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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문 시인의 '사도, 왕도의 길'
詩 해설 정수자 시인
2017-06-08 13:18:15최종 업데이트 : 2017-06-08 13:18:15 작성자 :   e수원뉴스
오종문 시인의 '사도, 왕도의 길'
오종문 시인의 '사도, 왕도의 길'_2


정조의 아버지 세도세자. 그 이름은 이선(李愃). 비극적인 죽음이 먼저 떠오르는 사도(思棹)의 이름을 받았다. 영조가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까지 몰려 뒤주에 가뒀다고 해도 역사상 가장 참혹한 죽음이다. 아비가 아들을 8일이나 굶겨 죽이다니…. '사도세자' 그 슬픈 이름 앞에 애도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사도를 다시 돌아보는 오종문(1959~) 시인은 1987년 '지금 그리고 여기'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시집으로 '오월은 섹스를 한다', '지상의 한 집에 들다' 등이 있고, 화성과 융건릉을 오가며 쓴 정조 관련 글을 묶은 '탕탕평평'도 있다. 오늘의 사회문제에 각을 세우되 역사 속에서 길을 모색하는 작품이 많은 까닭에 안주하지 않는 현실 인식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정조는 아버지의 비극적 죽음이 아니었으면 어떤 왕이 되었을까. 다시 보면 사도세자의 비극적 죽음이 역설적으로 정조라는 탁월한 군주를 탄생시킨 게 아닌가 싶다. 정조를 호학과 개혁의 군주로 만든 이면에서 아버지의 죽음을 짓씹은 쓰라린 시간과 교훈이 엿보이기 때문이다.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그런 비극 위에서 더 우뚝한 정조를 우러르기엔 사도세자 죽음이 너무나 가혹하다.
 
시인은 왕도의 길을 되물으며 오늘의 문제에 접맥해본다. 죽음에 다다른 사도세자의 막다른 심정을 짚어보면 그나마 아들 '산祘'이 있어 눈감을 수 있었을 법하다. 억울한 자신을 대신해 자식이 응당 할 일을 해주리라 믿는 것은 인지상정인데, 어린 산은 영조의 총애를 받는 영특한 세손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 정조라도 나라를 구하는 일들은 얼마나 지속적이고 조직적인 저항을 뚫고 가야 하는 길인가.
 
그러니 '질서를 깨는 일도 기다림이 필요'한 것. 오늘날도 극심한 게 기득권의 저항이니, 갖고 누린 것은 누구든 내려놓기 어렵다. 자본주의에서는 부와 권력이 더 무섭게 결탁하며 기득권의 질서를 공고히 한다. 그런데 신분제 사회에서임에랴! 그래서 더욱 '기꺼이 풍문을 덮고 곧은길을' 가야 한다. 이선은 그렇게 세상을 이산에게 맡기고 떠날 수밖에 없었으니, 아들은 새로운 세상 건설에 온 힘을 쏟아야만 했다.
 
사도세자 이선의 기일은 '윤오월' 스무하루다. 조선시대도 윤5월이 드물어 음5월에 제를 모셨다고 한다. 올해는 양력 6월 15일이 음 5월 21일이다. 그 날이면 용주사에서 사도세자 제향을 모시는데, 거기 가면 많은 깨달음을 얻고 온다. 용주사 뒤뜰에 새겨놓은 '부모은중경'도 함께 외며 그 또한 마음공부가 크게 됨을 느낀다. 게다가 조지훈의 시지 '승무'도 있으니 조용히 읊고 나오면 더 좋다.
 
초여름 초록으로 더 눈부신 용주사. 사도세자 제향에 가서 그날의 울음으로 우리 역사와 부모님을 생각해볼 만한 뜻 깊은 곳이다. 효라는 가치는 생활 속에서 실현할 때 더 빛나는 법. 그럴수록 우리 내면에도 인문의 물기 같은 향기가 그윽이 스미려니.



시해설 약력_ 정수자시인
오종문 시인의 '사도, 왕도의 길'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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