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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왕으로서 정조가 꾸는 꿈
[연재소설 85회] 1800년, 華城/월~금 연재
2010-01-27 09:53:20최종 업데이트 : 2010-01-27 09:53:20 작성자 :   e수원뉴스

조선의 왕으로서 정조가 꾸는 꿈 _1
그림/김호영

젊은 임금의 성정은 가늠키 힘들게 뜨거웠다. 군기시(軍器寺: 병기의 제조 등을 관장한 관청) 안에 있다던 거대한 용광로 만큼이나 뜨거웠고, 화산이 품은 용암만큼이나 깊이를 알 수 없었다. 

  그날, 정조는 현의를 더 이상 잡지 않았다. 짐을 능멸하느냐며 용광로의 쇳물처럼 불같던 임금은 현의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그날, 놀라 달려온 백동수와 이덕무를 물리고 정조와 현의는 많은 이야기들을 나누었다. 여의주를 물고 불을 뿜는 용 같던 임금은 어느새 한강 위에 돛을 내린 배처럼 고요해졌다. 정조의 다른 감정의 파고는 그러나 감정을 제어치 못한 불완전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것은 고도의 의미가 함축된 계산된 감정의 변이에 가까웠다. 그럼에도 현의는 솔직하지 못한 임금의 그런 용태에서 불쾌감을 느끼지는 못했다. 

  정조는 현의에게 이상의 세계와 현실의 세계의 다름에 대해 이야기하고,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의 차이에 대해 이야기하고, 조선에 살아있는 '지금'의 백성들을 이야기하고, 그 백성들이 살아내야 할 '미래'에 대해 이야기했다.
  그것은 아버지를 잃은 고통스런 과거에 대한 초인의 경지를 이야기한 것이었으며, 하나의 마음으로 조선의 백성들과 그 백성들의 나은 삶을 위한 고통스럽지만 당당한 발걸음에 대한 피력이었다.

  그것은 정조의 꿈이었다.
  그것은 조선 왕으로서 그가 꾸는 꿈이었다.
  그런 꿈을 꾸는 임금을 네 목숨을 다해 보필하라는 명령이었다. 제 한 몸, 제 가족, 제 파당을 탐하는 사사로운 자들의 위협으로부터 목숨을 다해 지키라는 하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조는 고사하는 현의의 진심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에게 약속 하나를 받아냈다. 그대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알려달라고. 그러나 그는 알지 못했다. 정조는 현의 자신도 알지 못하는 현의를 보았다는 사실을. 또한 현의는 알지 못했다. 자신이 이루어낼 정조시대의 일들을. 

  현의는 그날, 정조의 말을 생각한다.
  "과거를 보는 짐의 눈은 가감이 없다......."
  하찮고, 하찮은 중 하나를 얻기 위해 먼 길을 달려와 시간을 내고, 마음을 냈던 믿을 수 없는 임금에 대해서도 생각한다.

  밖은 아직 어둠이 짙었다. 현의는 불상 앞에 오래도록 앉아있던 좌선의 자세를 풀었다. 현의가 있는 그곳은 그날, 그렇게 임금 정조와 헤어진 뒤, 자리를 잡은 지리산의 한 곳이었다. 불가에 귀의하면서 언제나 그랬던 것처럼 이곳 지리산 자락에서도 그는 스스로 움막을 지어 거처를 정했다. 우~ 멀리서 늑대가 울었다. 

  좌선을 푼 현의가 곁에서 자고 있는 이태와 주슬해를 보았다. 이제 더는 어린아이가 아니었다. 7년이란 세월이 흐르는 동안 아이들에게서는 제법 소년티가 흐르고 있었다. 주슬해가 덮고 있던 이불을 한 발로 차올리며 이태의 배에 그 발을 얹었다. 현의가 그런 주슬해의 엉덩짝을 철썩 내리치며 말했다.
  "일어나거라. 도량석 돌 시간이다!"

  그때였다.
  "딱또그르....... 딱또그르........"
  청아한 목탁소리가 세상을 향해 조용히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현의가 슬해의 엉덩이에 손을 얹은 채 문밖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 녀석이 벌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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