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의 철새도래지 서호를 찾아서
2016-12-26 14:29:48최종 업데이트 : 2016-12-26 14:29:48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
축만제 제방 길을 걷다보면 제방 근처에서 물놀이를 하던 기러기들이 일시에 비상해 제방을 넘나드는 군무를 펼치며 장관을 연출하다 제방 너머 서둔 들녘에 내려앉아 배를 채운다. 제방을 사이에 두고 철새들이 이동하는 경로를 보면 서호를 찾는 이유가 쉴 수 있는 호수와 먹잇감이 풍부한 서둔 들판이 있어서인 것 같다. 서호는 저수지 상류 쪽에서 비교적 따뜻한 물이 유입되면서 겨울철에 저수지가 얼지 않아 기러기, 흰뺨검둥오리, 가마우지, 중대백로, 청둥오리, 물닭 등 수 만 마리가 찾는 철새낙원이 되었다. 서호의 철새들 축만제(祝萬堤)는 1799년(정조 23)에 축조된 것으로 '천 년 만 년 만석의 생산을 축원 한다'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 축만제를 축조하고 국영농장인 서둔을 설치해 조선후기 농업 생산기반의 중요한 시설이었다. 축만제로 인해 가뭄에 대비한 구호 대책, 수원화성을 지키는 군사들의 식량과 재원을 제공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백성들의 식량생산과 생계에 크게 기여했다. 오늘날에도 서둔에서는 생산 활동을 계속하고 있어 큰 의미가 있다. 축만제는 수원화성의 서쪽에 있다고 해서 서호(西湖)로 불리는데 호수 서쪽의 여기산으로 해가 넘어갈 때면 호수에 비치는 저녁노을이 호수를 붉게 물들이는 아름다운 풍광을 수원8경인 서호낙조(西湖落照)라 한다. 제방에 서있는 멋들어지고 기품 있는 몇 그루의 노송들을 넘나드는 철새들과 잔잔한 호수에 비치는 풍경은 한 폭의 그림이다. 축만제 제방의 노송 서호는 공원으로 조성되어 약 2km에 이르는 호수 둘레길이 있다. 왕벚나무, 버드나무, 은행나무, 단풍나무, 잣나무, 칠엽수, 살구나무, 회화나무, 무궁화, 플라타너스, 메타세콰이아나무 등 숲이 우거져 있어 시민들이 운동을 하거나 산책을 위해 즐겨 찾는 명소로 인기가 있으며 봄철 벚꽃이 필 때면 화려한 모습으로 변신한다. 호수에서 철새들이 노니는 모습이나 철새들의 군무를 보면서 걷는 걸음은 언제나 가볍고 상쾌하다. 제방 길은 꼬리명주나비 서식지로 도심 속 자연생태공간으로 조성되었고 쥐방울 덩굴은 꼬리명주나비의 먹이식물로 보호하고 있다. 호수에서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과 드넓은 서둔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걷는 길은 정조시대의 노송과 만날 수 있고 축만제 표석과도 만나는 즐거움이 있는 길이다. 축만제 표석 축만제 축조와 함께 세워졌을 것으로 보여지는 축만제(祝萬堤) 표석 글씨는 힘차면서도 호방해 정조대왕의 기상이 느껴지는 걸작이다. 정조대왕 때 세워졌던 괴목정교, 지지대 축대 글씨와도 맥이 닿아있어 문화재로서의 가치도 많으니 소중하게 보호해야 한다. 제방 끝에는 항미정(杭眉亭)이란 정자가 있는데 1831년 화성유수였던 박기수가 건립한 것이다. 북송 시대의 당송팔대가였던 소동파의 시구(詩句)인 '서호(西湖)는 항주(杭州)의 미목(眉目) 같다'고 읊은 데서 따다 지은 것이라 한다. 중국 서호의 절경에 비견될 만큼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했던 곳이 축만제인 것이며 우리 산하의 아름다움을 자각한 표현이기도 하다. 항미정에서 바라본 서호 항미정에 앉아서 서호를 바라보면 시(詩) 한수가 절로 나올만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진다. 천하의 아름다운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는데도 시 한수를 읊을 수 없음은 평소에 독서가 부족한 때문임을 한탄하노라. 지한생래부독서(只恨生來不讀書) 풍경여차무일구(風景如此無一句). 대한민국 최초로 세계관개유산으로 등재된 축만제는 정조시대 이후의 역사성과 현대까지 이어진 농업혁명의 산실로 인정받은 만큼 현 상태를 유지하고 환경을 보전하는데 힘을 써야 한다. 축만제 둘레길을 걷는 시민들이 애정을 갖고 힘을 보태야 유산으로서의 가치가 빛나는 것이다. 역사가 살아 숨 쉬는 서호 둘레길을 걸어보자.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