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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칼럼] 오늘도 수원천을 걸으며 그를 생각했다
언론인 김우영
2020-01-13 11:46:03최종 업데이트 : 2020-01-13 13:05:01 작성자 :   e수원뉴스
[공감칼럼] 오늘도 수원천을 걸으며 그를 생각했다

[공감칼럼] 오늘도 수원천을 걸으며 그를 생각했다

1월 14일은 고 심재덕 수원시장의 11주기다. 지난해에는 SK아트리움에서 성대하게 10주기 추모제와 평전 출판 기념회도 개최했지만 올해는 해우재문화센터 3층 세미나실에서 소박하게 연다는 소식이다. 그분을 존경하는 사람 중의 한명인 나도 당연히 참석할 것이다.

심재덕 시장이 생전에 이뤄놓은 굵직한 업적은 손가락 열 개를 꼽아도 모자란다. 화성행궁 복원, 서호 개방, 화성 세계문화유산 등재, 연화장 건립, 월드컵 유치 및 전용경기장 건립, 화성문화제 활성화, 수원천 살리기, 화장실문화운동, 소각장 건립 등 수원의 미래를 위한 사업들을 쉼 없이 펼쳤다. 하지만 70이라는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수원천의 여름 풍경.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수원천의 여름 풍경.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강제원

지근거리에 있는 수원천을 걷을 때마다 그가 생각난다. "김주간, 나는 수원천을 수원의 상징이자 환경·역사의 젖줄이기 때문에 복개해서는 안된다고 보는데 어떻게 생각해?"1988년 당시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이 '수원사랑' 주간 일을 맡고 있던 내게 던진 말이었다. 그러면서 '수원천 살리기'의 '복개 반대' 당위성을 시민들에게 알리는 기획기사를 수원사랑에 연재하자고 제안했다.

이로써 수원천 살리기 시민운동이 점화됐다. 첫 번째 포문은 주간인 내가 열었다. 1989년 '수원사랑' 1월호였다.

'수원천은 우리에게 무엇인가? 비록 지금은 미꾸라지 한 마리 살 수 없는 죽음의 하천으로 변했지만 수원에 오래 살아온 사람들은 이곳을 지날 때마다 소중한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먼저 필자의 기억을 더듬어도 항상 아낙네들의 빨래 방망이 소리가 그칠 날이 없었다...(중략)...어머니를 따라 온 꼬마들이 알몸으로 물장구를 치거나 고무신으로 송사리를 잡는다고 몰려다니던 정경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때 나는 세상 두려운 줄 몰랐던 30대 초반의 나이였고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은 갓 50세였다. 이렇게 시작된 수원천 복개 반대 운동은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지역·중앙 언론들이 수원에서 벌어지고 있는 수원천 복개 논란을 앞 다투어 집중보도했다. 이때 심원장은 자비를 들여 수원사랑 편집위원과 수원문화원 직원을 일본 교토로 파견해 도심중앙의 친환경 하천인 가모가와(鴨川)를 현장 취재 보도했다. 그곳은 물고기가 뛰놀고 야생화가 지천으로 피는 가운데 철새들이 마음 놓고 쉬며 먹이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복개 찬성자들의 반격도 만만치 않았다. 당시 일부 정치인, 그리고 수원천 주변 일부 상인이나 대중교통 운전사 등은 교통문제를 앞세우며 우리를 비난했다. 이미 죽어버린 수원천은 다시 살아날 수 없다고 단정한 뒤, 냄새나고 불결한 수원천을 차라리 덮어버려 교통난 해소를 위한 도로로 이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중에 시민단체가 모여 수원천되살리기시민운동본부를 결성하고 대대적인 복개 반대 운동을 펼치기도 했지만 외로운 싸움은 오래도록 계속됐다. 물론 최전방에 섰던 나도 날선 공격을 받았다.

그러다가 심재덕 수원문화원장이 1995년 6월 제1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에서 초대 민선 수원시장에 당선되고 나서 수원시는 문화재를 지키고 수원천을 살리기 위해 복개를 철회한다고 발표했다. 진행 중이었던 복개공사는 중지됐다. 그리고 수원천이 살아났다. 1997년엔 물고기들이 돌아왔고 각종 야생화가 핀 하천에서는 물놀이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가득했다. 수원천의 기적이 일어난 것이다.

수원천에 일어난 기적.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수원천에 일어난 기적. 물놀이를 하는 아이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수원천에서 썰매를 타는 시민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수원천에서 썰매를 타는 시민들. 사진/이용창 화성연구회 이사

 
수원천이 살아나자 가장 기뻐한 사람은 물론 당시 심재덕 시장이었다. 각종 모임이나 행사 만찬 때마다 소주에 사이다를 섞은 술을 만들어 돌리면서 '수원천 맑은 술'이란 이름을 붙일 정도였다.

오늘날 맑은 물이 흐르고 물고기와 야생 조류들이 찾아온 수원천을 다시 복개하자고 주장하는 사람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때 복개를 주장했던 이들 조차도 생각이 잘못됐었다고 내게 실토했을 정도다. 

"...작년 저희들이 살고 있는 집 앞 하천을 차집관거를 묻어 하수를 별도 처리한 후 물이 맑게 흐를 수 있도록 수원천을 정비하신 일은 참으로 잘하신 일입니다. 머지않아 화홍문 아래서 우리의 아이들이 멱을 감거나 가재를 잡는 모습을 상상하노라면 내가 사는 이 수원이 더없이 자랑스러워집니다. 개천 주변에는 오솔길을 내고 잔디씨를 뿌려 이제는 푸릇푸릇함이 그림과 같고 곳곳에 작은 운동시설과 분수도 있어 이 개천은 보면 볼수록 매력적이고 정겹기도 합니다. 아침이면 아이들이 이 길을 따라 걷기도 하고, 저녁에는 어른과 아이가 물과 어울리는 모습은 정서에 메마른 도시민들에겐 신선한 청량감이 아닐 수 없습니다"-시정신문 '늘푸른 수원'(1997년 6월13일자) 이는 수원천변에 사는 한 시민이 심재덕시장에게 보낸 편지다.

'심재덕'은 수원이 잊어서는 안 될 자랑스런 이름이다. 어느 글에서도 고백했지만 내가 세상에 태어나서 가장 보람을 느끼는 일 가운데 바로 그와 함께 한 '수원천 살리기'와 '화성행궁 복원사업'이 있다.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언론인 김우영 저자 약력

공감칼럼, 김우영, 수원천, 심재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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