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4월 26일. 황순원의 소나기, 가슴으로 만나다_1 황순원의 소나기, 가슴으로 만나다_2 드디어 황순원문학촌에 도착. 문화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문학관을 둘러본다. 혼자왔으면 5분이면 둘러보았을 문학관 곳곳에 좋은 이야기가 숨겨져 있음을 알려주신다. "황순원선생님의 작품은 순수와 절제의 미학이라고 제자분들이 정의해 주셨어요. 원래 시를 쓰시던 분이라 문체가 정말 간결하고 아름답습니다. 그런 작품만큼 생활도 바르게 해 오신 분이세요. 여기가 집필실을 그대로 옮겨놓은 곳인데요, 평소사용하던 물건들 그대로, 크기 그대로 재현해 놓은 곳이예요. 보시면 얼마나 소박하고 간결한지 아실 수 있죠? 제자들이 찾아와서 앉을 자리가 없으니 집필실, 서재를 좀 크게 잘 꾸며드리겠다해도. 집필실은 '언어를 벼리는 대장장이의 공간'이다, 이외에 더 무엇이 필요하겠느냐...며 마다하셨대요." 실제로 서재는 간결하고 소박한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집필할때 사용하던 낮은 책상이 너무도 작아서 오히려 초라하게 느껴졌다. 평생을 저렇게 작은 책상에서 그리도 많은 작품을 하나하나 손으로 써서 완성하셨구나! '좀 더 좋은 노트북이 있었으면 좋겠다... 조용한 공간에서 사운드 좋은 음악을 틀어두고 넓은 창 앞에 책상을 두고 앉아 글을 쓰면 저절로 써 지겠지..'하던 나의 환상이 반성을 하게되는 순간이다. "저는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작가들이 원고지에 글을 쓰다 뜯어버리고, 고뇌하고 또 쓰고 또 찢어버리고... 하는 장면을 보면 그렇게 멋있더라구요. 그런데 여기와서 황순원선생님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게 아니라는걸 알게됐어요. 여기 좀 보세요. 이게 선생님의 창작노트인데 글을 그렇게 많이 쓰신 선생님도 이렇게 깨알같이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고 어느정도 글이 완성되면 원고지에 옮기셨다고 해요. 평소에 낭비하는걸 아주 싫어하셔서 종이 한장, 원고지 한장도 허투로 쓰는 법이 없으셨다고..." 실제로 창작노트를 살펴보니 깨알같은 글씨가 두 페이지 가득 빈틈없이 채워져있었고, 글을 쓰고 지우기를 반복한 흔적 또한 한 가득 이었다. 오래도록 글 만 써오신 분들도 이렇게 작품을 쓰고 고치기를 반복하시는 구나. 문득 언젠가 책에서 보았던 베토벤의 악보가 떠 올랐다. 베토벤... 얼마나 철저한 완벽주의자였는지 종이가 다 헤지도록 음표를 그리고 수정하고, 또 그리고 수정하여 새까맣게 변해버린 그 악보. 그리고 그것을 보며 나는 특별히 잘 하는것이 없는 것이 아니라 '특별히'더 노력하는게 없음을 깨달았던 순간. 역시 거장들은 통하는 것인가! 그렇게 문학관을 나와 오순도순 도시락을 먹고 징검다리가 놓였다는 언덕을 따라 잠시 산책을 한다. 날씨도 우리를 반겨주는지 갑자기 일기예보에도 없던 소나기가 내린다. 우리는 당연히... '원두막'으로 들어가 또 소설 소나기의 한 구절을 되뇌인다. 어른이 되면서 우리는 '순수함'과 '추억'에 대해 늘 갈망하며 살아간다. 추억을 찾아 어린시절 그 장소에 다시 가더라도, 여유가 있어 충분히 그 곳에 머물고 바라보고 있어도 우린 이미 어른이 되었기에 그 갈망은 그저 목마름으로 지속될 뿐이다. 하지만 오늘 소나기를 찾아떠난 여행은 '여리고 순수한'것에 대한 나의 갈증을 잠시나마 풀어주는 시간이었다. 황순원의 소나기, 가슴으로 만나다_3 황순원의 소나기, 가슴으로 만나다_4 문학과 여행의 만남. 이것은 단순한 여행(관광)이 내게 주었던 그간의 1차원적 즐거움을 넘어 떠난다는 것의 새로운 재미를 그리고 문학작품을 이해하는 새로운 방법을 내게 알려주었다. 노인과 바다를 이해하기 위해 쿠바로 떠나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카페에 앉아 차를 마시고 싶다는 누군가의 바람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 그런데 참, 이번 계집앤 어린 것이 여간 잔망스럽지가 않아. 글쎄, 죽기 전에 이런 말을 했다지 않아? 자기가 죽거든 자기 입던 옷을 꼭 그대로 입혀서 묻어 달라고..." 오늘 소나기의 소년, 소녀를 가슴으로 만났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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