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녕사 설경(雪景), 생각을 내려놓다
2013-12-19 17:33:40최종 업데이트 : 2013-12-19 17:33:40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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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밤부터 내리던 눈은 새벽이 되어서야 지쳤는지 잠시 소강상태를 보였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 사뿐사뿐 내리던 눈송이는 어느새 기세를 높였다. 페이스북 친구들이 전하는 소식 역시, 수원지역 곳곳에서 눈 폭탄을 맞고 있다는 이야기가 주였다. 봉녕사 설경(雪景), 생각을 내려놓다_2 12월 중순이다. 눈 덮인 봉녕사는 화선일치(畵禪一致)의 세계를 그리고 있었다. '광교산 봉녕사'라 쓰인 일주문을 지나 '여기서부터 부처님 뵙는 길'이란 글귀를 만난 후 가람으로 향하는데 설경(雪景)속 산사는 거대한 화선지에 일필휘지 그려 놓은 수묵화였다. 황홀한 풍광에 산계를 넘듯 조심스럽게 걸어 들어가는데 그림 속에서 '길없는 길'이란 선(禪) 화두가 툭 불거져 나와 나를 맞는 것이 아닌가. 조금만 더 지체했다면 이미 길은 사람들 발길로 닦여져 감동 없이 그저 그랬을 길이었다. 얼마나 다행인지! 부처님의 올바른 가르침이란 무엇일까. 그리고 인간도 갈망의 몸짓으로 빌고 또 빌면 부처님처럼 해탈이 가능할까하는 생각을 품고 있을 때 경이로운 탄성이 나오는 풍경과 마주했다. 비구니 스님들께서 합장한 채 가람 한 바퀴를 도는 것이었다. 난 그만 건전지 빠진 로봇마냥 그 자리에서 멈추고 말았다. 조금 전, 부처님의 교화 속에서 바람의 조정대로 휘고 굽은 소나무 군락이 하얀 털옷을 걸치고 하늘높이 뽐내던 사찰 입구의 풍경은 깡그리 잊어버릴 정도로 경외심이 드는 풍경이었다. 봉녕사 설경(雪景), 생각을 내려놓다_1 도량 전체도 숨을 멈춘듯했다. 풍경소리도 목탁소리도 염불소리도 사라지고 시끄러운 속세의 소리까지도 매섭게 걷어갔다. 봄의 새싹, 한여름 열기, 가을의 풍경은 온데간데없고 설경 속에서 오직 비구니 스님들의 가사자락만이 사라락 날렸다. 두 손을 공손히 모으고 저 멀리 대적광전으로 향하는 스님들의 뒤를 따라갔다. 마음의 번뇌 따위를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 그저 무아지경인 채로 발걸음이 절로 움직일 따름이었다. 스님들께서 들어선 법당 안에서 끊임없이 염불소리가 새어 나왔다. 불자가 아님에도 법당 끄트머리에 앉았다. 머리를 조아린 후 두 손의 엄지와 검지를 맞잡고 무릎을 꿇었다. 공존의 시간 속에서 속세의 인연에 대한 복을 빌고 살그머니 나왔다. 봉녕사 설경(雪景), 생각을 내려놓다_3 800여년의 세월을 묵묵히 지켜온 향나무가 기다리고 있었다. 늘 이곳에 오면 만나던 노거수였지만 오늘은 무슨 말을 하는 듯했다. 숨죽여 가까이 다가가니 '그동안 무엇을 찾아 그리 헤매고 다녔느냐!'라며 다그치는 소리 같았다. 잠시 졸다 죽비에 세게 맞은 듯 화들짝 놀랐다. 묘엄 스님의 위대함을 찾아가는 것보다도 나의 주변, 그리고 가족들에게 그간 너무 야박하게 대한 것은 아닌지 되돌아보았다. 80점도 줄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쩐지 쓸쓸해 도량 샛길을 따라 나섰다. 자기가 서있어야 할 곳을 잘 알고 있는 곳곳의 사물들이 옴팍 눈을 맞고도 나를 보더니 웃었다. 연꽃사발도, 코끼리 화단도, 얼어붙은 조랑박 우물도, 연지(蓮池)도 모두 '허허'하며 웃더니만 세상을 올바르게 응시하라 타일렀다. 눈 내리는 겨울 산사의 아침은 진실로 황홀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워 손을 비비고 주머니에 넣기를 반복할 정도로 춥지만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한다. 번잡한 일상에서 실로 깨닫지 못하는 것들을 고요한 도량은 우리를 사유의 세계로 인도하기 때문이다. 봉녕사 설경(雪景), 생각을 내려놓다_4 봉녕사는 도심 속 사찰이지만 또한 광교산의 줄기를 잇는 산사의 사찰이기도 하다. 그리하여 불심이 일지 않더라도 마음이 산란할 때 찾아오면 편안해진다. 오백나한도를, 가섭존자를, 화려한 닷집을, 근엄한 부처님을 만나지 않아도 힐링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담백한 산사(山寺)의 풍경이니 말이다. 신앙의 경계를 긋지 않고 언제든지 만나도 참 좋은 곳이다. 집을 나설 때 절름발이였던 마음은 가람을 벗어날 즈음 새의 양 날개가 되어 훨훨 날아가고 있음이 느껴졌다. 아, 설경 속 봉녕사를 찾아 진실로 잘 왔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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