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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노론에 대한 심각한 타격
[연재소설 174회] 1800년, 華城 /월~금 연재
2010-06-01 09:56:38최종 업데이트 : 2010-06-01 09:56:38 작성자 :   e수원뉴스
그것은 노론에 대한 심각한 타격_1
그림/김호영


심환지와 노론들은 생각지 않은 악재에 망연자실 할 수밖에 없었다. 구이겸은 구선복의 아들이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그들은 정순왕후의 뜻을 받아 은언군을 사형시키고 상계군에게 역률을 추가하자고 시위하던 중이었다. 

  심환지는 그때 들었던 생각, 일 년 전 있었던 이율.홍복용의 역모에 드러났던 구명겸의 일 또한 추국을 면치 못할 거라는 걸 직감했다. 심환지만이 아니었다. 노론 당파에 속한 양반이라면 누구나 같은 불길함에 휩싸였다.
  불길함은 현실이 되었다. 

  정조는 구명겸을 붙잡아 추국에 들어갔고, 그는 결국 일년 전 역모에 자신이 가담했음을 실토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구명겸의 아들을 양자로 삼은 구이겸 또한 역모에 가담했음이 드러났다. 아들 구이겸과 조카 구명겸까지 관련된 역모에 구선겸도 피해갈수 없었다. 

  정조가 그에게 밝히고자 한 것은 두 가지였다. 홍국영이 상계군을 추대하려 했을 때, 뜻을 함께 했는가와 이율 홍복용의 역모에 그 또한 관련이 있는가, 였다. 

  그런데 국문 중 피해갈 수 없는 일까지 드러났다. 구선복이 관상가에게 '누군가'의 운명을 물어봤다는 것이었다.
  관상을 물어보는 것이야 흔히 있을 수 있는 일이지만 그의 나이가 이미 70이라는 점에 있었다. 
  정조는 이를 들어
  "이미 나이가 70인데 다시 무엇을 바랄 게 있어 관상과 운명을 얘기했는가. 비록 아무리 늙더라고 한정이 없는 것이 욕심이지만 너 자신의 운명을 물어보았을 리 없다."
며 추궁했다. 만약 자신의 관상이 아닌 상계군의 관상을 물어보았다면 그가 '왕'이 될 관상인지를 물은 것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구선복은 처음에는 자신이 '언제 죽을 것인가'만 물어보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결국 얼마 가지 않아 구선복은 모든 죄를 토설했다. 그는 사도세자의 죽음에 가담한 것을 자복하고 이율. 홍용복 모역에도 가담했으며, 삼도에서 군사를 일으킬 때 안에서 호응할 대장은 구명겸이었고, 그는 시임 대장으로 반정을 주도했다고 자백했다. 

  결국 구명겸은 남문 밖에 모인 삼군에게 조리가 돌려진 다음 효수됐고, 구선복은 능지처사 당했으며. 구명겸은 효시당했다. 또 구이겸은 제주도 유배되었다가 과천에서 참수당하는 형벌을 받는 것으로 마무리가 됐다. 

  그것은 노론에게 심각한 타격이었다.
  심환지는 그때처럼 이를 앙다물었다. 아무리 돌이켜 보아도 그때의 일들은 임금에게는 천우신조와 같은 것이었지만 자신들에게는 재앙이었다. 군을 장악할 수 없다는 것, 군권(軍權)을 잃는다는 것이 얼마나 큰 걸림돌로 자신들의 앞길을 가로막았는지 지난 세월은 증명했다. 

  정조는 장용위 창설에 그치지 않고 군사들을 충원해나가며 이름도 장용청으로, 다시 장용영으로 바꾸며 몸집을 불려 갔다. 그리고 기어이 화성이라는 전대미문(前代未聞)의 성까지 축조하였다. 

  심환지는 불리한 상황이었다고 해도 장용위를 만들던 그때 막았어야 했다고 다시 후회했다.
  그렇다고 노론이 임금의 군대 창설을 두 손 놓고 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장용위의 창설은 단순히 정조의 호위군대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전 군대에 대한 체제변혁까지 가능할 수도 있다는 것은 그들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글/이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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