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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이매진] 옛이야기 들려주는 청도 운강고택
2017-05-11 08:01:00최종 업데이트 : 2017-05-11 08:01:00 작성자 :   연합뉴스

(청도=연합뉴스) 이창호 기자 = 봄이면 복사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청도는 물이 맑고 산이 푸르며 인심이 순후해 예로부터 '삼청(三淸)의 고장'으로 불렸다. 경북의 최남단에 있는 청도는 수려한 자연경관뿐만 아니라 1천500년의 역사를 간직한 유서 깊은 고찰 운문사, 전형적인 평지성과 산성의 중간형태의 특성을 보여주는 청도읍성, 조상의 지혜가 담긴 석빙고 등 수많은 문화유산을 품고 있다. 조선 중기 성리학자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1479~1560)이 무오사화를 겪은 뒤 벼슬을 사양하고 들어와 살며 밀양 박씨 집성촌을 이룬 금천면 신지리는 운강고택과 만화정(중요민속자료 제106호)을 비롯해 섬암고택, 운남고택, 도일고택 등 고택들이 즐비하다. 오랜 세월을 견딘 고택은 아름다운 건축미와 삶의 지혜를 담아 후손에게 옛이야기를 들려준다.
청도군 금천면사무소에서 919번 지방도를 따라가다가 금천교를 건너면 금천면 신지리에 닿는다. 예전에 섶마리, 섶말 등으로 불린 신지리는 동창천이 감싸고 있는데 마을 앞 2차선 도로에서 토석담을 따라 골목으로 들어가 다시 한 번 꺾어 막다른 골목 끝에 이르면 솟을대문이 눈길을 붙든다. 이렇게 깊숙한 곳에 막다른 골목길을 만든 것은 외부로부터 집을 보호하기도 하지만 집 안에 들어온 복과 재물이 쉽게 빠져나가지 못하게 한다는 의미와 더불어 은둔자의 삶을 살겠다는 선비의 뜻이 담겨 있다고 한다.
운강고택은 소요당 박하담이 서당을 지어 후학을 양성했던 옛터에 조선 순조 9년(1809)에 현 소유주의 6대조인 박정주(朴廷周)가 분가하면서 살림집으로 건립한 가옥이다. 운강(雲岡) 박시묵(朴時默)이 1824년(순조 24년) 집터를 넓히고, 박순병이 1905년 다시 중수했다. 이종기 문화관광해설사는 "고즈넉한 고택은 우리만의 고유한 정서와 문화가 오롯이 담겨 있는 문화유산"이라며 "여든여덟 칸짜리 운강고택은 안채와 사랑채가 각각 마당을 가운데 둔 'ㅁ' 자형으로 되어 있고, 상하의 구분을 분명히 하는 양반가옥의 규범을 잘 따르고 있다"고 설명한다.
◇ 삶의 지혜 녹아든 여든여덟 칸짜리 저택
문간채에 있는 솟을대문에는 홍살이 없고 김충현이 썼다는 운강고택(雲岡故宅) 당호가 격자형 설창 위에 걸려 있다. 담장도 높아 깨금발을 해도 고택 마당이 보이지 않는다. 솟을대문을 밀고 들어서면 대문간에 무쇠솥 한 개를 건 아궁이가 있는데 대문채의 온돌방을 데우는 아궁이다. 이곳을 지나면 사랑마당이 나온다. ㅁ 자형 사랑마당에 사랑채, 중사랑채, 고방채, 문간채 4동이 있고. 사랑채는 마당 북쪽의 잘 다듬은 기단 위에 앉아 있다.
전면 다섯 칸, 측면 두 칸의 팔작지붕인 사랑채는 툇마루를 들인 마루방 2칸과 사랑방 2칸, 툇마루가 없는 청지기방 1칸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뒷사랑방은 사랑채와 안채를 연결해주는 내밀한 공간이다. 이 방은 사랑마당을 거치지 않고 안채로 가는 통로이자 친정아버지와 오라버니 등 남자 손님이 찾아오면 상봉하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곳곳

[연합이매진] 옛이야기 들려주는 청도 운강고택_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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