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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7회] 1800년, 화성(華城)
글/이기담(월~금 연재)
2009-10-12 14:23:31최종 업데이트 : 2009-10-12 14:23:31 작성자 :   e수원뉴스
"정조의 침전인 존현각 지붕 위에 자객이 침입했다"

[연재소설 7회] 1800년, 화성(華城)_1
그림/장병엽

   구중궁궐 대궐의 많은 건물들 중 정조의 침전을 아는 이는 드물었다. 존현각은 정조가 신료들을 접견하고 경연을 하던 흥정당(興政堂)의 왼편에 있었는데, 궁의 내부를 잘 아는 자가 아니라면 불가능했다. 그런데 그런 정조의 침전인 존현각 지붕 위에 자객이 침입했다.


  다행히 정조는 책을 읽고 있어 정조를 죽이려던 음모는 실패로 돌아갔고, 조선 창업 이래 전례없는 이 암살기도에 대궐은 발칵 뒤집혔다.


  곧 각 영에 비상 군령을 전할 때 쓰이는 신전(信箭)이 쏘아지고, 숙위군사들이 모여 궁궐을 수색했지만 이때 자객을 잡지는 못하였다. 궁궐의 호위는 즉각 강화되었다. 
정조는 위장(衛將)이 하룻밤에 다섯 교대로 순찰하던 옛 제도를 부활시켜 순찰을 강화했다, 또한 신원이 확실치 않은 액정서(掖庭署;궁궐의 문의 열쇠를 맡은 부서)의 액예(掖隸)들을 바꾸었다. 이 뿐만이 아니라 정조는 이해(1777년) 8월 6일 대비 정순왕후와 어머니 혜경궁홍씨와 함께 침전을 창덕궁(昌德宮)으로 옮겼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정조는 우포도대장 이주국(李柱國)을 파면시키고 구선복(具善復)을 대장으로 임명한 뒤 흥화문(興化門)의 군사 백 명을 금호문으로 옮기고 훈련도감(訓練都監) 출신 45명을 영숙문으로, 동영(東營)의 군사 50명을 집춘영으로 옮겼다.


  창덕궁 산쪽 경추문(景秋門) 수축을 명한 것도 이때였다. 

  정조를 암살하려는 두 번째 시도는 헐고 낡은 경추문을 손보기 시작한 다음날 일어났다.

  8월 열 하루, 밤하늘의 달은 보름을 향해 커가는 즈음이었으니 날이 흐리지 않았다면 자시(子時:밤11-1시)에 들어선 깊은 밤이었다고 해도 어둡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날 밤은 흐렸고, 달은 검은 구름 속에 감춰져 있었다.


  해시가 막 넘어섰을까, 당시 수포군(守鋪軍)이었던 김춘득은 쏟아지는 잠을 쫒으며 깨어있었다. 소리가 난 건 그때였다.

  "거기......있는가?"

 누군가를 부르는 소리였다. 소리는 그러나, 작고 조심스러웠다. 김춘득은 함께 있는 병사들을 보았다. 그러나 대부분의 병사들은 취한 듯 잠이 들어있었다. 순간 김춘득은 저녁을 먹고 난 저녁부터 병사들 모두가 이상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마치 술이 취한 듯 그들은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잠이 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지금이 어느 때인가, 불과 한 달 전에 임금을 암살하려는 자객이 왕의 침전위까지 침입한 비상 상황이었다. 이런 때 술은 가당치 않았다. 그럼에도 병사들은 취한 듯 잠이 들어있었던 것이다.


  "거기 유수 있는가?"

  다시 소리가 났다. 불분명했던 이름이 분명하게 들렸다. 곁에 몸을 포개고 있던 김세징이 그 소리에 깨어 대답하려 하였다. 김춘득은 순간 그의 손을 잡아 제지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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