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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한 답사여행 ‘사직단 터’
2017-01-11 16:17:46최종 업데이트 : 2017-01-11 16:17:46 작성자 : 시민기자   한정규

"문화유산답사는 나름대로의 훈련과 연륜이 필요하기 때문에 당연히 급수가 매겨진다. 답사의 초급자는 어디에 가든 무엇 하나 놓치지 않고 발걸음을 바삐 움직이며 골똘히 살피고 알아먹기 힘든 안내문도 참을성을 갖고 꼼꼼히 읽어간다. 중급자가 되면 걸음걸이부터 다르다. 문화재뿐만 아니라 주변의 풍경을 둘러보는 여유를 갖는다. 다른 곳에서 보았던 비슷한 유물을 연상해내어 상호간의 공통점과 차이점을 비교해 본다. 고급자가 되면 문화유산의 개별적, 상대적 가치에 대한 이해를 넘어서 그것을 총체적으로 인식하고 싶어 하는 단계인 것이다. 답사코스 자체에도 급수가 있는데 대중적인 지명도와 인기도, 규모, 문화재 보유현황, 숙박시설의 편의 등을 고려해 초급과 중급을 분류한다면 고급 코스는 절도 중도 없는 폐사지 같은 곳이다." 

유홍준 교수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서 옛날의 연륜을 말해주는 폐사지의 고즈넉한 정취는 답사객이 느낄 수 있는 최고의 행복감을 전해주는 답사지라고 소개한다.

특별한 답사여행 '사직단 터'_1
사직단 터로 추정되는 공터

문화유산 답사뿐 아니라 등산을 할 때도 그렇다. 전국의 국립공원이나 유명한 산만을 고집하던 산행을 극복하고 나면 먼 곳의 산을 찾지 않고 동네 뒷동산을 오르면서도 명산을 오를 때와 같은 느낌의 경지에 들 수 있다. 어떤 지역을 여행하는데도 비슷한 경향이 있다. 
수원을 여행한다고 할 때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수원화성, 화성행궁이 첫 코스가 된다. 관광 명소일 뿐 아니라 많은 관광객을 만날 수 있고, 주변에 먹거리도 풍부하다. 어쩌다 한두 번 오는 방문객이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다.

수원화성, 화성행궁을 어느 정도 알고 나면 그 주변의 역사적인 스토리텔링을 찾아 나서게 된다. 사도세자와 정조대왕을 찾아 나서다 보면 현륭원을 알게 되고, 만석거와 대유평, 축만제와 서둔을 만나게 되고 노송지대를 따라가다 지지대고개에서 당시의 역사를 온전히 이해하게 된다.

특별한 답사여행 '사직단 터'_2
사직단 터 주변 유구로 추정되는 돌

수원여행의 다음단계는 어디가 될까? 정조대왕 시대에 만들어졌다 없어진 유물에 관심이 가게 되는데 그중에서 사직단 터를 찾아갔다. 사직단(社稷壇)은 조선시대 국왕이 토지와 곡식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 국태민안과 풍년을 빌던 곳이며 수원화성 사직단은 화성유수가 국가의 중대사가 있을 때 왕을 대신하여 제사를 지내던 곳이다. 조선시대에는 각 고을마다 있었는데 한민족의 정신문화를 두려워했던 일제에 의해 파괴된 유적이다.

화성성역의궤에 "수원부를 처음 옮겼을 때 옛 사직단을 팔달산 서쪽 기슭에 설치하였다. 성 쌓기에 이르러 돌 뜨는 일이 가까워지고 또 울타리와 제단도 옮겨 새로 설치하여 이미 많이 기울어졌다. 그래서 을묘년(1795) 가을에 다시 새 터를 성 북쪽 2리쯤인 광교산 서쪽 기슭에 자리를 잡아 다시 세웠다. 단의 높이가 3척, 동서의 길이가 10척, 남북의 너비가 8척으로 위쪽은 네모난 벽돌을 깔고 단 아래쪽 사면에는 대를 1층 쌓았다. 대 아래 네 뜰엔 4면의 담으로 두르고 각기 홍살로 작은 문을 설치하였다." 사직단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특별한 답사여행 '사직단 터'_3
사직단 터 주변 유구로 추정되는 돌

사직단 터는 광교산 가는 길인 광교산로를 가다가 수원시 상수도사업소 전에 왼쪽 길로 조금 올라가면 있다. 보훈복지타운 아파트 옆 왼쪽으로 야트막한 산속 오솔길을 따라가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곳이 사직단 터로 추정된다고 2012년 5월에 설명 표지판을 세웠다. 넓은 공터에는 몇 그루의 소나무가 자라고 있고 몇 개의 의자가 낙엽을 이고 있어 뒹구는 낙엽만큼이나 휑한 슬픈 역사를 증명하는 듯하다. 

공터 주변을 조사해보니 형태가 이상하지만 주춧돌 같이 생긴 원형 돌이 3개가 보인다. 직경 93cm의 원형 돌인데 반으로 잘려 있고 가운데 36cm의 구멍이 나있는 형태인데 매우 정교하게 가공되어 있다. 주변을 샅샅이 뒤져봐도 돌 3개 외에는 어떤 흔적도 찾을 수가 없었다. 왜 이곳이 사직단 터로 추정되는지 궁금하고 돌이 사직단의 유구가 맞다면 이렇게 방치를 하는 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특별한 답사여행 '사직단 터'_4
한글본 정리의궤, 사직단도

화성성역의궤에 영화역은 장안문 바깥 길 동쪽 1리쯤에 있고 사직단은 성 북쪽 2리쯤인 광교산 서쪽 기슭에 있다는 기록과 '화성전도 12폭 병풍', '화성전도 6폭 병풍' 속에 있는 장안문, 영화역, 사직단 위치를 비교해보면 현 위치가 아닌 것 같기도 하지만 그림속의 위치라 확정하기는 어렵다. 

낙엽만 쓸쓸이 뒹구는 사직단 터를 왔다 갔다 하니 나라가 망해 문화유적도 파괴되는 역사가 눈앞에 아른거린다. 망한 왕조를 그리워하는 것이 아니고 그런 역사가 되풀이되고 있음이 안타까울 뿐이다. 사직단이 파괴되어 그 흔적도 없는 빈터에서 고즈넉한 정취를 느낀다는 것은 그리 낭만적이지는 않은 좀 특별한 답사여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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