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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13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0-20 10:20:49최종 업데이트 : 2009-10-20 10:20:49 작성자 :   e수원뉴스
낭자한 비명소리가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연재소설 13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김호영

 

 불빛 하나가 묘적사 앞에서 하늘로 솟구치는 것이 보였다.

 현의의 몸이 먼저 반응했다. 사십여 년 삶과 죽음을 한 칼의 양날처럼 여기며 살아온 무사의 삶이었다. 현의는 그것이 몸을 숨긴 채 떨어져 있는 상대와의 교신을 위한 신호라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지만 그들이 신호를 주고받으며 이 깊은 밤에 무엇을 하기 위해서인지에 대해서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러나 현의의 몸은 이미 산신각을 떠나고 있었다. 백봉과 묘적사의 주변이라면 이미 수백 번 밟고 달린 곳이었다. 산의 높과 낮음, 산의 골의 깊이와 넓이까지 눈을 감고도 달리 수 있었다. 어느 곳에 어떤 나무가 있는지, 어느 곳에 바위가 있는지도 환했다. 이런 이곳에 누군가 나타났다면 목표는 이곳 묘적사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것도 이 깊은 밤에.


  묘적사는 숨겨진 곳이었다. 천마산 자락에서 이어진 백봉산과 그 안의 묘적산은 비록 천 미터가 넘는 고봉의 산자락은 아니라고 해도 산은 깊고 넓었다. 그곳에 묘적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묘적사의 존재는 잘 알려져 있지 않았다. 설사 알고 있다고 해도 그저 다 봉선사의 말사일 뿐이었다. 여느 절의 말사처럼 예불을 올리고 부처의 말씀을 따라 불도를 구하는 스님들이 생활하는 그런 곳.


  그러나 묘적사는 이곳은 조선 이래 왕실을 보호하는 무사들을 양성하는 곳이었다. 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는 사명대사가 이곳 묘적사에서 승군을 훈련시켰다. 그리고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양난을 치른 뒤에는 승려들이 무과(武科)시험을 준비하는 훈련장으로 쓰였다.


  그 뒤 왕실호위무사를 키워내는 장소로의 묘적사는 유명무실해졌다. 절의 대웅전 부처님 앞에 올려지던 예불은 끊어졌고, 새벽 예불을 알리는 북소리와 종소리 또한 사라졌다. 대웅전의 지붕은 내려앉았으며, 인적은 끊겼다. 묘적사는 그렇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듯했다.


  그러던 묘적사에 현의가 들어온 것이다. 모두가 정조 때문이었다. 오직 무예 하나만을 생의 업으로 삼아 조선 산천을 떠돌던 그를 정조가 찾아왔다. 그렇게 그의 삶은 바뀌었다. 더불어 그와 함께였던 이태와 강희의 삶도 바뀌었다.


  산신각 좁은 산길을 날듯 내려오며 현의는 생각한다.

  '누가? 왜? 무엇을 위해 이곳에 나타났는가?'

  의문이 솟구쳤지만 현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 다만 한 가지, 적들은 지금, 그의 존재를 알지 못할 거라는 확신이었다. 신호가 올랐으니, 적들의 공격은 곧 시작될 것이다.


  흔적도 없이 현의가 산길을 내달려 달려가는데, 낭자한 비명소리가 그의 귓속을 파고들었다.

  "악!"

  곧이어 놀라 되묻는 사내의 목소리도 들렸다.

  "왠 놈이냐?"

  이어 절명하는 비명소리가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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