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본문 바로가기하단 바로가기

상세보기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
2016-06-19 07:00:01최종 업데이트 : 2016-06-19 07:00:01 작성자 :   연합뉴스
가기 힘든 섬 인천서 145㎞…쾌속선으로 2시간 남짓
1960년대 조기 파시의 섬→ 꽃게·안보관광지로 유명

(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조기·꽃게·안보교육관광지

세 가지 이미지를 동시에 지닌 인천 옹진군 연평면 연평도.

1960년대까지만 해도 동생 섬 소연평도와 함께 전국에서 조기잡이 섬으로 이름을 날렸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당섬 선착장 전경(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연평도 당섬 선착장에 '눈물의 연평도' 노래비와 연평도 방문 환영 안내판이 설치돼 있다. 2016. 6.14

그런 연유로 지금도 어르신들은 연평도 하면 조기를 먼저 떠올린다.

조기잡이가 시들해지고 1970년대부터 꽃게가 잡히기 시작해 지금은 꽃게의 섬이 훨씬 친숙하다. 한때 전국 꽃게의 15%가 연평도에서 잡혔다.

수년전부터 중국 어선들이 연평·백령도 근해 우리 해역까지 침범해 꽃게 등을 싹쓸이해 어민들의 피해가 막대하다.

최근 연평도 어민들이 이를 참다 못해 불법조업 중인 중국 어선 2척을 직접 잡아 세간의 이목이 집중된 곳이다.

1999년 제1 연평해전과 2002년 제2 연평해전에 이어 2010년 11월 23일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을 겪으며 남북분단의 아픔을 깊이 안고 있다.

자연스럽게 안보체험교육 관광지로 자리잡게 됐다.

연평도(延坪島)는 평평한 땅이 연이어 있다는 뜻의 지명이 말해주듯 평평한 지형에 주민 인심도 넉넉하다고 고려사 등 고대 사서는 전한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의 조기역사관(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연평도의 조기역사관. 2층의 전망대에선 제1·2 연평해전이 벌어진 바다가 내려다 보인다. 2016.6.14

그래서 계절에 관계없이 많은 도시민들이 연평도행 배에 몸을 싣는다.

남북한 사이의 긴장, 결코 멀지 않은 거리, 안개 등 잦은 이상 기후 등으로 가기 쉽지 않은 섬인데도 말이다.

연평도는 인천 연안부두 여객선운항터미널에서 서북쪽 해상 145㎞에 떨어져 있다. 쾌속선으로 2시간 남짓 내달려야 닿는다.

먼저 도착하는 섬이 소연평도. 뱃머리를 돌려 다시 10분 남짓 고동을 울리면 대연평도가 반긴다.

당섬 선착장에서 한 눈에 들어오는 마을이 전체 주민이 옹기종기 모여사는 마을 전부다.

북쪽으로 야트막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남쪽에는 바다가 드넓게 펼쳐져 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 지형으로 어머니의 따뜻한 품안같이 포근하다.

이곳에 1천330여가구, 2천15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관광객들이 이용할 식당이나 숙박업소가 거의 이곳에 몰려있다.

관광 명소는 대부분 조기, 해변, 안보 등 3개 테마와 연결돼 있다.

선착장에서 500여m 연도교를 포함해 1.4㎞를 달리면 본 섬 대연평도 입구에 도달한다. 여기서 서쪽으로 1.9㎞ 가량 도로를 따라 가면 사거리가 나오고 바로 왼쪽 언덕에 평화공원이 보인다.

섬 서남단에 있는 평화공원을 중심으로 반경 500여m 안에 조기박물관, 등대공원, 군 터널 관광시설, 빠삐용 절벽, 가래칠기 해변, 병풍방위 등 명소가 몰려 있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관광객들이 연평도 평화공원을 둘러보고 있는 모습(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관광객들이 연평도 평화공원을 둘러보고 있다. 2016.6.13

평화공원은 제1·2 연평해전 희생자와 2010년 11월 북한 포격으로 전사한 하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을 추모하기 위해 조성됐다.

공원에는 장갑차와 탱크, 대잠 헬기가 전시돼 있고 연평해전과 북한 포격으로 희생한 장병들의 얼굴이 화강암 조형물에 황금색 동판으로 조각돼 있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평화공원 전경 (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제1, 제2 연평해전 전사자와 2010년 11월 북한 포격으로 희생된 병사를 추모하고자 만들어진 평화공원. 2016.6.13

연평해전과 북한 포격 당시의 생생한 모습을 영상으로 보여주는 전광판이 설치돼 있어 우리의 해군과 해병대의 조국 수호의 결연한 의지가 느껴진다.

하정우 하사·문광욱 일병 등 2명의 연평포격전사자 위령탑도 별도로 꾸며져 있다.

공원 남쪽에는 2층짜리 조기역사관이 자리잡고 있다. 1층은 조기역사관이고 2층은 관광전망대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조기역시관 전경(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조기의 섬' 연평도를 널리 알리고자 관할 옹진군이 2층 짜리 조기역사관을 건립했다. 2층은 전망대다. 2016.6.13

역사관 앞 급경사에 설치된 나무 데크 전망대에서는 빠삐용 절벽을 내려다 볼 수 있다. 해안가 절벽의 비경이 마치 영화 빠삐용의 한 장면을 연상시켜 붙여진 이름이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평화공원에서 바라본 아름다운 해안 (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평화공원에서 내려다 본 해안의 절벽이 아름답다. 2016.6.13

조기역사관에는 1960년대까지 연평도를 전국에 알린 조기잡이에 관한 사진 자료와 조기잡이 모형이 설치돼 있다.

연평도에서 조기를 잡게 된 시점은 조선 중기 명장 임경업 장군이 병자호란으로 중국 청나라에 볼모로 잡혀간 세자를 구하고자 명나라로 가던 중 잠시 연평도를 들렀을 때부터라는 자료가 전시돼 있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조기역사관 내부 모습 (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관광객들이 조기역사관 내부를 둘러보고 있다. 2016.6.13

임 장군은 당시 당섬 안쪽에 가시나무를 그물처럼 쳐 놓아 썰물때 무수히 많은 고기를 잡았고 그게 조기잡이의 시초가 되었다는 전설이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다.

연평도는 조기 파시로 일제 시대인 1920년대 한 철(4∼5월) 조기를 잡아 일년을 먹고 살았다, 파시 절정기인 1960년대 전국에서 3천여척의 배가 몰려왔다, 1950∼60년대 간식거리가 궁한 시절 알 밴 조기 한마리와 빵 한개를 바꿔 먹을 정도로 조기가 흔했다는 당시의 신문 기사 내용이나 구전도 보전돼 있다.

전망대에서는 연평해전이 벌어졌던 연평도 앞바다를 내려다 보며 우리 해군이 북을 격퇴하는 상황을 그려볼 수 있다.

역사관 밖 왼쪽에는 조기 풍어를 만끽하는 주민들의 배치기 소리(조기 퍼 실을 때) 석비가 세워져 있다.

선주 부인의 정성 덕에 만선을 이뤄 돌아왔다는 내용이다.

오른쪽에는 군 터널 관광시설이 있다. 과거 군 진지였으나 지금은 일반에게 공개되고 있다. 직사각형의 콘크리트로 돼 있고 밑으로 150여m 내려갈 수 있다. 그러나 전등이 켜있지 않아 조심해야 한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의 조난어업자 위령비(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조난어업자 위령비는 1934년 6월 폭풍우로 인한 200여명의 사상자를 위로하기 위해 세워졌다. 2016.6.13

터널에서 나와 다시 동쪽 언덕으로 오르면 황해도지사 명의의 조난어업자위령비가 세워져 있다.

1934년 6월 2일 폭풍우로 연평도로 피난한 어선 600여 척 중 323척이 침몰하거나 파손되면서 발생한 204명의 사상자를 위로하는 비다. 남편이나 아들이 배타러 나갔다 돌아오지 못하는 섬 주민들의 가장 가슴 아픈 사연이 담겨있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등대공원(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등대공원은 1960년대 전국 각지에서 몰려온 수천척의 어선의 안내 역할을 하다 폐쇄된 등대를 보존하고자 만들어졌다. 2016.6.13

바로 인근에 등대공원이 서 있다. 등대는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수천 척의 어선들을 안내하고자 1960년 3월 세워졌고 1974년 7월 안보상의 이유로 폐쇄됐다.

공원 입구에 1959년 사라호 태풍으로 숨진 어민들을 위로해 제작된 가요 눈물의 연평도(최숙자 노래) 노래비가 서있다. 조기를 듬뿍잡아 온다던 배는 어이해 안오느냐는 구절이 있다. 노래비는 선착장에도 있다.

평화공원에서 해변으로 500여m를 내려가면 가래칠기 해변이 있고 북쪽으로 병풍바위가 그림처럼 서 있다. 해변은 아담하고 주로 흰 자갈이 깔려 있다.

이곳에서 해안 철책을 따라 1.7㎞ 걸어가면 연평도의 대표적인 해수욕장 구리동해변이 나타난다. 아스팔트 도로를 이용해 차량으로 가도 된다. 북한이 보이는 해수욕장은 길이 1㎞, 너비 200여m로 흰 자갈과 고운 백사장을 자랑한다.

맑고 푸른 바닷물, 시원한 바람은 굳이 바닷물에 뛰어들지 않아도 저절로 땀을 식힌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구리동 해변 (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연평도의 대표적 해수욕장인 구리동 해변은 북한을 바라보며 피서를 즐길 수 있다. 2016.6.13

내친 김에 도로를 따라 2.9㎞가량을 북동쪽으로 달리면 망향공원이 보인다. 섬 동북단에 있는 공원에 망향비가 서있다. 북녘 고향을 떠나온 실향민들의 시린 가슴을 달래주는 글귀가 쓰여 있다. 맑은 날이면 북한의 공장 굴뚝 연기까지 보일 정도로 북한이 지척이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망향공원 전경(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연평도 동북단에 망향공원이 꾸며져 있다. 맑은 날이면 북한 공장의 연기가 보일 정도로 북한이 지척이다. 2016.6.14

최근엔 안보체험 교육장소로 중·고교생이 많아 찾아온다.

구리동 해변에서 망향공원까지 산 북쪽에는 해병대 부대, 초소, 진지가 이어져 있지만 황해도가 보이는 해안 곳곳은 관광객에게 산책로로 개방돼 있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의 해안 산책로 (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북한이 보이는 연평도 북쪽 해안 일부가 관광객들에게 개방돼 있다. 2016.6.13

동쪽 도로를 따라 마을로 내려오면 연평면사무소 주변에 안보교육장, 무명 육용사 충혼탑, 충민사가 있다.

안보교육장은 2010년 11월 북한 포격으로 무너진 일반 민간주택을 그대로 보존해 전쟁의 참화를 보여주고자 만들었다. 주택 지붕과 담이 무너져 내려 앉아 있고 곳곳이 검게 그을려 있어 당시 참상을 말해준다. 2층에는 당시 포격 상황을 영상으로 재현해 놓았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무명 육용사 충혼탑(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구월산 공비 토벌에 자진 참전했다고 돌아오지 못한 6명의 전사자를 기리는 보훈시설이다. 2016.6.14

무명 육용사 충혼탑은 한국전쟁 당시 황해도 구월산 공비 토벌에 자진 참가한 연평도 청년 30여명 중 돌아오지 못한 6명을 기리는 보훈 시설이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충민사 전경(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연평도 주민들은 조기를 잡게 해준 조선시대 명장 임경업 장군을 기리기 위해 사당을 짓고 매년 제를 올리고 있다. 2016.6.13

마을 북쪽 언덕바지에 있는 충민사는 임경업 장군을 기린 사당이다. 조기 잡는 법을 알려줘 주민들이 주식을 해결해준데 대한 감사의 뜻이다. 충민사에서 연평도 앞을 내려다 보는 전망이 최고다.

<가고 싶은 섬> 엄마 품안같이 포근한 연평도_1
연평도 관광 안내도 (연평도=연합뉴스) 김창선 기자 = 옹진군 연평면 사무소가 마을 한 가운데 세워놓은 관광 안내판. 2016.6.14

전체 관광 코스는 평화공원(조기역사관·등대공원)→ 가래칠기 해변→ 구리동 해변→ 망향공원→ 안보교육장→ 충민사→ 무명육용사 충혼탑이다. 차량으로 여행하면 5∼6시간이면 충분하다.

일부 관광객들은 바다낚시를 즐긴다. 요즈음은 광어와 농어가 많이 잡힌다고 한다.

연평도는 서해 백령·대청도와 함께 최북단 서해 5도의 하나다. 북한 황해도 육세미와 12.8㎞밖에 떨어져 있지 않다.

섬 남쪽은 평온한 어촌이지만 북쪽 대부분은 무적 해병대가 주둔하고 있다. 지금도 곳곳에서 진지를 짓고 있다. 연평도 남쪽 마을을 제외하고 섬 전체를 요새로 보면 된다.

해변이나 해안 산책은 야간에 제한된다.

마을버스가 하루 6회 운행한다.

소연평도는 대연평도에서 10㎞ 가량 떨어져 있고 해안 절벽이 사람 얼굴 모습과 비슷하다는 얼굴바위가 있다. 관광객들은 대부분 바다 낚시를 즐긴다.

▲ 교통편·요금

쾌속선이 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 032-889-4060)에서 대연평도까지 하루 한차례 왕복 운항한다. 요금은 편도로 5만5천300원(플라잉카페리호)과 4만8천300원(코리아나호) 두가지가 있다. 플라잉카페리호가 크고 편안해 요금이 더 비싸다고 선사 측(☎ 032-881-0073, 1577-2891)은 설명했다.

하지만 관할 옹진군청이 서해5도 관광 진흥을 위해 요금의 50%를 지원해 반 값이면 갈 수 있다.

출항시간은 오전이지만 일정하지 않다. 소요 시간은 2시간 남짓이다. 출항시간과 소요시간이 안개 등 기상상태와 계절 등에 따라 달라 출발전 반드시 연안여객터미널이나 선사에 문의해야 한다.

▲ 맛집

식당은 31곳이 성업 중이다. 광어·농어·놀래미 회와 꽃게탕·찜이 관광객의 입맛을 당긴다. 꽃게탕(中)이 4만원인데 요즈음 꽃게가 많이 잡히지 않아 양이 많지는 않다.

밀물식당(☎ 032-832-3080), 바다횟집종합회센터(☎ 032-832-1178), 송림식당(☎ 032-833-1050), 연평회관(☎ 032-833-1195), 제일횟집(☎ 032-832-7357), 현미식당(☎ 032-831-2065), 홍어먹자(☎ 032-832-8505)

▲ 숙박

민박, 펜션, 여관, 여인숙 등 28개가 손님을 맞는다. 요금은 숙박업소, 방 크기, 계절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하루에 3만∼15만원이다.

갈가마민박(☎ 010-8875-5559), 경주민박(☎ 032-832-4275), 등대민박(☎ 032-831-6066), 연도민박(☎ 032-831-2065), 연평민박(☎ 010-5060-7706), 초원민박(☎ 032-832-5373), 황해여관(☎ 032-832-4707)

관광 문의는 옹진군청 관광문화과(☎ 032-899-2210), 연평면사무소(☎ 032-899-3450).

changsun@yna.co.kr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2016/06/19 07:00 송고

연관 뉴스


추천 0
프린트버튼
공유하기 iconiconiconiconiconicon

 

페이지 맨 위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