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은 한국의 전통 건축양식으로 지은 집을 이르는 고유명사다. 초가집도 기와집도 다 한옥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한옥 하면 기와집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아졌다. 한옥이 이제는 기와집에만 한정되는 명칭이자 기억으로 자리 잡게 된 것일까.
사실 기와집보다 먼저 나온 한옥은 초가집이다. 기와가 나오기 훨씬 전부터 갈대나 억새, 띠 등으로 지붕을 엮고 살아 왔으니 말이다. 그 때문에 '草家'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문학에서는 '띠집'이라는 표현도 종종 쓰곤 했다. 그런 풀 지붕을 볏짚으로 바꾼 것은 벼농사를 짓기 시작한 이후로, 삼국시대부터 이미 초가와 기와가 공존해온 것을 볼 수 있다.
초가집은 오랫동안 우리 민족과 고락을 함께 해왔다. 그래서인지 초가집이 더 정겹고 푸근하게 느껴진다. 아니면 가난한 사람들의 집이었고, 나 자신이 살아온 집이라는 추억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런 초가집이 우리 산하에서 사라진 것은 새마을운동이 한창 위세를 떨치던 무렵부터다. 효율성만 앞세운 단견이 전국의 초가집을 다 몰아내고 만 것이다. 기와나 슬레이트로 바꿔버린 정책이 이후 한옥에 대한 기억까지 바꿔놓은 셈이다.
하지만 초가집은 장점이 아주 많다. 무엇보다 매력적인 것은 두툼한 지붕의 아름다움이다. 부드러운 곡선은 뒷산의 나지막한 능선을 꼭 닮았고, 그 산들이 품고 있는 무덤들과도 닮았다. 그렇게 두르고 있는 둥그스름한 능선과 초가지붕과 장독대를 만나면 어느 곳이든 우리 마을 같고 우리 집 같아 목이 멜 지경이다. 해질 무렵 거뭇하게 드러나는 초가와 능선과 무덤에 한복의 선까지 겹쳐 보면 우리 민족의 원형적인 미감에 가슴이 다 먹먹해진다.
아름답기만 한가. 초가지붕은 단열과 보온에도 뛰어나다. 여름이면 뜨거운 볕을 걸러 시원하게, 겨울이면 볕을 품어 들여 따뜻하게 할 줄 안다. 한여름에도 대청마루에 누우면 서까래며 대들보며 눈맛까지 시원한 게 피서가 따로 없었다. 게다가 여름밤이면 하얀 꽃을 피우는 박 덩굴을 올리는 운치는 또 어떠한가. 낙안 읍성이나 민속촌, 전라도 돌담 초가마을 등은 그런 초가집 추억의 재현으로 관광객의 발길을 모으고 있다. 거기에 이런저런 전통 행사를 곁들이며 추억을 효과적으로 상품화하고 있는 것이다.
수원에도 초가집을 되살리면 좋겠다. 그것도 화성 안에 말이다. 1970년대만 해도 화성 안에 초가집이 꽤 많았으니 새 한옥마을도 기와집과 초가집의 공존으로 꾸미는 게 옳다. 수원역사박물관 근대기획전과 화성박물관 화성사진전에서 본 초가지붕의 한국적인 아름다움은 그것을 다음 세대에 전해주라고 속삭인다. 그런 일은 기억을 지닌 사람들이 있는 동안 해야 한다. 뜻만 있으면 매년 이어야 하고 화재에 약하다는 단점쯤은 강점으로 삼을 수 있다. 초가집 추억의 상품화 같은 관광 수요 창출의 길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우선 해마다 지붕 잇는 날을 축제화하는 방법이 있겠다. 그 날을 시민과 관광객의 잔치마당이자 아이들의 견학 기회로 삼는 것이다. 술이며 떡 등을 푸짐히 나누고 거기에 어울리는 놀이까지 개발하면 모든 과정을 관광 상품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런 한옥마을이야말로 시너지효과는 물론 화성 전체의 매력과 미적 운치를 높일 것이다. 화성 안에도 이제 정겨운 이마를 맞댄 초가집에서 돌담 너머로 부침개를 나누는 아름다운 마을을 만들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