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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행리단길’보다는 정체성 있는 ‘행궁동골목길’ ‘행궁둥이’가 좋지 않아요?”
김우영 언론인
2023-04-23 16:22:21최종 업데이트 : 2023-04-23 16:21:55 작성자 :   e수원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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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겨울 주말마다 인파가 넘쳤던 행궁동 일대, 봄이 된 요즘은 평일 저녁에도 붐빈다. 젊은이들과 부모를 모시고 온 가족들의 웃음이 가득한 골목길은 활기차다. 10년 전만 해도 이렇지 않았다. 날이 저물면 발걸음이 끊기고 길고양이들만이 제 세상 만난 듯 돌아다니는, 낮에도 노인들 몇이 골목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한가로운 마을이었다. 나는 그런 풍경이 좋았지만 사람들은 '낙후' '슬럼화'라는 표현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누가 예상이나 했을까. 동네가 바뀌었다. 세어보진 않았지만 몇 년 사이에 예쁜 카페와 각국의 음식점, 소품점, 옷가게, 공방 등이 마을 구석진 골목에까지 들어섰다. 100곳은 되지 않을까? 여기저기 산책하면서 이곳저곳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지난해 10월 경기도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에서 '수시 데이터 분석 사업' 중간보고회를 열었다.

 

이 자리에서 발표된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2020년 수원시 화서문로 '행리단길'은 유동 인구가 하루 평균 2만 4452명이었다. 이는 2019년 2만 1506명에 비해 13.7% 증가한 것이다. 카드매출은 하루 평균 8천만 원에서 1억 800만 원으로 35% 증가했다고 한다. 이후 증가세는 급상승 중이며 상권 역시 활기차다. 상점에서 줄을 지어 대기하는 관광객들의 모습을 흔하게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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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생태교통 수원 2013'. 사진/수원시포토뱅크 김기수


이 지역이 각광을 받게 된 것은 '생태교통 수원 2013' 사업 이후다. 수원시는 석유고갈 시대를 대비, 1개월간 차 없는 삶을 살아보자며 이 행사를 개최했다. 물론 낙후된 구도심을 되살라겠다는 의도도 있었다.

 

2013년 9월 1일 아침, 2200세대 4300여명이 살고 있는 신풍·장안동 주민들의 자동차 1500여대가 동네에서 모두 사라졌다. '세계최초의 무모한 도전'은 기적을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행궁동(신풍·장안동)을 찾아왔다. 6대륙 37개국 93개 도시에서 590여명의 국내외 환경·도시계획·교통 부문 관계자도 방문했다. 수원시에 따르면 '생태교통수원 2013' 행사가 열렸던 9월 한 달 동안 행궁동을 찾은 관광객은 무려 100만9000명이나 됐다고 한다. '생태교통수원 2013' 이후 현재까지도 관광객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행궁동 골목이 더 유명하진 것은 많은 드라마가 촬영된 장소이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드라마 가운데 자폐 장애가 있는 변호사의 활약상을 그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있다. 큰 인기를 끈 이 드라마에서 우영우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김밥집 촬영장소인 음식점은 드라마에서처럼 김밥을 팔지는 않지만, 전국 각지의 관광객들이 몰렸다.

 

뿐 만 아니다. 행궁동에서는 드라마 '그해 우리는', '경이로운 소문' '삼남매가 용감하게' 등도 촬영돼 방문객이 잇따르고 있다.

 

어느 때부턴가 관광객들은 이곳을 '행리단길'이라고 부른다.

 

'~리단'길의 원조는 서울 이태원 '경리단길'이다.

 

군인들의 월급과 연금을 지급하는 육군중앙경리단이 이 길에 있어서 '경리단길'이라고 불렸다. 하나 둘씩 레스토랑과 카페들이 자리 잡으면서 입소문이 났다. 이후 '~리단'길은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서울의 중림동 중리단길, 쌍문동 쌍리단길, 송파구 송리단길과 경주 황리단, 전주 객리단길, 부산 해리단길은 이른바 핫플레이스가 됐다. 수원 행리단길 역시 '~리단'길의 돌림자다.

 

그런데 굳이 행리단길이라는 이름을 써야 할까?

 

세계유산 화성이 둘러싸고 있는, 행궁이라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있는 행궁동과 '~리단'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빛나는 보석을 허접스런 휴지조각으로 성의 없이 포장한 듯한 느낌이다.

 

차라리 그냥 '행궁동 골목길'로 부르는 게 낫겠다.

 

'행궁둥이'라는 애교스런 이름도 참 괜찮다는 생각을 했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의외로 이 지역을 '행궁둥이'라고 부르는 젊은이들이 많다. 지역명칭인 '행궁동'에 '그러한 성질이 있거나 그와 긴밀한 관련이 있는 사람'의 뜻을 더하는 접미사 '둥이'를 붙여놓으니 그럴 듯하다. 털썩 궁둥이를 붙이고 앉아 있을 만한 곳이라고 해도 좋다.

 

명칭 문제, 한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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