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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꿈, 해안 길에서 찾다
2013-03-07 14:40:25최종 업데이트 : 2013-03-07 14:40:2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화려한 봄날이 돌아왔다. 그야말로 나들이하기 좋은 계절이다. 또한 한해의 출발점이기도 한 3월 초순이기도 하다. 이즈음 마음을 치유하는 선정(禪定)여행길에 오르면 어떨까 싶다. 산세가 수려한 명소 산행 길도 좋고, 파릇파릇 봄빛이 돋아나는 들판을 찾아가도 좋다. 

그렇지만 지난겨울 가슴속에 맺힌 응어리(?)가 많아 평안을 얻고 싶다면 어디가 좋을까. 단연코 바닷가 해안길이 최고다. 해안가를 돌다보면 간간이 만나는 포구와의 조우도 정겹고, 듬성듬성 빛을 발하며 제자리에서 몫을 다하고 있는 등대와의 만남도 이국적이다. 그것이 풍광 좋은 벼랑 끝 명당자리에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면 기분 최상이다.

누군가가 한 말이다. 세상을 바라볼 때는 '사고(思考)를 최대한 단순화'해야 사물을 제대로 볼 수 있다고. 극도의 단순성으로 세상을 바라봐야 세상의 순수성이 제대로 보인다는 뜻일 게다. 부산 해안 길에서 실천이라도 하듯 최대한 마음을 비우고 사물을 바라보려 했다. 그리고 천천히 다가가니 친절하고 관대한 자연의 맛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한적함속에서 해풍을 맞으며 드디어 명상의 길로 들어갔다.

맛있는 갈맷길 

전국이 걷기열풍에 휩싸이면서 '올레길', '둘레길', '해솔길', '나들길', '옛길' 등 지자체마다 명승지와 자연을 연계해 관광객들을 불러들이고 있다. 
부산은 바다와 산과 숲 그리고 들판까지 어우러진 명승지들을 모아 '갈맷길' 루트를 만들었다. 제일먼저 들른 곳은 각기 다른 모습의 이색등대 체험으로 유명세를 떨치고 있는 대변항이다.

봄날의 꿈, 해안 길에서 찾다_1
오붓한 대변항 풍경이 마냥 정겹다

포구에 막 쏟아낸 듯한 미역줄기가 선착장에 수북이 쌓였다. 어촌사람들 몇몇이 1차 다듬기라도 하듯 분주히 손을 휘젓는다. 관광객인 듯 보이는 서너 명의 흥정소리가 사람냄새를 풍긴다.
"함 잡셔보세요. 괜찮아요. 이것 먹어도 되는 거예요."
우리를 안내한 택시 아저씨는 가늠하기 힘들만큼 긴 미역줄기를 한 움큼 들고 오더니 딸내미와 나에게 뚝뚝 끊어주며 먹어보란다. 아이는 입에 넣자마자 화들짝 뱉어낸다. 비릿한 바다냄새에 적응하지 못한 거다. 이 또한 즐거움인 것을, 아이는 언제쯤 이 맛의 순수를 알 수 있을까.

마을의 안전을 지켜준다고 믿는 장승등대와 영원한 우리의 영웅 마징가 Z, 태권 V 등 별명을 지닌 등대 앞에서 이리저리 포즈를 취하며 잠깐이나마 동심에 휩싸여 본다. 발그레 미소를 짓는 아이를 보면서 혼자의 여행도 좋지만 더 자주 함께 여행길에 올라야겠다는 생각을 들게 한다. 나 또한 가슴속에 미소가 번진다.

드라마 촬영지 해안가

봄날의 꿈, 해안 길에서 찾다_2
드림 촬영지에서 딸내미와 함께

"왕비님! 공주님! 이쪽으로 오세요."
"시간은 충분하니 서두르지 마시고 느긋하게 여유롭게 감상하세요."
하루 관광 안내원으로 자청하신 택시 기사님의 말이다. 관광은 마음의 여유로움을 가지고 봐야지 그렇지 않으면 재미가 없단다. 부산 토박이로서 해외파(자신은 미국 유학파라고 소개하면서 미국 운전면허증까지 보여줌)라고 소개한 기사님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진실을 알 수야 없지만 딱 하나 맘에 든 것은 관광지 곳곳의 역사를 알려주었다는 것이다. 뭐 그것도 차차 따져보며 알아봐야 하겠지만 말이다.

드라마를 단 한 번도 보지는 못했지만 '드림' 촬영지란다. 해안가 구릉지에 조성된 조그만 성당과 주변이 아기자기한 세트장이다. 나중에 집에 돌아와 사진들을 보니 바닷가와 조화를 이룬 풍경이 찬란하여 마음에 들었다. 역시 기사님이 잘 찍어 준 덕분이란 생각을 하니 그분이 고맙기만 하다. 

또 다른 곳은 곽경택 감독의 대표작 '친구' 촬영지다. 어릴 적 친구들이 등대가 보이는 곳 바닷가에서 홀딱 벗고 수영을 하며 우정을 쌓는 신(Scene)이 촬영된 장소다. 
등대로 가는 길은 생각보다 매우 길었고 한적했다. 바로 옆에는 어선들을 수리하는 곳이었는데 그 또한 관광거리란 생각이 들 정도로 매우 색다른 느낌을 선사한다. 등대와 어선은 우리들의 마을을 울렁거리게 한다. 곧 정지된 화면 '선정'으로 눈에 들어온다.

영도 등대길

여행 이튿 날, 아침 일찍 태종대로 향하는 유람선에 올랐다. 해안길 걷기에 앞서 바닷길을 맛보기 위함이다. 1박2일 여행길이라 부산 명소를 둘러보려면 시간을 많이 요하는 유람선은 곤란하다. 그렇지만 전날 누군가 '태종대의 진면목은 배를 타야'한다는 말 한마디에 결국 승선하고 말았다. 

해안선으로 이어진 도심과 어우러진 절묘한 바다풍경에 취하고, 물이 나면 다섯, 물이 들면 여섯으로 보인다는 오륙도를 조망할 즈음 영도등대에서 사람들을 태운단다. 
아이와 함께 홀짝 내렸다. 어디라도 길은 있을 테니. 그런데, 아뿔싸! 배 안에서 올려다보았을 때와는 달리 등대길 오르는 길이 완전 주상절리 암벽길이다. 
허나 후회하기에는 이미 늦었다. 유람선은 이미 시야에서 사라져버렸으니. 그렇지만 나중에야 깨닫는다. 벼랑 끝 명당자리 영도 등대, 이 길이야말로 부산 해안 길의 백미였다는 것을. 

봄날의 꿈, 해안 길에서 찾다_3
풍광으뜸 영도등대 주상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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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날의 꿈, 해안 길에서 찾다_4
영도등대 오르는 길, 굉장히 가파르지만 잘 조성되어 있다

영도 등대에 오르기 전 입구 너럭바위에 갓 잡은 해산물이 노점상들에 의해 팔린다. 친구와 함께했다면 해삼에 쓴 소주잔이라도 기울일 판이다. 잠시 머뭇거리다 이내 오르기 시작했다. 
계단 30개도 못 올라 '헉헉'소리가 절로 난다. 잠시 숨을 고르며 뒤를 돌아본다. 노점상의 풍경도 인간적이지만 나의 목전에 확 와 닿는 아찔한 모습에 깜짝 놀란다. 수천 년 동안 바닷물의 침식과 풍화작용으로 형성된 해식애(海蝕崖) 해안절벽 때문이다. 제주도나 여느 해안과는 다른 황홀함을 내뿜는다. 또한 절벽을 타고 조성된 나무 데크 계단을 수없이 오르는 도중 코를 찌르는 덤불속 봄 냄새도 흥분을 더한다. 그만큼 멋진 길이다. 

지난번 부산탐방길 책방거리 길이 번잡함이었다면 이번 해안 길은 명상의 길이다. 마음을 최대한 비우고 사물을 바라보는 시간이다. 
불어오는 바람이 춥지 않은 봄볕 속에서 해풍을 맞으며 걸어보자. 치렁치렁 목에 두르던 목도리 대신 화사한 스카프 한 장 두른 후 봄은 맞으러 바다로 가자. 흐트러졌던 생각들을 치유하는 시간으로 충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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