 조심스레 뜯어보니 초배지에 대정13년(1924) 2월3일자 대판조일신문이 보였다. 모두 걷어내니 전면에는 앞서 한글문구와 위·옆면에는 영문 광고문이 쓰여 있다. 당시 서민들은 석유상자에 나비, 박쥐문양 등 색지를 도배하여 반닫이 등으로 재활용하였다. 

우리나라에서 석유를 처음 사용한 때는 고종17년(1880)으로, 1884년부터 정식무역이 이루어지고, 1897년 '스탠더드 오일'은 '솔표'라는 상표를 붙여 석유를 판매하기 시작했다. 1907년도 '필라델피아 보고서'에 보면 5갤런 석유통 2개들이 석유상자는 한국, 중국, 필리핀, 이집트, 호주, 우루과이, 칠레 등지에 420만개가 수출되었다고 적고 있다(어떤 이유에선지 'Corea'가 첫 번째로 표기되어 있다). 

금년 5월. 국가가 최선을 다하여 영구히 보존한다는 내용의 기증증서를 받으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모두 5차에 걸쳐 58점이다. 그래도 혹시나 싶어 '대한문법'과 '기해일기', '단방신편'은 영인본을 구해 놓았다. 

국립한글박물관은 용산가족공원 부지 내에 있다. 축구장 면적 40배 정도의 넓은 공원은 잔디광장, 연못, 폭포, 옛 석탑, 야외 조각품 등으로 구성되고 야생 조류와 산림, 숲길 등이 조성된 도시인의 휴식처다. 사색하기에 그만이다. 

가을. 유우석이 추사(秋思)에서 말하듯 '예부터 가을은 슬프고 쓸쓸하다는데 나는 봄보다 가을이 좋다네. 학은 구름을 헤치고 날아가고 시정(詩情)은 하늘 높이 이르네'. 친구여, 이 가을에 한글박물관을 돌아보고 내친 김에 공원 나들이도 즐기면 어떨꼬? 마주 보이는 국립중앙박물관 관람은 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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