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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각국사(眞覺國師)비는 우리를 반겼다
광교산 두 번째 답사를 마치고
2013-02-18 06:15:55최종 업데이트 : 2013-02-18 06:15:55 작성자 : 시민기자   김홍범
진각국사(眞覺國師)비는 우리를 반겼다_1
진각국사(眞覺國師) :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보물 제14호)비
 
일행은 진각국사비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몸은 지쳤으나 마음은 한결같았다. "진각국사 비를 꼭 봐야겠다."는 거였다. 그 한마디로 충분했다. 
수원천을 따라 걸으며 진각국사비가 있는 곳에 가까울수록 서럽게 반기듯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곧 우리는 해질녘 조용히 빗물 속에서 '진각국사비'를 한동안 바라보고만 있었다. 

지난 2월 17일 10시부터 걷기 시작한 그 길은, 처음 걷는 사람에게도 가슴속으로 뭔가가 뜨거운 기운이 들어오는, 그 느낌을 표현할 수밖에 없었다. 길이란 참 신기하다. 길에 어떠한 의미와 가치를 부여하면 걷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뉘우치고, 깨달으며, 감동을 받게 된다.  

진각국사(眞覺國師)비는 우리를 반겼다_2
창성사지 오르는 길
 
고려시대 두 명의 국사를 배출했던 광교산에 있는 창성사지(진각국사(眞覺國師):진각국사 대각원조탑비 보물 제14호)와 서봉사지(현오국사(玄悟國師):현오국사탑비 보물 제9호)를 이어주는 길을 걸었다. 

두 번째 탐방으로 찾은 중요한 루트는 상광교버스종점을 시작으로 두꺼비바위 약수터(가칭)->창성사지->고뇌의계곡(가칭)->얼음동굴(골)->종루봉(비로봉)->김준용장군전승비->지네절터->양지재->물의계곡->서봉사지->명상의길(가칭)->성복동사지->천년약수터(또는 백년수 약수터)->생태연결녹지->문암골에 이르는 길이며 총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이날 다섯 명의 수원사람이 함께 걸었던 그 길은 우리에게 또 다른 의미를 부여했다. 

사람들에게 보다 좋은 곳들을 하나라도 더 찾아내는 것도 이번 탐방의 중요한 목적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많은걸 발견했으며 마지막 도착지인 움막골에 도달하자 가슴속으로 밀려오는 그 느낌은 사뭇 남달랐다. 

진각국사(眞覺國師)비는 우리를 반겼다_3
광교산 종루봉(비로봉) 오르는 길에 만난 부처님 형상의 고드름의 모습이 이채롭다
 
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며 걷자 구간마다 새로운 이정표가 발견됐다. 창성사지 오르는 길에서 만난 어떠한 세계의 경계를 이루는 물길의 신비함과 두꺼비가 내뿜는듯한 바위의 약수터가 그러했으며, 창성사지 절터에서 만난 복숭아나무도 우리에게 다가오는 의미는 깊을 수밖에 없었다. 

또한 창성사지 우물터에서 생명을 싹 틔우는 도룡뇽과 알의 모습도 이 길에 어울렸으며 고뇌의 계곡에서 만난 부처님 형상의 고드름, 깨달음과 내면의 정상이란 의미가 있는 종루봉(비로봉)도 그러했고, 청나라 군대를 물리친 구국의 영웅 김준용장군전승비와 광교산의 심장과 같은 기운이 있는 지네절터 등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내면세계의 깊이에 빠져드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이 길은 참 신비롭다.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세상의 이치는 계단을 밟고 올라가라며 그 다음단계를 자연스럽게 안내하고 있었으며, 때론 쉬었다 가라며 옛 이름 모를 절터나 구간 구간의 새로운 이정표들은 지친 일행에게 휴식을 주기에도 충분했다. 

진각국사(眞覺國師)비는 우리를 반겼다_4
용인 서봉사지에 있는 현오국사탑비 보물 제9호
 
그리고 우리는 서봉사지에 있는 현오국사탑비를 보고 깨닫기 시작했다. 그리고 무관심에 뉘우쳤다. 그곳에 있어 어떠한 생명이 이어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곳은 헝클어진 머리카락의 모습과 같지만 그곳의 기운과 정신은 뚜렷했다. 그리고 그러한 기운은 그곳을 변화시킬 듯 보였다. 우리가 받은 느낌은 수원사람의 마음을 저리게 하고 있었다. 

부모의 무덤을 옮겨놓고 수십 년간 기억 속에서 잊혀지고 있는 모습들이 그려졌다. 그리고 우리는 발걸음을 향했다. 마음은 벌서 두꺼운 나무창살에 갇혀있는 진각국사비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해질녘 진각국사비는 우리를 그렇게 반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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