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구중서 시인의 '왕대폿집'
詩 해설 정수자시인
2016-11-23 09:05:52최종 업데이트 : 2016-11-23 09:05:52 작성자 :   e수원뉴스
구중서 시인의 '왕대폿집'_2
구중서 시인의 '왕대폿집'_2


'
술 권하는 사회'는 자주 소환되어온 술자리의 구실이다. 일제강점기 현진건의 단편소설 제목이 회자된 것은 사회 탓이 크다. 온 나라를 뒤흔든 작금의 국정농단 사태 역시 홧술을 부르는 대형 게이트다. 분노와 좌절이 너무 커서 촛불을 들고 나면 술이라도 마셔야 화가 좀 다스려지는 것이다.
 
그래서 '왕대폿집'이 더 보인 걸까. 게다가 하릴없이 뒹구는 낙엽을 차며 두리번거릴 가을저녁 발길도 짚이는 때다. 이 시조를 쓴 구중서(1936~) 시인은 사실 민족민중문학론과 리얼리즘 문학론에 대한 저술이 많은 평론가다. 한국작가회의 이사장 등으로 한국문학사의 족적도 큰데, '왕대폿집'은 수원대학 교수 시절 더러 찾으셨던가 보다. 동네 어른같이 뒷짐 지고 대폿집을 들어서는 모습이 친근하게 그려진다.
 
그런데 리얼리즘 이론의 선봉이던 평론가가 시조를? 의문은 정년 후에 정 붙인 시조 창작의 귀결 '불면의 좋은 시간''세족례'에서 풀린다. 글씨와 그림을 직접 쓰고 그린 문인화를 곳곳에 배치한 이 시조집들은 학자이기 전에 한 문인으로서의 취향과 격조를 보여준다. 답사기에도 그림과 글씨를 손수 넣고 개인전시회까지 할 정도니 능히 짐작되는 품격이 있다.
 
'왕대폿집'은 화홍문 밖에 있던 나지막한 주막이다. 용연(龍淵)을 거느린 방화수류정과 화홍문 바로 바깥의 낮은다리 옆에 있었다. 화성 제1경의 코앞이니 자릿값만 쳐도 최고 명당인데 안주에도 깊은 맛이 있어 단골이 많았다. 특히 달 좋은 밤이면 주막 앞 용연에 비치는 달이 더없이 그윽해서 운치 운운하는 이들로 꽤나 떠들썩했던 곳이다.
 
좋은 술집에서 한 잔이 열 잔 되긴 다반사. 거꾸로 쓴 글자를 우정 걸어놓은 간판도 한몫 거들었는데, 그게 똑바로 설 때까지 마시자며 흥을 돋운 때문이다. '모과처럼 우그러'진 주전자들도 '막걸리 젖통을 만진 손들'을 거듭 들게 했다. 모두 웃고 취하게 부추기던 그 집은 이제 없다. '리어카 세워놓고 딴 데 보는 단골손님' 불러들여 '공으로 마시'게 한 것도 훈훈한 추억일 뿐.
 
옛 주막을 그려보는 것은 오래된 잡지를 뒤적이는 것 같다. 용연 근처는 잔디밭이 좋아서 거기 앉아 막걸리 '파도타기'를 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문화재 보호 관리상 어림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돌아보면 가마득히 흘러간 흑백사진들. 그리운 것은 다 사진첩 속에 살고 있듯, 어수룩하고 정겨운 장면들이 시의 행간에 새삼 어른거린다.
 
추억은 장소에 후광을 입힌다. 흔한 대폿집이었지만 거기서 나눈 많은 이야기들 덕이다. 술잔을 들고서도 우리는 세계문화유산으로서의 화성이 지닌 가치, 문화 예술적 활용과 향유에 대한 아이디어를 많이 나눴다. 술잔 부딪치며 안주 삼던 얘기가 훗날 실현된 것도 꽤 있으니, 술집은 예나 지금이나 술만 마시는 데가 아닌 게다.
 
왕대폿집이 헐리는 성곽 정비 끝에 용연 근처는 깨끗한 풍격을 되찾았다. 근처 술집, 밥집을 찾던 사람들은 입맛 다시며 다른 곳을 찾았다. 그런 어디선가 대폿집은 또 만나니 허한 마음 덥히고 정담 나누는 쉼터로 삼는다. 그렇게 살아가는 풍경이 쌓이는 대폿집이야말로 구수한 맛집 멋집이려니-.

구중서 시인의 '왕대폿집'_3
구중서 시인의 '왕대폿집'_3


수원의 시, 수원의 시 해설

프린트버튼캡쳐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