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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수원에 살았던 '송알송알 싸리잎에..' 시인 권오순
김우영 언론인
2023-06-26 09:23:18최종 업데이트 : 2023-06-24 16:59:01 작성자 :   e수원뉴스

수원에 살았던 '송알송알 싸리잎에..' 시인 권오순


지난 16일 사단법인 수원문화도시 포럼이 주최한 심포지엄이 팔달문화센터에서 열렸다. 주제는 <'오빠 생각'의 최순애 작가>였다. 평일 낮인데도 많은 문화예술인과 학자, 시민들이 자리를 꽉 채웠다.

 

한동민 수원화성박물관장의 기조강연 '최순애와 수원'에 이어 정해득 한신대 교수가 '오빠생각에 대한 단상들'을, 이미정 건국대 교수가 '오빠생각의 아동문학사적 의의와 가치'를, 권성훈 경기대 교수가 '최순애 동시의 발화 방식과 전개'를 발표했다. 종합토론에서는 이왕무 경기대 교수, 홍숙영 한세대 교수, 김태경 인하대 교수가 토론자로 나섰다.

 

내 옆자리 앉은 이미정 교수가 행사 관계자와 나누는 이야기를 듣게 됐다. 그런데 '권오순 시인'이란 이름이 들렸다. 반가운 마음에 대화에 끼어들었다. "노년에 권오순 시인이 수원에 살았었다. 신문기자 시절 그이를 직접 취재한 적도 있었다"는 등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권 시인의 '구슬비 노래비'가 충주댐 우안공원에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과 노래비가 충주에 있다는 것을. 아 그래도 충주사람들은 그곳에 살았었던 시인을 잊지 않고 있었구나. 고맙다. 수원사람들은 아직도 이곳 출신 최순애의 '오빠생각' 노래비도 세우지 못하고 갑론을박하고 있는데.

 

<사진> 지난 2019년 5월 17일 '문학의 집‧서울'에서 열린 '금요문학마당 193-그립습니다 권오순' 행사 포스터

<사진> 지난 2019년 5월 17일 '문학의 집‧서울'에서 열린 '금요문학마당 193-그립습니다 권오순' 행사 포스터

 

구슬비

 

권오순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

조롱조롱 거미줄에 옥구슬 

대롱대롱 풀잎마다 총총

방긋 웃는 꽃잎마다 송송송

 

고이고이 오색실에 꿰어서

달빛 새는 창문가에 두라고

포슬포슬 구슬비는 종일

예쁜 구슬 맺히면서 솔솔솔

 

 

참 예쁜 시다. 소리와 모양의 흉내말로 이루어졌다.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아주 잘 표현해 놓은 동요'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시인의 나이 18세 때인 1937년에 쓴 작품으로 안병원이 작곡해 동요로도 널리 알려졌다.

 

내가 그이를 만난 것은 1990년쯤 수원시 장안구 조원동 한일타운 뒤 천주교 '평화의 모후원'에서였다. 평화의 모후원은 가난하고 소외된 노인을 모시는 양로원. '경로 수도회'로도 알려진 '가난한 이들의 작은 자매회'가 운영하는 곳으로 수도자들이 임종까지 부모님 모시듯 노인을 돌보고 있다.

 

당시 중부일보 문화부 기자로 일하던 중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로 시작되는 노랫말을 쓴 분이 수원에 사신대. 알아?" '구슬비'라는 노래 제목은 잊었어도 '송알송알 싸리잎에 은구슬...'이란 시를 어찌 모를 수 있겠나.

 

당장 평화의 모후원으로 달려갔다. 늙었지만, 몸에 힘이 없어 잘 걷지 못하지만, 맑은 심성이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시인을 만나 한참 동안 취재를 빙자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이 만남이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것이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이의 건강을 염려한 수녀님의 만류로 긴 시간을 갖지는 못했다. 그리고 몇 년 후 그이가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시인은 1919년 황해도 해주에서 태어났다. 일본식 교육에 반발해 학교에 가지 않은 채 독학했다. 그러다 해방 후 3.8선을 건너 남쪽으로 건너왔다. '구슬비'가 남한 초등학교 국어책과 음악책에 실려 국민적 애창곡이 되었다는 말을 듣고 월남을 결심했다고 한다. 남한에 온 시인은 재속 수녀가 됐다. 교회에서 세운 보육원에서 보모로 봉사하며 평생을 독신으로 가난과 함께 살았다.

 

재속수녀란 세상에 속해있으면서 수녀로서의 삶을 사는 이들이다. 수녀가 지켜야 할 계율을 지킨다. 수도자의 3대 덕목인 정결, 청빈, 순명을 서약하고 각자 고유한 직업이나 직분을 가진 상태에서 봉헌을 실천하며 살아간다.

 

<사진> 전병호 시인이 권오순 시인을 주인공으로 쓴 동화 '구슬비 소녀' 표지

<사진> 전병호 시인이 권오순 시인을 주인공으로 쓴 동화 '구슬비 소녀' 표지

   

권 시인은 만년에 충청북도 제천시 백운면 백운동 천주교회 옆 작은 집에서 재속 수녀로 살면서 시작(詩作)에 전념했다.

 

권오순 시인의 이야기를 담은 동화책 '구슬비 소녀'를 펴낸 전병호 시인은 지역에서 발행되는 신문에 "권 시인은 결혼도 하지 않았으며 집도 갖고 있지 않았다. 평생을 재속 수녀로 이슬 같은 삶을 살았다. 시인이 가고 난 뒤에 남은 것은 '구슬비'와 동시집 몇 권뿐. 시인은 '구슬비'를 쓰고 지키기 위해 이 세상에 와서 평생을 바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노년엔 전기한 것처럼 수원으로 와서 평화의 모후원에 살다가 1995년 별세, 안성 미리내성지에 묻혔다.

 

'꽃바구니에 담아/창가에/걸어두고 싶다//수정 쟁반에/또그르르…/굴려 보고 싶다//옥항아리에 꽂으면/하이얀 방울 꽃내음/퐁퐁 솟겠다.'

 

-'봄 아침 멧새 소리'

 

오는 7월 11일은 이처럼 맑고 아름다운 시를 쓸 수 있었던 시인의 기일이다. 그날 아침 '수정 쟁반에 또그르르…굴려 보고 싶은' 멧새가 그이의 산소에서 지저귀면 좋겠다.

 

충주에 갈 일 있으면 충주댐 우안공원에 있다는 '구슬비 노래비'도 찾아가 그 앞에 작은 꽃다발이라도 올려놓고 싶다. 아, 제천에도 시비가 세워졌다고 했지.


 

권 시인의 저서로는 동요·동시집 '구슬비'(1983), 동시 선집 '새벽 숲 멧새 소리'(1984), 동요·동시집 '무지개 꿈밭'(1987), 동시집 '가을 호숫길'(1990), 수기 및 동요·동시 '꽃숲 속 오두막집'(1987), 글 모음집 '조각달처럼'(1990) 등이 있다.

 

1976년 새싹 문학상, 1988년 제1회 충북 숲속 아동 문학상, 1991년 이주홍 아동 문학상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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