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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경궁 홍씨는 '비운녀'인가, '강철녀'인가?
정조대왕 을묘년 수원행차 22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혜경궁홍씨와 풍산홍씨'
2015-06-22 13:19:46최종 업데이트 : 2015-06-22 13:19:46 작성자 : 편집주간   김우영

올해는 정조대왕이 어머니 혜경궁홍씨를 모시고 신도시 수원의 화성행궁으로 행차해 회갑잔치를 베푼 지 220주년이 되는 해다.
어머니와 동갑내기인 아버지 사도세자가 살았다면 같이 회갑잔치상을 받았을 아쉬움을, 정조는 아버지 유택이 모셔진 수원에서 어머니 회갑잔치를 베풀어 달래려 하였던 것이다.

이에 수원화성박물관은 혜경궁홍씨와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대가 풍산홍씨의 관련 유물을 한 곳에 모아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보고자 정조대왕 을묘년 수원행차 220주년 기념 특별기획전 '혜경궁홍씨와 풍산홍씨' 전시회를  26일부터 8월 9일까지 수원화성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 개막행사는 메르스로 인하여 취소)

혜경궁 홍씨는 '비운녀'인가, '강철녀'인가?_1
혜경궁 홍씨는 '비운녀'인가, '강철녀'인가?_1

당시 을묘년 수원행차는 6천명이 넘는 수행원을 이끈 조선 역사상 최대 규모의 국왕행차였다. 
이때 한양 도성을 벗어난 최초이자 최후의 왕실잔치인 혜경궁홍씨 회갑잔치가 화성행궁 봉수당에서 성대하게 거행됐다. 정조대왕은 어머니를 기쁘게 해드리고자 그 친정인 풍산홍씨 일가와 친척들도 함께 초대하여 잔치를 즐겼다. 

정조대왕은 이러한 행사를 통해 모든 신료와 백성들에게 자신의 확고한 정치적 입지를 과시하고자 했으며 어버이에 대한 효심을 만천하에 드러내고자 하했다. 아울러 많은 백성과 함께 이 축제를 즐기려 했다. 그야말로 임금과 백성이 함께 어울리는 여민동락(與民同樂)의 축제가 220년전 수원에서 열렸던 것이다.

혜경궁홍씨는 사도세자를 먼저 떠나 보내고, 모진 고초와 온갖 풍상을 겪으며 어린 정조를 잘 보호하여 결국 왕위에 오르게 했다. 그러나 손자인 순조가 왕위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수렴청정하던 반대 정파의 정순왕후에게 핍박을 받아 그 친정인 풍산홍씨가 멸문이 되다시피 하는 고통을 겪기도 하였으나 난국을 지혜롭게 잘 극복했다. 10세때 입궁하여 81세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70여 평생을 궁에서 파란만장하게 보낸 왕실의 큰어른, 혜경궁홍씨는 격동의 세월을 헤쳐나간'철의 여인'이라 부를만 하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수원화성박물관에서는 혜경궁홍씨와 조선을 대표하는 명문대가 풍산홍씨의 관련 유물을 한 곳에 모아 그 의미와 가치를 재조명해보고자 이번 전시를 마련했다. 

이번 전시를 위해 풍산홍씨 후손, 국립중앙박물관, 국립고궁박물관, 삼성미술관 리움, 서울대학교 규장각한국한연구원, 한국방송공사(KBS) 등 20여개 기관에서 다양한 유물과 자료를 제공했다. 전시된 다양한 유물을 통해 정조대왕의 효심과 더불어 그 시대의 찬란한 문화를 느껴볼 수 있다.

특히 혜경궁홍씨가 회갑 기념으로 정조에게 받은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옥인(玉印)'과 '옥책(玉冊)', 그리고 회갑잔치를 마치고 한양으로 다시 돌아가는 모습을 그린, 삼성미술관 리움 소장의 '환어행렬도(還御行列圖)' 등의 보물급 문화재가 최초로 수원시에 대여 출품되어 일반 관람객에게 공개된다. 

◇ 전시기간 : 2015년 6월 26일(금) ∼ 8월 9일(일)
                ※ 개막행사는 메르스로 인하여 취소됨
◇ 전시장소 : 수원화성박물관 기획전시실
◇ 전시내용 : 1795년 수원에서 열린 혜경궁홍씨 회갑 잔치와 그 친정 풍산홍씨 재조명
◇ 전시유물 : <환어행렬도> 등 포함 100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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