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건강칼럼]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
아주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홍창형 교수
2021-07-07 14:33:53최종 업데이트 : 2021-07-07 14:33:25 작성자 : e수원뉴스 윤주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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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상황이 길어지면서 외래에 우울증 환자가 많아지고 있다. 병원 응급실에 자살 시도자도 늘어나고 있다. 누구나 우울증에 대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다. 최근, 뇌과학의 발달로 삶의 균형이 깨어지면 뇌 속에 세로토닌, 노르에피네프린, 도파민과 같은 신경전달물질이 잘 분비되지 않고, 이러한 불균형이 다양한 우울 증상을 유발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결국, 우울증 치료는 상담 등 정신치료를 통해 삶의 균형을 되찾도록 도와주거나, 약물치료를 통해 신경전달물질의 불균형을 해결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진다. 누구에게도 찾아올 수 있는 <마음의 감기>인 우울증을 극복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우울증은 생존본능 진화심리학에서 우울증은 생존본능이라고 얘기한다. 거창하게 얘기하면 인류가 이제까지 생존할 수 있었던 이유는 우울증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아프고, 병들고, 상처받은 자신을 위한 <강제 휴식모드>라고 할까? 원시시대 사냥을 하다 다친 원시인에게 우울증이 생기면 어떤 장점이 있을까? 만사가 귀찮아져서 당분간 동굴 속에서 지내며 근근이 살아가다가, 시간이 흐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체력을 회복하게 될 것이다. 다쳤는데도 신나게 들판을 돌아다니면 발 빠른 포식자에게 잡혀서 죽게 되는 일이 생길 것이다.
즉,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에서 우울증은 <이보전진을 위한 일보후퇴>라는 전략적 의미를 갖는다. 다시 말해서 우울한 감정이 생기면 마치 자동차에 경고등이 켜진 것처럼 내 몸과 마음에 대한 점검이 필요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야 한다. 지금 뭔가가 잘못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스트레스라는 커다란 풍선이 부풀어 올라 이제 터지기 직전 모습이 아닌가 한 번쯤 의심을 해봐야 한다.
비록 교통사고로 골절이 생기더라도 기브스를 하고, 진통소염제를 먹어가며 직장에 나가서 돈을 벌어야 하는 것처럼 우울증이 생기면 치료를 병행하면서 직장, 학교, 집안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이 많다. 경쟁이 치열한 현대사회에서 오랫동안 휴가를 내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스트레스가 없는 상황에서 푹 쉬어야 낫는데 충분한 휴식 없이 계속해서 똑같은 스트레스 상황에 노출되니 우울증은 더 깊어지게 되고, 결국 '이렇게 사는 삶이 무슨 의미가 있나?'하는 자살사고까지 생기게 된다.
우울증은 <두꺼비집>이 고장난 상태 예전에는 종종 한 여름밤 온 가족이 모여 축구를 보고 있는데 갑자기 TV와 전등이 꺼지면서 집안 전체가 컴컴해지는 일들이 있었다. 그럴 때면 촛불 들고 제일 먼저 집안에 두꺼비집을 열어봐서 퓨즈가 끊어졌는지를 살펴봤다. 요즘은 두꺼비집을 안정기라고 부른다. 집집마다 예비 퓨즈를 몇 개씩은 가지고 있었고, 퓨즈를 교체하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시 집안이 밝아졌다.
우울증은 마치 두꺼비집의 퓨즈가 끊어지는 상태와 비슷하다. 두꺼비집의 퓨즈가 끊어지는 첫 번째 이유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많은 과전류가 갑자기 한꺼번에 흐르게 되는 경우다. 퓨즈가 끊어지면 집안에서 전기로 작동하는 TV, 전등, 냉장고, 에어컨, 컴퓨터 등의 모든 전자제품의 기능이 멈춰버린다. 만일 휴즈가 적절한 시간에 끊어지지 않는다면 과전류 때문에 결국 모든 전자제품이 다 고장 나게 될 것이다. 즉, 휴즈가 끊어짐으로써 집안 내 모든 전자제품을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우울증이 생기게 되면 뇌는 하는 일을 일시적으로 멈추고 생존모드에 들어서게 된다. 마치 컴퓨터에 바이러스가 침투하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안전모드>로 자체 전환을 하면서 기본적인 기능만 작동하고, 나머지 모든 프로그램이 올스톱이 되는 것처럼 뇌도 이와 비슷한 일이 생긴다. 외부에서 견디기 힘든 외적 스트레스가 오랫동안 지속되면 우울증이 생기게 되고 뇌기능이 일시적으로 정지되면서 평소와 다른 모습을 보이게 된다. 평소보다 얼굴 표정이 어두워지고, 말수가 줄어들고, 의욕도 사라지고, 집중도 안되고, 기억도 사라진다. 식욕도 사라지고, 성욕도 사라지고, 잠도 오지 않는다. 평소와 달리 후회하고 자책하는 마음만 머릿속에 떠올라 마음을 괴롭힌다. 에너지와 활력이 줄어들어 평소에 활달했던 사람도 손끝 하나도 움직이기 싫고 만사가 귀찮아서 하루종일 침대에만 누워있고 싶어진다.
유난히 남들보다 더 우울한 당신 '기사님, 기사님! 에어컨 좀 꺼주세요. 버스 안이 너무 추워요' 버스를 타다 보면 가끔 경험하는 일이다. 다른 승객들은 더운 여름철 냉방이 잘 된 버스 속 온도가 시원하다고 느끼는데 유난히 추위를 견디지 못하는 분들이 있다. 참을성이 없는 것이 아니라 추위에 유독 예민한 것이다. '선생님, 저는 흰 우유만 먹으면 설사를 합니다'. 흰 우유를 1리터나 먹어도 설사를 안 하는 사람들은 카페라테를 먹고 화장실로 뛰어가는 사람들을 이해하지 못한다. 500cc 맥주를 시원하게 마시는 사람들은 맥주를 한 모금만 마셔도 얼굴이 빨갛게 변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강함과 약함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마다 취약한 부분이 다르다는 것이다.
두꺼비집의 퓨즈가 끊어지는 두 번째 이유는 퓨즈 자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남들 보기에는 대수롭지 않은 말과 행동에도 유독 크게 무시당하고, 비난받는 기분이 들어 자존심에 상처를 크게 받아 결국 우울증에 빠지는 사람들이 있다. 고래 힘줄처럼 신경이 튼튼해서 매사에 대범하고 멘탈이 강한 사람도 있지만, 깨지기 쉬운 유리알처럼 소심하고 상처받기 쉬운 사람도 있다.
추위 많이 타는 사람은 여벌 옷을 하나 더 입고, 흰 우유에 설사를 하는 사람은 락토프리 우유를 마시고, 선천적으로 알코올 분해효소가 적은 사람은 술자리를 피하면 된다. 지피지기이면 백전백승인 것처럼 우울증을 극복하려면 본인이 어떤 스트레스에 유난히 더 취약한지 잘 살펴봐야 한다. 즉, 자기가 어떤 면에서 다른 사람과 다른지 미리 알고 있으면 스트레스를 크게 줄일 수 있다.
신경전달물질의 균형을 맞추다 '선생님, 신기하게도 백혈병으로 사망한 가족 때문에 그렇게 슬펐던 감정이 이젠 하나도 슬프지 않아요.' '부인 몰래 주식에 투자해서 1억 손실을 본 후 자책감으로 죽고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이젠 그런 마음이 사라졌어요.' '새로 부임한 직장 상사가 저만 괴롭혀서 직장을 그만두려고 생각했는데 이젠 견딜 수 있게 되었어요.' '긴병에 효자 없다고 대소변을 못 가리는 치매에 걸린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화병이 생겼는데 이제는 마음이 담담해졌어요'.
외래에서 항우울제를 반 알이나 한 알을 복용한 이후부터 생긴 일이다. '이런 세상이 있었는데 그동안 왜 그렇게 고통을 받고 지냈는지 모르겠어요. 이젠 삶의 고비를 넘긴 것 같아요'.
항우울제는 내성이 생기거나 중독이 되는 약물이 아니다. 그래서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항우울제를 먹으면 중독된다고 잘못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삐삐가 생기고, 폴더폰이 생기고, 스마트폰이 생긴 것처럼 항우울제는 시대가 변하면서 효과는 더 좋게, 부작용은 더 적게 발전해왔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의 잘못된 편견 때문에 자살을 생각하는 극단적인 상황까지 되어도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안 받는 경우가 많다.
실제 우리나라는 전세계 자살률은 최상위권인데 OECD 국가 1인당 항우울제 소비량은 최하위권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우울증은 나약한 사람만 걸린다는 잘못된 인식과 우울증 치료에 대한 오래된 편견 때문이다.
고장 나면 고쳐가면서 사는 것이 인생이다. 인간은 슈퍼맨도 신도 아니다. 무결점인 상태로 평생을 살아갈 수 없다. 원하지 않았지만 때로는 불행한 사건, 사고, 질병이 생길 수 있고, 생노병사 또한 피할 수 없다. 복잡한 현대사회를 살다 보면 누구나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고, 또 씩씩하게 견뎌 내야 한다. 여기서 필요한 것은 올바른 지식과 정보다. 너무나 당연한 말이지만 항우울제를 먹지 않고 우울증을 극복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깨어진 삶의 균형을 빨리 되찾기 위해 가족, 친척, 친구, 동료, 그리고 국가의 도움으로 서로 돕고, 일으켜 세워주고, 보듬어주고,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면 우울증이 빨리 낫는다. 그러나, 누군가의 도움이 전혀 없는 곳에서 외롭게 고통받는 사람들 또한 무척 많이 있다. 항우울제 치료는 외적 스트레스가 사라질 때까지 임시방편 같은 역할을 한다. 뼈가 골절이 되면 결국 뼈는 스스로 아물게 된다. 그러나, 기브스를 하고, 진통소염제를 먹으면 회복기간 동안 직장생활, 학교생활, 가정생활을 잘 유지할 수 있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의하면 우리나라 30대 이상 성인의 10%는 당뇨병, 20%는 고지혈증, 30%는 고혈압이 있다고 알려져 있다. 즉, 본인이 원하지 않는데 혈압, 혈당, 콜레스테롤이 제멋대로 조절되지 않는 상태가 된다는 뜻이다. 우울증도 마찬가지다. 극심한 스트레스 상황, 즉 삶의 위기 상황에서 내가 아무리 굳세게 지내려고 마음먹어도 조절되지 않는 상태로 변한다. 다행스럽게도 당뇨, 고지혈증, 고혈압이 약물로 치료가 잘 되는 것처럼 우울증 역시 약물로 치료가 잘된다.
우울증을 예방하려면 평소 면역력이 튼튼한 사람이 크고 작은 질병에 걸리지 않는 것처럼 우울증도 마음의 근육을 키워야 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인생에 위기가 닥쳐 우울증이 생겨도 빨리 회복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작은 스트레스에도 크게 상처받고 우울이 쉽게 깊어진다. 여러 가지 방법이 있겠지만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자존감을 높이는 3가지 방법을 소개한다.
첫 번째는 <비교하지 말기>다. 자존감은 남과의 비교를 통해 형성되는 경우가 많다. 자신보다 잘난 사람을 보면 계속 비참한 기분이 든다. 나 자신이 우주에서 유일한 존재임을 깨닫고 소중하게 생각하며 남과의 비교를 멀리하는 삶이 필요하다.
현대사회는 유튜브, SNS를 통해 끊임없이 타인의 삶과 강제로 비교당하게 된다. SNS에는 자기 자랑 대잔치인 경우가 많다. 잠깐만이라도 유튜브, SNS, 신문, 방송 등을 멀리하면서 나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지 생각해보자.
두 번째는 <매일 조금 더 걷기>다. 걷기가 신체건강과 정신건강에 좋다는 내용은 이미 많은 연구에서 밝혀진 사실이다. 조금만 노력하면 걷기 정도는 누구나 실천할 수 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매일 꾸준히 실천하면 자신과의 약속을 지킨다는 성취감을 통해 자존감이 커지게 된다.
세 번째는 <매일 감사하기>다. 주변에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을 찾아보자. 공통점이 있다. 모두 매사에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하루 3줄 감사일기를 쓰는 방법도 좋은 방법이다. 오늘 하루 감사할 만한 일이 무엇이 있었나 회상하다 보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것이다.
주변에 힘든 분들이 많이 있다. 심지어 극단적인 생각까지 하는 분들도 있다. 세심하게 살펴보고 상대방을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손을 내밀어 주시기 바란다.
* 편집자의 말 처음 이 글은 경어체로 작성되었습니다. 필자인 홍창형 교수님께서는 글을 읽는 시민들에게 존중받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e수원뉴스 편집 원칙에 따라 가독성을 높이기 위해 편집자가 평서체로 수정하였습니다. 교수님의 사람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마음은 이번 칼럼에서도, 또 회를 거듭할수록 독자들에게 충분히 전달될 것이라 믿습니다. 그 마음을 받아 수원시민의 정신건강을 위해 마련한 이 자리가 많은 분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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