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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
2015-01-06 14:03:22최종 업데이트 : 2015-01-06 14:03:22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요즘 철학자이자 강연가로 유명세를 달리고 있는 강신주의 '무문관, 나와 마주 서는 48개의 질문'을 다룬 책 '매달린 절벽에서 손을 뗄 수 있는가'에 빠져있다. 
무문관(無門關), 말 그대로 '문이 없는 관문'이라는 뜻인데, 우리가 살아 움직이는 동안 어떤 삶을 살 것인가에 대한 화두를 던지며 타인들의 흉내 내기가 아닌 스스로의 힘으로 생각할 것을, 선사들의 교외별전(敎外別傳 경전 이외 별도의 가르침. 마음과 마음으로 뜻을 전함)을 통해 대중에게 설하는 경구들이 가득한 책이라 마음속에 꾹꾹 눌러 담고 있다. 

소설처럼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손에 잡히는 대로 한 챕터씩 꼼꼼히 마음으로 새기며 읽는다. 있는 그대로 '여기 그리고 지금'을 살 수 있는 삶의 주인공으로서 자부심을 한껏 심어준다. 과거의 일에 사로잡히지 말고, '나'라는 집착에 얽매이지도 말고, 살라 가르친다. 또한 현실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고 직시하는 사고를 위해 부단히 마음을 갈고 닦아야함을 일깨운다. 

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_1
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_1

배웠으면 실천해야 하거늘.  있는 그대로, 여여하게 바라보는 나의 삶을 살겠노라고 재차 다짐하며 집을 나선다. 속인으로서 넘볼 수 없는 수행자들의 영역 봉녕사로 가는 길이다. 앎에 대한 맹신, 모르는 것에 대한 무지.... 책속에 문구들을 나름대로 조합해 보며 길을 걷는다. 그동안은 집에서 봉녕사까지 자동차로 쌩하고 15분이면 닿았던 곳이지만 오늘만큼은 걷기로 한다. 포근해진 바람 탓도 있지만, 요즘 한참 걷기에 탄력이 붙은 까닭이겠다. 걷기수행이라고 해야하나?

아파트 소로를 벗어나 조원시장으로 들어선다. 사람들의 차림새가 한층 가벼워지고 활력이 넘치는 움직임을 여기저기서 마주한다. 모두가 역사의 한 장면으로 기록될 것이란 생각에 한손에 움켜진 디지털카메라로 연신 포착해낸다. 살아있음이 걷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했던가. 버스타고 가겠다는 마음을 접고 평온한 마음으로 걸으니 어느 순간 몸에서 기의  흐름이 느껴지고 힘이 불끈 솟는다. 

경기도립도서관과 수원북중학교를 지날 즈음 잠시 숨을 고르기 위해 멈춰 선다. 약간 경사진 보도블록 사이로 누군가 토한 음식물이 가득 쌓여있다. 그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블랙아웃 상태였으리란 생각을 하니 피식 웃음이 나온다. 
'저 또한 거짓이 아닌 세상사의 한 단면 아니겠는가!'면서 누군가 일 그를 생각하며 '해장은 했는지....'로 생각이 옮겨간다.

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_2
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_2

국토방위를 위해 목숨 받쳐 나라를 지킨 선열들의 은공에 대한 감사의 예를 표하는 '창훈대(彰勳台)' 표지석을 지난다. 사거리라 그런지 차들이 바람처럼 달린다. 지금부터 가람 앞마당까지 가려면 언덕을 지나야 하기에 중간에 있는 편의점에 들려 음료수로 입안을 헹군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나섰어야 하는데....' 중얼거린다. 간선도로인 탓에 워낙 오가는 차들이 많아 대기오염이 심했기 때문이다. 산행도 공원도 아닌 도심을 걷는다는 것은 다소 불편하다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깜빡한 탓이다. 

우만주공아파트를 지나니 어느덧 주유소가 보이고 이어 '봉녕사'라 쓴 커다란 비석과 마주한다. 손목시계를 보니 오후 4시를 향해 달려가고 있다. 딱 1시간 걸린 셈이다. 
며칠 전부터 따스한 햇살이 비춰서인지 양쪽 길가에 쌓였던 눈들이 녹는 중이다. 이것도 적멸이리라. 한적함이 이어지는 가운데 솔잎 향이 코로 들어온다. 후각이 동하니 청각도 덩달아 일어선다. 요란한 새소리와 함께 타박타박 봉녕사 앞마당까지 걸어간다. 

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_3
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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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_4
봉녕사까지 무문관을 향해 걸어가다_4

몇해전 겨울 설경(雪景)속 가람은 '화선일치(畵禪一致)'의 세계가 펼쳐졌었는데...당시의 풍경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렇지만 당시의 장엄 세계가 산계를 넘듯 조심스러웠다면 현재의 시간은 고요하면서도 묵직한 의미를 심어주는 무채색의 감동이다. 꾸민 듯 꾸며지지 않은 듯 가람을 품고 있는 너른 조경이 어여쁘고 고귀해 그 자체로 부처의 세계다. 

무문관에 내게 알려준 영역, 이제까지 알고 있는 어떤 지식에 의존하지 말고, 나 스스로의 감각과 느낌으로 온전히 알기까지, 온몸을 던지라는 일성(一聲)이 대적광전에서 들리는 듯하다. 
우화궁 옆 굴뚝에서 연기가 난다. 때론 굵게 때로는 가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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