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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지고 사는 현대인과 과거를 안고 사는 네팔인
정글로 가는 길, 3박 4일 여행기(2)
2013-03-06 17:31:09최종 업데이트 : 2013-03-06 17:31:09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누가 옳은가? 사람은 살면서 매순간 옳고 그름의 정의를 안고 산다. 숙명처럼 지고 산다. 경쟁이 아니라도 그렇고 의식하지 않아도 그렇다. 사람의 태어나면서부터 그런 존재다. 나이가 들어 엄마 품에 잼잼이, 돌이돌이(도리도리)에서부터 한글을 배우고 각종의 문자를 배우고 익히며 사람들은 구분하고 구분하는 법을 배우고 산다. 

우리가 살고 있는 방식의 현대문명은 분명 이기는 편에 선 것일까? 반드시 옳은 것일까? 성과의 측면이나 발전지향의 측면에서 이런 질문은 매우 근본적인 물음이다. 그러나 답은 자명하다. 당연히 현대문명의 발전에 손을 들고 옳은 편이라 답할 사람이 다수다. 더구나 미개하게 보이는 세상에서는 더욱 절감한다. 그러니 네팔에서 보는 풍경들은 매우 많은 부분에서 미개해 보일 수 있다. 

공존이라는 말을 놓고 보면 네팔은 분명 공존하는 사회다. 그런 점에서 발전을 추구하는 사람들이나 과거를 지키고자 하는 사람 모두 그리움에 대상으로 삼을 만한 나라다. 그러나 네팔을 긍정하고자 하는 사람 눈에도 안타까운 일은 많이 눈에 띤다. 앞서간다고 하는 나라의 학생들이 교과서에서나 배우는 과거가 그대로 현실에서 보이는 나라다. 

문명을 지고 사는 현대인과 과거를 안고 사는 네팔인_1
누구의 오토바이인가? 그러나 저 멀리 보이는 히말라야로 그의 눈도 향하고 있을 것 같다. 내가 탄 관광버스에서도 그의 눈길에서도 히말의 신성한 것일테니까.

문명을 지고 사는 현대인과 과거를 안고 사는 네팔인_2
두 사람은 밭두렁을 걷고 있고 두 사람은 밭을 일구고 있다. 앞 사람은 쟁기를 끌고 뒷 사람은 쟁기를 밀고 있다. 참 원시적이란 생각이다. 정글보다 더 정글같은 사람들의 삶이란 생각이 든다.

문명의 발전과 무관한 듯 오래된 과거와 현재까지 그대로의 모습으로 이어지는 히말라야는 그 중 하나의 보물이다. 네팔인들에게 히말라야가 신성시 되는 이유는 그들에게 보물같은 존재의 이유도 있을 법하다. 그를 자랑이라도 하듯 네팔 주요 지역 어디에서도 날씨가 맑은 날에는 자신의 자태를 드러낸다.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히말라야가 보이지만 말이다. 카트만두 시내에서도 보이는 히말라야가 오늘은 교외로 접어든지 30분도 안되어 당고트(DANGKOT)라는 지역을 지나자 눈에 띤다. 멀리 랑탕 히말라야 인근에 가야 잘 볼 수 있는 거네스 히말라야다.  

나그네나 네팔사람이나 히말라야를 보고 좋아하는 것은 다 마찬가지다. 아마도 느낌의 차이가 있을 뿐이리라. 처음 보는 사람과 오래도록 보아온 사람의 느낌 같은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시민기자도 처음 보는 조금은 놀라운 모습이 눈에 띠었다. 일행들은 다른 네팔지역에서 두 사람이 쟁기를 끄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고 말하며 서양 사람들 이야기를 한다. 
네팔인들은 서양인들을 말(고라=GORHA)이라고 한다. 아마 쟁기를 끄는 사람들을 그렇게 빗대어 말하는 듯하다.

1시간 30분을 달려온 관광버스가 대부분의 관광버스가 정류하는 휴게소에 섰다. 나는 처음으로 버스가 선 휴게소가 아닌 일행이 안내하는 식당을 찾았다. 그곳에서 간단한 네팔 로띠(난과 다른 밀가루 음식인데 모양은 비슷하다)라는 음식, 콩과 감자를 썰어서 죽처럼 만든 떨거리(반찬)를 함께 먹었다. 아침 식사다. 그곳에는 작은 학교가 있었다. 내가 학교에 다닐 때 하던 애국조회 같은 것이었다. 네팔 국가를 부르고 선생님의 훈시를 듣고 하는 일이다.

문명을 지고 사는 현대인과 과거를 안고 사는 네팔인_3
작은 운동장에 몇 안되는 학생들이 학교 조회에 참석했다. 앞에 몇명의 선생님들이 그들을 가르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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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을 지고 사는 현대인과 과거를 안고 사는 네팔인_4
정글로 가는 길은 과거로 가는 길인가? 츠트완 시내에 풍경들이 한국의 70년대 풍경과 닮았다.

그들이 마치 과거에 우리에 갇힌 아이들처럼 보였다. 그러나 난 믿는다. 그들은 그 작은 운동장에 갇힌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그 작은 운동장에서 더 큰 꿈을 안고 살고 있다. 그리고 무언가 새로운 세상을 향해 뚫고 나갈 꿈을 키우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아이들의 밝은 눈빛은 어느 곳에서나 힘차다. 그들이 꾸는 꿈들이 어찌 그들의 교실의 크기나 운동장의 크기로 판단할 성질의 것인가? 

이런 저런 사색의 물결을 헤치듯 깊은 잠에 빠졌다 깨어나니 치트완과 카트만두의 중간지점이라고 흔히 말하는 무글린을 지난 지 한참이다. 치트완에 도착해보니 다시 또 하나의 덜문명화된 도시가 있다. 치트완이다. 
내가 탄 버스 운전기사석으로 내가 70년대 보았던 삼륜차가 보인다. 수많은 사람들의 자전거 행렬도 정글의 깊이를 알려주려는 듯 우리를 반긴다. 우리는 그곳에서 치트완 롯지의 픽업 나온 짚차를 갈아탔다.  

네팔 히말라야, 문명과 과거, 자연과 현대, 김형효, 치트완, 당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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