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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78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 [월~금 연재]
2010-01-18 17:29:21최종 업데이트 : 2010-01-18 17:29:21 작성자 :   e수원뉴스
칼들이 눈빛에 흰 빛을 내며 춤추듯 움직였다

[연재소설 78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온전한 기억은 아니었다.
  인간의 기억들이 시간의 순서를 벗어난 당사자가 느끼는 의미의 경중에 의해 결정되는 것처럼, 먼먼 어린 시절 기억은 시간의 순서와는 상관없다.
  그때의 기억은 앞과 뒤가 끊어진 이야기처럼 이태의 가슴 속에 남아있었다. 

  며칠 째 내리던 눈이 그 밤에도 내리고 있었다. 머릿속을 긁어대는 쇳소리들에 잠이 깨어 스님을 찾았던 것 같다. 곁에 없는 스님을 찾아 문을 열었을 때, 쇳소리는 귓속 가득 들어왔고, 눈 쌓인 공간 눈 내리는 풍광 속에서 스님은 사람들과 싸우고 있었다. 칼들이 눈빛에 흰 빛을 내며 춤추듯 움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 감정은 남아있지 않았다. 주슬해의 손을 꼭 잡고 있었던 것은 기억은 났다. 그리고 잠시 뒤, 쌓인 눈 위에 번지던 붉은 핏빛도.
  주슬해가 말한 것은 그때였다. 현의와 대적했던 사람들이 절뚝거리며 사라지고 난 뒤, 그들이 흘린 붉은 피들이 동백꽃처럼 흰 눈에 선명하던 그때.
  "스님. 어떻게 하면 스님처럼 사람을 죽일 수 있어요?"
 
그때, 그들이 현의를 부르던 호칭은 그것이었다. '스님.' 
놀란 듯 눈 쌓인 나뭇가지들이 후두둑 제 몸을 흔들었고, 눈들은 분분히 흩날리며 떨어져 내렸다. 이태는 그때 현의의 표정을 기억했다. 놀란 듯 눈빛처럼 희던 스님의 그런 표정을 이태는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이태는 주슬해의 그 말에 현의가 무어라 답했는지, 기억나지 않았다. 

  굳이 어린 시절 기억들을 시간의 선 위에 놓으려 애를 쓴다면 그 뒤 가장 가까운 기억은 눈이 녹기 시작한, 녹지 않은 쌓인 눈을 뚫고 봄풀들이 파릇한 제 생명을 돋아내던 날의 일이었다. 한밤에 나타난 다섯 명의 괴한들이 나타났던 일 뒤였음은 분명했다.
  이태와 슬해는 현의를 따라 산을 내려가고 있었다. 이틀 전, 스님은 이태와 주슬해만을 암자에 남겨둔 채 하루 종일 어디론가 행차했었다. 그리고 이른 아침, 현의는 가타부타 말도 없이 이태와 주슬해를 깨우더니 제 짐들을 꾸리게 했다. 

  이태가 보니 불당 높은 자리에 앉아있던 부처님이 없었다. 그것은 이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갈 거라는 확실한 표시였다.
  "스님, 이사 가요?"
  이태의 생각보다 주슬해가 먼저 물었고, 현의가 대답 대신 말했다.
  "어서 네 짐들 꾸리거라."  "왜요?"
  이태가 물었고, 현의는 이번에도 대답 대신 다른 말을 했다. 
  "시간 없다."

  그렇게 따라나선 길이었다. 
  "스님, 어디루 가는데요~오?"
  주슬해는 내내 그러고 있었다. 그러면 스님은 이렇게 대답했다.
  "말해 준들 네 놈이 알겠느냐?"
  "잔말 말고 따라오너라~"
  "허 참, 고 놈 말도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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