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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호 시인의 '그 후, 나혜석'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12-01 11:27:57최종 업데이트 : 2017-12-01 14:13:51 작성자 :   e수원뉴스
방민호 시인의 '그 후, 나혜석'

방민호 시인의 '그 후, 나혜석'


첫눈이 소담하게 다녀갔다. 하필이면 포항 지진 탓에 미뤄 치른 수능날. 반가움보다 걱정들이 앞섰지만 큰 여진 없이 수능을 치렀다. 전국을 긴장시킨 시험이 지나서인지 거리도 좀 느슨해진 느낌이다.

이때쯤 돌아볼 이름이 있으니 나혜석이다. 그의 마지막을 톺아보는 방민호(1965~) 시인은 평론으로 등단(1994년)한 문학평론가이자 소설가요 국문학자다. 2001년 '현대시'로 등단한 후, 시집 '나는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을 하고'를 냈다. 소설은 더 활발해서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답함' '연인 심청' '대전 스토리, 겨울' 등을 냈다. 그보다 더 많은 국문학 관련 저술까지 보면 전방위적 글쓰기라는 평가만큼이나 쓰기 영역이 넓은 문인 학자다.   

나혜석이 생을 마친 날은 12월 10일이다. 아픈 몸으로 곳곳을 전전하던 나혜석은 1948년 겨울날 '원효로 자제원 무연고자 병동'에서 세상을 떠났다. 접근 금지당한 아이들이 보고 싶어 양로원을 탈출해 헤매다 길에 쓰러진 채 발견되어 '무연고자'로 떠난 것이다. '최초'라는 수식어를 여럿 거느린 선각의 삶을 영양실조, 실어증, 행려병자로 마감했으니 결말이 너무 비극적이다.

'그 일이 있은 후/혜석은 고향 멀리 떠돌았다'. 하지만 지친 심신을 추스르며 수원에 내려와 잠시 살 동안은 의지를 돋웠다. '로마성'(이태리) 이상 가는 '수원팔경'에 대한 자긍 속에 화가로서의 욕망을 보였다. 그림 '서호낙조'를 남겼고, 화홍문에서 봉녕사 가는 길 등 자신이 발견한 수원의 아름다움을 글로도 남겼다. 그때 조금만 안정적으로 살 수 있었으면, 수원을 마음껏 쓰고 그리며 생을 더욱 빛냈으련만!

'연꽃이 피지 않는 진흙구덩이' '고향에 가지 못한 바람'으로 이승을 떠난 혜석. 시인은 그 마지막이 안타까워 '외로운 혼아/이제 고향에 편히 머물라'고 빌어준다. 모쪼록 '반달 걸린 팔달문/양지바른 유년의 뜰/빛나는 서호' 모두 품고 편히 쉬기를! 선각의 불꽃 나혜석을 기리는 우리네 마음이 다 그러리라.

시, 소설, 그림, 그리고 학문까지 계속 촉발하는 나혜석. 살아서는 외로웠지만, '고향'에서는 이제 덜 외로울 게다. 학회며 예술제는 물론 수원의 길(나혜석거리)에서도 되사는 중이니, 오늘을 사는 이들에게 또 다른 길을 묻고 열게 하는 힘이다.
시 해설 정수자 시인의 약력

시 해설 정수자 시인의 약력


 

수원을 노래하다, 방민호 시인, 나혜석, 팔달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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