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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화, 수채화, 글쓰기로서 100세 장수 시대를 선도하는 명인
서화 명인 소현 정연옥 작가를 만나다
2024-04-24 14:03:52최종 업데이트 : 2024-04-24 14:03:22 작성자 : 시민기자   이태호
서화 명인 소현 정연옥 작가가 우암서실에서 서화를 쓰고 있다.

서화 명인 소현 정연옥 작가가 우암서실에서 서화를 쓰고 있다.


  수원시 장안구 만석공원에서는 봄비가 내리는 가운데 '2024 새봄 페스타' 행사를 했다. 제2야외음악당에서는 가수가 민요를 부르고, 주민센터 부스에서는 여러가지 체험 및 홍보를 하고 있었다. 저수지 둘레길을 한 바퀴 걷고, 수원시립만석전시관으로 향했다. '제4회 경기ㆍ제주 서화교류전' 전시회가 있기 때문이다. 공식 행사는 거의 끝나고 전시관 입장 테이프를 끊고 있었다. 서화교류전에 참가하는 소현 정연옥 서화작가는 여러 작가 중에서 더욱 빛났다. 단체 사진 촬영이 끝나고, 전시장의 서화를 관람하면서 인터뷰를 하였다.

  먼저 붓글씨를 시작하게 된 계기부터 질문하였다. 작가는 어릴 적부터 아버지에게 한자와 붓글씨를 배웠다. 초등학교에서는 습자지에 붓글씨 쓴 것이 교실 뒤편 벽에 붙기도 하였다. 서화를 계속하게 된 동기는 그때부터가 아닌가 한다며 옛날을 회상하는 분위기이다. 

 정 작가는 강원도 강릉이 고향이다. 서울에서 결혼 후 소규모 사업체를 경영하는 남편과 삼형제를 키우며 평범한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 그런데 삼십대 중반에 남편과 사별하게 된다. 생활고에 시달리다가 새롭게 시작한다는 결심으로 부산으로 내려갔다.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아이 셋과 여자 혼자서 자립하는 일은 쉽지가 않았다. 결국 노점생활을 시작했다. 그 후 여러가지 장사를 하며 어렵게 살았다. 오직 자식 성공만을 위하여 밤낮을 가리지 않고 살았다. 아이들 삼형제는 학원 문턱도 가보지 않았는데도 공부를 잘해 모두 대학을 졸업시켰다.

국제한얼문화예술대전 시상식에서 정연옥 작가가 수상을 하고 있다.

국제한얼문화예술대전 시상식에서 정연옥 작가가 수상을 하고 있다.


  자식 셋은 결혼하면서 분가시켰다. 혼자 살게 되니 모든 일을 마쳤다는 허전함으로 우울증을 겪기도 하였다. 자신을 돌아보기 시작하였다. 삼십대 중반부터 자식들 키우는 게 전부였다 보니, 자신의 삶을 살고 싶어졌다. 그동안 잊고 살았던 붓글씨 쓰기가 생각났다. 옛날에는 먹을 갈고 붓을 들면 마음이 평온하고 행복하였다 한다. 다음날 서예학원에 등록하였다. 장사는 계속했지만 붓글씨 공부도 계속하였다.

제4회 경기ㆍ제주도 서화교류전에서 전시회장 테이프를 커팅하고 있는 경기, 제주도 서화 회원들

제4회 경기ㆍ제주도 서화교류전에서 전시회장 테이프를 커팅하고 있는 경기, 제주도 서화 회원들


  그리고 수원으로 이사를 하였다. 붓글씨 공부할 곳을 찾다가 기호 서화학회 윤신행 회장이 운영하는 우암서실을 찾게 된다. 아버지에게 초등학교 때부터 한자와 서예를 배운 실력과 타고난 천성의 기술. 윤신행 선생도 정연옥 작가의 탁월한 소질을 발견하게 된다. 많은 시간을 함께 공부하였다. 그 결과 여러 곳에서 작가의 실력을 인정받게 되었다. 대한민국서법예술대전 대상(문화체육부장관상), 대한민국명인미술대전 대상, 대한민국삼봉서화대전 최우수상을 수상하였다. 뒤이어 대한민국명인미술대전과 대한민국서화문인화대전 초대 작가로도 활동하게 되었다. 지난해는 300만 원의 예술인 지원금을 받기도 하였다.

수원실립만석공원 전시관 전시되어 있는 작품 앞에서의 정연옥 작가 모습

수원실립만석공원 전시관 전시되어 있는 작품 앞에서의 정연옥 작가 모습


  수원에 살면서 장안구 만석공원에 있는 SK노인복지관에 등록하였다. 여기에서도 노인들과 함께 붓글씨를 쓰면서 즐거운 노년 생활을 하였다. 그러던 중 다른 무엇을 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사군자와 수묵화는 서예를 하므로서 자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또한 수묵화를 그리던 중 수채화 그림에 관심이 갔다. 그림 공부하는 데는 여러 곳이 있었다. 그중 화서2동주민센터 성인미술 수채화반에 등록하였다. 예능에 소질이 있는 작가는 그림에도 뛰어난 기술을 발휘했다. 지난해 화서의 문학 창작반에서 수강생들의 글을 모아 발간하였는데 작가의 수채화가 책의 표지를 장식하기도 하였다. 주변에서는 그림 실력을 인정하고 대회나 공모전에 출품하라는 권유도 많았다. 그러나 서화에 대한 애정을 미술까지 넘나들고 싶지 않아 모든 권유를 뿌리쳤다고 한다.

수원시립만석고공원 전시관에서 시민들이 서화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수원시립만석고공원 전시관에서 시민들이 서화 작품을 관람하고 있다


  작가는 언젠가 수원시 시화전 전시회를 관람한 적이 있었다. 그때 전시된 시를 읽으면서 감동을 받았다. 작가의 가슴을 포근하게 하였고 한 수의 시로 행복함을 느꼈다. 그 후 화서2동주민센터 프로그램 문학 창작반에 등록하였다. 문우들과 시 공부를 한 지 2년이 넘었다. 수업은 한 시간은 이론 공부를 하고 또 한 시간은 수강생들이 숙제로 써 온 시를 발표한다. 작가는 서화는 어느 정도 쓸 수 있는데 시 쓰기는 아직도 어렵다고 토로한다.

화서2동 문학창작지 `꽃뫼에 시가 물들다` 책자 표지에 정연옥 작가의 수채화 그림이 담겨져 있다.

화서2동 문학창작지 '꽃뫼에 시가 물들다' 책자 표지에 정연옥 작가의 수채화 그림이 담겨 있다.


  작가는 청소년 인성교육에 서화교육이 어떤가 제안하고 싶다고 한다. 서화를 통해 청소년들이 자신의 내면을 생각하게 되고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을 것이라 한다.

  철학자 김형석 전 연세대 명예교수는 105세에 강연을 하고 책을 출간한다. 그는 수필집에서 '인생의 황금기는 60~75세다.'라고 했다. 2015년 UN이 제안한 새로운 연령 기준은 65세까지 청년, 79세까지 중년, 80세부터 노년이다. 소현 정연옥 작가는 올해 80세이지만 인터뷰를 하면서는 노인이 아닌 청년으로 보였다.

  요즘 텔레비전 뉴스를 보면 농어촌에 청년은 없고 노인들만 살고 있다. 경로당에서 노인들은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일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이제는 100세 장수시대라 한다. 환갑, 칠순 잔치를 하는 노인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80세 소현 정연옥 서화 작가를 취재하면서 예술 분야를 적극적으로 선도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이를 보며 100세 시대에 우리 노인들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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