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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 기도가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가?
간절하고 절실한 기도에 대해 생각한다
2013-02-27 08:25:25최종 업데이트 : 2013-02-27 08:25:2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간절하다는 것, 분명 그것은 기도와 통한다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그러나 그것이 반드시 신의 영역에 대한 간구는 아닐 수도 있다는 것 또한 나의 생각이다. 간절함이 자신 스스로를 향하여 움직일 때 더 많은 성취와 더욱 기대할만한 삶의 성취가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의 삶은 대부분 일상의 흐름을 따른다. 그러나 벽에 막히듯 무언가 안 풀릴 때 간절해진다. 그래서 간절해지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간절해지는 것, 깊은 인식이 없이 이루어지지 않는 것 같다. 누구나 추구하는 삶의 행복에 필수조건인 현대문명사회에서 자본도 마찬가지다. 많은 사람들이 자본의 축적까지는 아니라도 반드시 얻어야할 재위로 인식하고 산다. 그래서 절실하면 이루어지는 것에 포함시키기가 매우 어렵다. 

가난한 나라 사람일수록 어려운 것이 자본을 구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자나라에서는 이미 모든 것이 시멘트나 아스팔트처럼 단단히 시스템으로 굳어진다. 그러니 부자나라에 가난한 사람일수록 삶의 고통은 심하다.

진정 기도가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가?  _1
기도회 사진이다. 매우 많은 아낙들이 기도회를 찾았다. 벌써 일주일 째 양로원 기금마련 기도회가 열리는데 대형천막 안에 빈 자리가 없었다.

진정 기도가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가?  _2
일주일간의 기도회가 열린 맵피사원을 찾았다. 1년 365일 아침, 저녁 항상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 곳이다. 기도의 일상을 사는 네팔사람들의 신성과도 같다.

가난은 하나의 여지인 것처럼 신을 향해 기도할 수 있다. 부자나라에서는 신을 향해 기도하기도 힘들다. 어느 정도의 경제적 여유없이 기도도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기도란 평정을 갖고 심신의 안정속에 이루어져야한다. 그러나 극단의 상황에서도 오직 기도만이 남아있을 때도 있다. 네팔에 온 것을 실감하는 것은 네팔인들의 기도의 지극정성 때문이다. 그들이 경이로운 것은 모든 것을 잃었다해도 기도는 할 것 같은 느낌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 잃은 것은 무엇인지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지만 말이다. 

아직 일주일이 안되었다. 열두 번째 찾은 네팔, 새벽 한시 두시에도 많은 사람들이 모여서 노래하고 춤추면서 그들의 제의를 실행한다. 잠을 이룰 수 없을 정도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소리가 듣기 싫은 것은 아니다. 알 수 없는 암송들, 알 수 없는 노래와 박수, 그래도 그들의 희망이 그것이라면 나그네는 기꺼이 응원하고 싶은 기도다. 네팔에 와서 산다는 것 기도를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신과 사는 사람들 속에서 그래야만 자유로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틀전 한 양로원에서 초대가 왔다. 네팔에 그리 많지 않은 양로원이다. 처제가 이스라엘에 가서 돈을 벌어온 뒤 학원과 양로원을 열었다. 
많은 어르신들이 그곳에서 머물고 있다는 데 일주일간의 기도를 한다고 초대가 왔다. 오래전부터 인연인 맾피(Mephi)라는 동네에 있는 맵피먼디르(Mephi Mandir)에서 일주일 째 진행되는 기도회에 마지막날 참석했다. 

전날 처제에게서 전화가 왔다. 이번 기도회는 양로원의 운영기금을 구하기 위해 열리는 것이라고 했다. 양로원은 지난해 열었고 개원 때도 가보지 못해 남은 채무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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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회가 열리는 장소에 도착했다. 접수대가 있고 내부에서는 합장한 아낙들이 정면에서 행하는 힌두성자의 암송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진정 기도가 세상을 바꾸고 삶을 바꾸는가?  _4
힌두 성자가 암송을 하고 있고 간절한 기도 속에는 재물이 따른다. 성자에게 바치는 금전과 재의가 암송하는 사람에게 쌓이고 있다.

나는 한국에 있는 아내의 이름으로 네팔 루피를 봉투에 넣어 전했다. 최근 네팔은 극심한 정치적 불안과 외부관광객의 감소와 같은 비관적인 변화, 내부 기간도로망 건설과 발전소 건설 등 긍정적인 변화들이 있다. 
이런 변화들 속에서 네팔의 젊은이들은 할아버지와 할머니 세대의 유산인 기도의 유산을 그대로 물려받는 데 그다지 어려움이 없는 것 같다. 다만 현대문명적 요소들과 괴리감이 커서 언제까지 그런 전통이 이어질지는 알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망이 불투명한 사회에서 사람은 무엇을 할 것인가 생각해본다. 스스로를 일으켜 세워야한다. 절망적일 때야말로 가장 필요로 하는 힘은 스스로 세우는 일이다. 그중에 하나의 방법이 기도한다는 것, 그리고 그 기도를 통해 새로운 전망을 만들어내는 것이 네팔 사람들 같다. 

나는 아직 기도하지 못하고 있다. 아직 나는 나를 구하지 못하고 있다. 다만 나는 사람과 사람의 다리가 되어 살아보자는 염원이 있을 뿐이다. 
그래서 네팔을 이해하고 사람을 이해하고 남은 이해의 힘으로 내 나라를 이해하게 되는 것 같다. 내게 기도의 공간이 넓어지고 있다. 그래서인가 최근 시민기자에게 종교로 귀의하라는 제안이 여러 곳에서 들어온다. 

일주일간의 노래와 춤, 기도로 남은 것은 평화다. 간절함을 얻는 것처럼 중요한 기도도 없을 것이다. 간절해지자. 부모와 가족, 사회, 세상 모든 것들에 간절함을 갖자. 간절함을 갖는 것이 그 무엇보다 큰 기도의 실천이란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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