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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는 일꾼들을 위해 척서단을 만들어 하사했다
[연재소설 제228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8-16 09:59:33최종 업데이트 : 2010-08-16 09:59:33 작성자 :   e수원뉴스
정조는 일꾼들을 위해 척서단을 만들어 하사했다_1
그림/김호영


  이것은 부역이라는 손쉬운 방법을 동원해왔던 지금까지의 역사로 볼 때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물론 정조는 즉위 이래 모든 공사들, 사도세자 사당인 경모궁을 지을 때도, 문희묘의 건물을 신축할 때도 부역을 금하고 임금을 지불해오긴 했었다. 

  반대는 즉각 터져 나왔다. 누구보다 임금의 그 결정에 반대한 것은 채제공 등 화성 축성을 담당한 정조의 최측근 신하들이었다. 
  그들은 '내탕금을 털어서 할 공사라기에 화성은 너무 방대'하고 공사 기간 또한 10년이기에 얼마나 많은 인력이, 얼마나 많은 자재들이 들어갈 지 가늠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공사 기간이 길어질수록 처음의 예산은 지금의 계획보다 더 들어갈지 알 수 없었다. 공사란 언제나 처음 계획한 것보다 많은 공기와 비용을 잡아먹기 마련이었다.

  게다가 국가적인 공사에 백성들에게 역(役)을 매기지 않고 인건비를 지급한다면 그 비용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 분명했다. 그러나 정조는 이미 사도세자 능을 천장하면서 인근의 주민들의 땅을 내탕금으로 보상하는 것으로 어중을 실천에 옮겼다. 

  이는 모두 백성들을 사랑하는 임금이기에 가능한 실천이었다.
  정조는 화성이 축성되는 과정에서 더위에 시달리는 인부들을 위해 더위를 씻는 알략인 척서단(滌暑丹)이라는 약까지 만들어 하사했다. 

  "불볕 더위가 이 같은데 성역처(城役處)에서 공역을 감독하고 공역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이 끙끙대고 헐떡거리는 모습을 생각하니, 밤낮으로 떠오르는 일념을 잠시도 놓을 수 없다. 이러한데 어떻게 밥맛이 달고 잠자리가 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처럼 생각한다고 해서 속이 타는 자의 가슴을 축여 주고 더위 먹은 자의 열을 식혀 주는 데 무슨 보탬이 되겠는가. 따로이 한 처방을 연구해 내어 새로 조제하여 내려 보내니, 장수(匠手)·모군(募軍) 등에게 나누어 주어서 속이 타거나 더위를 먹은 증세에 1정 또는 반 정을 정화수에 타서 마시도록 하라. 이 밖의 구료할 처방도 각별히 유의하여 구중궁궐에서의 염려를 덜어 주도록 하라."

  이때 정조가 만들어 내린 척서단은 4천정에 이르렀다.
  정조는 또 날씨가 무더운 한여름에는 공사를 중단시켰다. 수원부 유수 조심태(趙心泰)가 연일 계속되는 가뭄과 무더위에 기우제를 지내자고 아뢰었을 때, 

  "성을 쌓는 일도 급하지 않은 것은 아니나 많은 사람을 부려서 백성을 괴롭히는 것은 마찬가지다. 근일의 불볕더위는 감히 여기에 부연시킬 것은 아니지만 일찍이 옛사람들의 오행(五行)에 부연시키는 말을 보건대 '많은 사람을 부려서 백성을 수고롭게 하여 성읍(城邑)을 일으키면 양기(陽氣)가 성하기 때문에 가물이 든다.'고 하니, 또한 사람들을 동원하여 괴롭히는 것을 제대로 조절하지 못하여 이런 가물이 생기게 되었는지 어찌 알겠는가. 비록 볕을 가린 곳이거나 탁 트인 곳에서 일을 하는 인부일지라도 본인의 원하는 바에 따라 부역을 정지시켜 비가 오거나 서늘한 기운이 생기기를 기다리도록 하라."고 명했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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