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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일선 시인 '나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
詩 해설 - 정수자 시인
2016-03-17 09:31:21최종 업데이트 : 2016-03-17 09:31:21 작성자 :   e수원뉴스
홍일선 시인 '나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_2
홍일선 시인 '나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_2


홍일선(1950~) 시인의 자호는 '석농'(石農)이다. 고향인 석우리 그리고 농촌에 대한 마음이 그만큼 깊다. 돌모루 남양 홍씨 집안의 세 시인(홍사용, 홍신선, 홍일선) 중 한 명으로 '창작과 비평'(1980년 여름호)을 통해 등단했다. 음악의 홍난파까지 합하면 홍씨 집안의 예술인 배출이 예사롭지 않다.
 
이 시에서도 시인은 '돌모루 유년의 마을'부터 찾는다. 언제나 그리운 곳은 어린 시절의 고향. 옛 수원군에 속해 있던 돌모루는 시인의 가슴에 새겨진 원초적 고향마을이다. 그곳에서 '어릴 적 순정한 희망을/내내 지켜주었던 큰잿봉', 그 산은 늘 따스하게 바라보던 어머니의 눈빛 같다. '붉은 뺨멧새들이 떼지어 날아와 앉던/오솔길'도 길러준 곳이니 얼마나 으늑한 고향의 품이었으랴.
 
그런 곳을 다 잃고 도시의 시멘트숲에 사는 사람들. 시인이 '애기둥글레꽃의 서러운 색깔도 기억하지 못한다'고 돌아보는 곳에는 고향을 잃어버린 자의 회환이 서려 있다. 그런 심경을 짚으며 그려보는 '큰잿봉 숲을 떠났다 돌아오는/작은 새들'의 정겨운 모습. 그런 새소리 와 더불어 피어날 '꽃의 아픈 발자욱들'. 그 모두를 '다시 불러내지 못하는/시들이 불쌍하다'고 다만 탄식할 뿐이다. 작고 소박한 새들과 풀꽃들과 함께여서 더 평화롭던 시간들을 너무나 멀리 떠나와 있는 것이다.
 
특히 수도권은 개발이라는 이름 앞에 자유로운 곳이 없다. 수원 인근 출신이면 그렇게 사라졌거나 사라져가는 마음의 고향을 품고 살게 마련이다. '그대 다시는 고향에 가지 못하리'라는 말에서 다시 확인하듯, 우리 모두는 이제 고향에 갈 수 없다. 혹여 고향이 남아 있다 해도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무색하게 확 바뀌어 있기 일쑤니 우리네 마음속에 살아 있는 옛적의 그 고향은 아닌 것이다. 그러므로 고향이란 갈 수 없는 곳, 향수란 영원히 지속되는 그리움의 원형일 밖에 없다.
 
시인은 그런 농촌의 생존 문제와 연계한 현실적인 시를 많이 썼다. 등단 초부터 '자유실천문인협의회'(현 한국작가회의)의 실무를 맡아 사회운동의 전면에 나섰으니 자신이 생각한 문학적 실천을 지속적으로 해온 것이다. 1980년대를 온몸으로 건너던 무렵 대자보를 얼마나 썼던지 시인의 독특한 글씨를 일컬어 '대자보체'라 부르기도 한다. 한 시인의 글씨에도 시퍼렇던 군사정권에 대항해온 시간이 뜨겁게 담겨 있는 셈이다.
 
2000년대에 '한국문학평화포럼'을 만들고 문제적 현장들을 찾아다닌 것도 그런 사회적 실천의 하나였다. 국내의 아픈 현장은 물론 민족의 상흔이 남아 있는 일본 우토로며 우즈베키스탄 같은 곳도 기꺼이 찾아 문학의 소임과 활동을 넓혀온 것이다. 몇 년 전 여주로 이주한 후에는 '닭 기르는 시인농부'로 또 다른 공존의 삶을 실험 중이다. 바보숲명상농원에서 칠백 여 마리 닭을 방사하며 다정이라는 당나귀와 함께 생명과 평화의 길을 찾는 '여강농인(驪江農人)'으로서의 삶이다.
 
온 생명이 두루 평화로운 세상은 여전히 먼 나라다. 갈수록 피폐해져가는 우리 농촌 역시 모든 생명과 자주와 평화를 위해서도 큰 과제요 화두다. 생명과 평화를 추구하는 시인의 삶이며 시의 여운을 더 깊이 새겨 읽는 까닭이다. 이념이든 사랑이든 자신의 꿈에 삶을 던지는 것도 옛 이야기 같은 시절. 훗날 이곳에서는 또 어떤 사람과 고향과 사랑을 추억하게 될까.
홍일선 시인 '나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_3
홍일선 시인 '나는 그 길을 알지 못한다'_3

수원의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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