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아파트 경비실 앞에서 작은 소란이 일어났다. 외출에서 돌아오는 나를 경비실 아저씨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모르는 몸짓으로 불러 세우고 연신 머리를 긁적거렸다. 장미가 참 예쁘네요_1 넝쿨장미를 심고 화단에 봉숭아를 키운지 삼년이 되어간다. 이곳으로 이사 올 때 나름 프로방스 정원을 꿈꾸며 사시사철 내내 꽃을 키우며 살리라는 큰 포부가 있었다. 이사 온 첫해에 나무시장에 가서 넝쿨장미를 사 베란다 밑으로 심었다. 그리고 봉숭아 씨도 뿌렸다. 장미를 처음 심었던 그해도 풍성하지는 않았지만 고맙게 몇 송이의 꽃을 피웠다. 작년에는 제법 넝쿨이 우거져 주민들의 눈길을 끌기 시작했다. 여름에는 아파트 단지에 있는 유치원 아이들이 단체로 봉숭아 구경도 오고 지나가는 주민들도 봉숭아에 눈길을 한참 구경하다가 가기도 했다. 그래서 올해는 좀 더 적극적으로 화단 관리를 해 볼 심산으로 봉숭아는 물론이고 키가 큰 코스모스는 뒤쪽으로 씨를 뿌리고 그 앞에 분꽃과 해당화 씨를 뿌렸다. 옆 집 앞까지 씨앗을 뿌려 한창 와글와글 올라오는 것을 보니 참 잘했다 싶었다. 현관을 드나들 때마다, 하루하루 쑥쑥 자라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했는지 모른다. 풀도 뽑아주고 물도 주었다. 이렇게 정성을 들인 이유는 나만의 꽃밭을 갖고 싶은 것이 아니었다. 어지럽게 자란 장미넝쿨을 가시에 찔리면서도 보기 좋게 정리한 것도 나의 수고로 여러 사람들이 예쁘게 봐 줄 수 있다면 행복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아파트 생활이 대부분 그렇듯이 무비건조하다. 게다가 우리 아파트는 어린아이들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렇기 때문에 밖에서 노는 아이들도 없고 아침저녁 출퇴근하는 주민들만 있을뿐 서로 인사하고 아는 체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다. 이웃과 관계 형성이 전혀 되지 않는다. 일층에서 바라본 풍경은 그러했다. 요즘은 하루가 다르게 잡초가 자란다. 시간 날 때마다 잡초를 뽑고 돌을 골라낸다. 어떤 때는 그런 내 모습이 한심스런 생각이 들기도 하고, 꽃구경하러 왔다가 즐거워 할 사람들을 생각하면 다시 잡초 뽑기에 집중한다. 가장 먼저 꽃 피운 것은 수선화였다. 몇 포기 되지 않은 노란 꽃이 이른 봄에 주민들의 발길을 붙잡았고 요즘은 베란다에 매달린 넝쿨장미가 한창 예쁘게 피고 있다. 잡초를 뽑는 나에게 지나가는 동대표님이 말한다. "장미가 참 예쁘네요. 이렇게 예쁜 꽃을 아침저녁으로 볼 수 있어 감사합니다"라고. 작년에 친정 엄마 마당에 심어주고 싶다고 봉숭아 모종을 받아갔던 반장님도 "우리 아파트 중에 우리 동 화단이 제일 예쁜 것 같아요"하며 장미 구경을 한다. 장미가 참 예쁘네요_2 사실은 혼자 화단을 가꾼 것은 아니다. 경비실 아저씨도 시간이 날 때마다 잡초를 뽑아주기도 하고 수선화 뿌리도 옆 통로 할머니가 주신 것이다. 이사 갈 때 버리고 간 화초를 화단에 심은 것도 경비실 아저씨였다. 화단에 머물러 있는 시간이 길면 길수록 이웃들과 관계형성에 도움이 된다. 작년에 빈 공간으로 남았던 옆 집 화단에도 꽃나무 하나 둘 늘어났다. 화단에 아무도 관심 없다고 여긴 나의 생각은 틀렸다.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지 지나다니는 모든 주민들이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움큼 움큼 봉숭아가 뽑힌 자리에 보는 이들로 하여금 지금은 상흔이 있지만 남아 있는 것들이 잘 자랄 수 있는 솎아주기를 했다고 하면 마음이 좀 편해지겠다. 더불어 장미와 작은 꽃들이 눈과 마음을 쉴 수 있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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