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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 정약용의 '남고를 보내고 화성으로 돌아오다'
'送南皐還華城' 詩 해설 정수자시인
2017-11-20 09:52:31최종 업데이트 : 2017-11-20 09:53:20 작성자 :   e수원뉴스
다산 정약용의 '남고를 보내고 화성으로 돌아오다'

다산 정약용의 '남고를 보내고 화성으로 돌아오다'


찬바람이 마구 쳐도 국화는 향기를 잃지 않는다. 예부터 오상고절(傲霜孤節)로 추앙받아온 위엄이다. 서릿발 속 절개의 상찬은 그러하길 바라는 선비들 자신의 투영이겠다.

선비 중의 선비요, 학자 중의 학자요, 시인 중의 시인인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레오나르도 다빈치만큼 전인적 위인임은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에 선정(2012)된 사실만 봐도 안다. 그런 다산이 남고를 보내고 쓴 위의 시에는 인간적인 면모가 친근하게 드러난다.

'해학'이 지나쳤나 '너무한 것이 후회로세' 탄식하는 대목은 슬며시 웃음을 물게 한다. 술자리에서 말장난이 도를 넘어 다음날 후회하는 우리네와 다를 바 없다. 더욱이 '담담하게 서로 의지하는 사인데' 그 일로 멀어지면 어쩌나, 행간에 서린 걱정은 다산의 여린 성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길손 따라 낙엽도 가고/갈바람 해진 옷에 파고드'는데 마음 나누던 사람을 그만 멀리 가게 했네. 그때 '누가 날 좋아할까' 자책하는 모습에는 소심함마저 보인다. 무릇 시인은 잔신경도 많이 쓰는 감정의 과소비자들. 다산도 그런 감수성으로 곡진한 시를 많이 썼을 것이다.  

여기 등장하는 남고(南臯) 윤지범(尹持範:1752~1821)은 다산의 외6촌 형으로 고산 윤선도의 직계 6세손이다. 다산은 친척이자 '죽란시사(竹欄詩社)' 글벗으로 남고와 아주 가깝게 지냈다. 남고의 '묘지명'을 상세히 썼을 정도다.

이쯤서 다산의 '국영시서(菊影詩序)' 한 대목을 봐야 한다. '국화의 특별히 뛰어난 점'은 '늦게 피는 것, 오래 견디는 것, 향기로운 것, 고우면서도 화려하지 않고 깨끗하면서도 싸늘하지 않은 것'인데, 국화 사랑으로 이름난 사람도 네 가지를 좋아하는 것뿐이란다. 다산이 하나 추가한 것은 놀랍게도 '촛불 앞의 국화 그림자'다. '밤이면 구경하려고 담장 벽을 쓸고 등잔불을 켜고 외롭게 그 가운데 앉아서 혼자 즐겼다'니, 참으로 독특한 감상의 경지다. 

특별한 감상법이란 나눠야 제 맛. '하루는 남고 윤지범을 찾아'갔는데, 내용인즉 밤 국화 함께 보자는 것이었다. 남고가 아프다 했으면 그만둘 만도 한데, 다산은 굳이 데려와 기이한 꽃그림자를 보며 경탄을 나눴다. 그리고는 죽란시사 벗들 불러 술 마시고, 그런 자리서 빼놓을 수 없는 시도 높이 즐겼단다. 과연 급이 다른 풍류요 격조다.   

촛불 앞 국화그림자 보자 청하다니! 다산다운 운치 아닌가. 아직은 국화향이 산하를 비추니 우리도 찾을 만하다. 아, 그러고 보니 '한정품국(閒亭品菊)'도 누려야 하지 않겠나. 풍경은 더불어 즐길 때 한층 그윽해지는 법. 그런 연후에야 끝만 남은 가을을 떠나보내도 서운치 않으리라. 

시 해설 정수자 시인의 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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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을 노래하다, 다산 정약용, 정조, 화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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