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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사방댐 토끼재 시루봉 김준용장군전적비 소묘
2014-10-11 09:56:41최종 업데이트 : 2014-10-11 09:56:41 작성자 : 시민기자   이대규

오랜만에 나들이 삼아 산을 찾게 되었다. 산이 좋아서 산에 다닌 지도 벌써 수년이 지났다. 산악회를 따라서 왁자지껄한 가운데 먼 산을 가는 것도 즐겁고, 일행 몇몇이 도란도란 정담을 나누며 근교 산행을 하는 것도 좋지만 이제는 기력 탓인지 나 홀로 산행이 더 편하고 익숙해진지도 오래다. 

수원에 이사와 살며 이산저산 전국의 내로라는 산들을 참 많이도 찾아 다녀 보았다. 하지만 광교산은 언제나 변함없이 넓은 품으로 반갑게 맞아주며 나에게 조강지처와도 같은 안방 산이 되었다. 

가을 햇살이 따갑게 내려쬐는 한 낯 오후, 버스 안에서 나는 무슨 생각에 잠겼는지 그만 경기대 입구의 반딧불이 화장실 앞 정류장에서 내리지 못한 채 지나치고 말았다. 평소 같았으면 이곳에서 내려 형제봉을 올랐겠지만 어쩌겠는가. 이왕지사, 상광 교 버스종점까지 들어가 토끼재로 오르기로 했다. 

이렇듯 어떤 상황의 변화에도 이견이 없이 오로지 내 뜻대로 하는 것, 이것이 나홀로 산행의 첫째 장점이 아닐 수 없다. 빨라도 좋고, 느려도 좋고, 그냥 상대에게 맞추지 않아도 좋으니 이보다 더 편할 수가 없는 것이다. 

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_1
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_1

상광교 버스종점에 내리면 마치 이곳은 아방궁 같다는 생각이 든다. 광교산 골짜기를 타고 흘러내려오는 계곡물소리를 들을 양이면 가슴속까지 시원하게 씻어주는 기분이 들어 주위의 맛 집 따위는 눈에 들어올 리가 만무하다. 
등산 안내소를 지나면 곧 생태공원길이 열리고, 좌우 숲길을 걸어 들어가면 마치 어느 결혼식장을 행진하는 나는 어느새 늙은 신랑이 되어보는 것도 싫지는 않다. 

산 아래 숲속에는 뾰쪽 지붕도 보이고, 고은 시인이 산다는 집은 한 폭의 동화 속 그림처럼 눈길을 끈다. 오늘도 하늘은 여지없이 푸르렀다. 나는 그 푸른 하늘 사이로 붉게 물들기 시작하는 단풍나무들을 바라다보았다. 숨겨온 연인 같은 기분이었을까. 산 벚나무도 제멋을 이기지 못한 채 붉은 얼굴로 몸살을 하였다. 소리 없이 찾아온 가을 앞에 나는 그렇게 또 한자락 마음을 내려놓으며 계곡의 다리를 건넜다. 

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_2
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_2

사방댐 언덕의 억새들도 서툰 몸짓을 하며 바람을 키우고 있었다. 여름 내 한껏 멋을 부리며 유영하던 황금 잉어며 물고기들은 다 어디에 숨었는지 보이지 않고 있어 가을이 주는 쓸쓸함마저 찾아왔다. 
토끼재를 오를 양으로 나는 가파른 계단 길을 따라 올랐다. 하늘만 빤히 올려다 보이는 고개를 숨차게 오르면 땀에 젖은 몸, 그 고개 위에 앉아 쉬는 묘미도 좋다. 

이곳은 형제봉에서 시루봉으로 가는 길과 용인의 수지로 가는 길이 서로 만나는 네 갈래 길이다. 오는 이 가는 이, 서로 길을 뭇기도 하고 산객들의 우정이 묻어나는 쉼터가 되기도 한다. 

땀을 식히고 난 나는 손을 뻗으면 닿을 것 같은 비로봉을 올랐다. 이곳에 오면 팔각 정자 위에 걸린 시 한편이 있어 또 눈길을 끈다. 
"청산은 나를 보고 말없이 살라하고, 창공은 나를 보고 티 없이 살라하네" 아, 이 얼마나 가슴에 와 닿는 멋진 소리인가. 산을 오르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자신을 돌아보고 산처럼, 신선처럼 한번쯤 그런 마음을 꿈꾸어볼 수 있게 하지 않겠는가. 

이 정자에 오르면 또 눈앞에 들어오는 전망도 빼놓을 수가 없다. 골짜기 아래 저 멀리 광교저수기가 아련한 가운데 고개를 돌리면 화성의 서해바다 제부도다. 더 고개를 돌리면 산본의 수리산과 멀리 인천 앞바다쯤이 아닐까싶게 가물거려온다. 나는 이런 삼매경에 빠지는 것이 광교산을 찾는 재미인 것이다. 

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_3
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_3

비로봉 정자를 내려오면 또 빼놓을 수 없는 곳 하나가 있다. 
오른쪽으로 칠십 미터 표지판이 있는 소로를 따라가면 기대와는 다르게 너무나 허술하고 초라한 김준용장군 전승비를 찾을 수 있다. 안내판에도 상세하게 설명을 하였듯이 병자호란 때에 이곳에서 청나라 군대를 물리쳤다는 역사의 현장 치고는 너무나 볼품이 없는 것 아닌가. 

바위에 새겨진 글씨에 불과한 것이지만 그 마저도 읽을 수가 없으니 안타까운 마음만 더해준다. 그래도 이곳을 보겠다며 찾는 발자국 길이 지워지지 않고 반짝이며 윤이 나는 것을 보면 장군의 숨결이라도 가슴에 담아보고 싶은 마음들이 아니겠는가. 

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_4
가을빛 물들어오는 광교산 길을 따라서 _4

이왕이면 성지로서 부끄러움이 없게 진입로를 다듬고 장군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찾는 이들의 발길이 무색하지 않게 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나는 형제봉을 향해 남쪽으로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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