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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 채제공’ 화성박물관 기획전 하이라이트는?
채제공 초상화 3점 놓치지 마시라
2013-12-03 13:25:36최종 업데이트 : 2013-12-03 13:25:36 작성자 : 시민기자   김해자

대한민국을 둘러싼 동아시아 상황이 심상찮다. 일본 아베 신조총리의 행보도 그렇고 중국의 시진핑 외교 전략도 힘의 논리로 갈수록 치우치고 있는 양상이다. 
이들의 패권주의에 우리나라는 안으로부터의 국민적 역랑을 한데 모아 대처해야할 형국임에도 불구하고 '국회해산'이란 말까지 나올 정도로 정국은 혼란스럽다. 국민들은 안중에도 없다는 듯 저들끼리 싸우며 분열과 갈등을 고조시키고 있다.

대한민국 오늘의 현실을 직시할 때 지난 역사를 돌이켜보지 않을 수 없다. 이른바 탕평으로 조선후기 중흥과 개혁을 이끈 영조와 정조의 시대다. 정치통합의 논리로서 신하들을 적재적소에 등용해 정국을 안정세로 이끌며 문화융성의 꽃을 피운 시기였다. 
이를 증명하는 특별전시가 지난달 28일 수원화성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특별 기획전 '번암 채제공' 전시회다. 뛰어난 군주와 명재상의 관계란 바로 이런 것이란 표본을 보여주는 전시로서 불통의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번암 채제공' 화성박물관 기획전 하이라이트는?_1
수원화성박물관

영조와 사도세자 그리고 정조를 두루 모신 조정의 큰 신하였던 번암 채제공, 특별전시 하이라이트를 통해 오늘날 수원시의 위상을 다시금 조명해보는 시간을 가져보자. 
용이 바람과 구름을 얻어서 좋은 기운을 얻었다는 '풍운지회(風雲之會)'의 대명사, 총명한 임금 정조와 어진신하 정약용 못지않게 정조와 채제공의 관계도 각별했다. 내년 2월 2일까지 전시는 이어진다.

평강채씨 명신 채제공은?

전시장 입구엔 '원행을묘정리의궤'에 수록된 그림 한 폭이 관객을 맞아들인다. '총리대신'이란 한자와 호종 옆에 파란색 복식을 착용하고 말을 타고 가는 그림이다. 바로 신도시 수원을 건설하면서 수원부가 화성유수부로 승격되고 초대 화성유수로 임명된 총리대신 채제공이다. 
1795년 정조는 현릉원과 화성행궁 행차를 마치고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제작했다. 도설부분을 채색으로 필사한 화첩으로서 수원화성과 채제공과의 밀접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번암 채제공' 화성박물관 기획전 하이라이트는?_2
번암 채제공의 말탄 모습이 기록된 '원행을묘정리의궤'

번암 채제공은 지금의 청양인 충청남도 홍주에서 지중추부사 채응일과 연안이씨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1743년(영조) 24세 때 문과 급제하여 벼슬길에 올랐다. 17세 때 스승 오광운의 조카딸과 혼인하여 남인을 대표하는 중요인물로 성장했다. 채제공 집안은 일찍이 채유후(1599~1660)와 채팽윤(1669~1731)이 이름을 크게 떨쳤다. 이중 채팽윤의 문하에 드나들던 오광운과 강박에게 수학해 가풍을 이어받았다. 
'.......채시상(1636~1718)-채성윤(1659~1733)-채응일(1686~1765)-채제공(1720~1799)-채홍원(1762~1832)-채과영(1804~1852)-채동술(1841~1881)'로 이어지는 평강채씨 족보와 함께 선조들의 행적을 살펴볼 수 있는 유물들이 다수 나와 있다. 가계도를 따라가다 보면 다소 복잡하지만 역사를 한줄기로 꿰는 재미는 꽤 쏠쏠하다.

채제공은 왜 명재상인가!

번암선생은 선조 중에서 이름을 널리 떨친 종조부 희암 채평윤의 문하생 이었던 오광운과 강박에게 수학하고 또한 성호 이익에게 가르침을 받았다. 더불어 스승 오광운은 정치· 경제· 문화 등 국가전반에 걸쳐 개혁을 논한 유형원을 사숙함으로서 그 개혁적 성향은 곧 번암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정조대에 공노비 폐지, 신해통공 등 주요 개혁을 주도하는 데에 밑거름이 되었다.
당대의 문장가들 특히 남인 시맥의 관계가 학문과 교유를 통해 이어짐을 전시장에 나온 유물들이 말해준다.

'번암 채제공' 화성박물관 기획전 하이라이트는?_3
'번암 채제공' 화성박물관 기획전 하이라이트는?_3

채제공은 부친의 가르침 '매선(每善· 매사에 착하도록 살라)'을 정치에 옮긴 사람이었다. 아버지 채응일의 유언이기도 했는데 그가 지방 수령으로 있을 때에도 백성들의 고통을 아파하고 그 고통을 덜어주기 위해 선행하였다. 그래서 영조 때 도승지에 임명되었음을 차치하고라도 정조대에 와서 삼정승을 두루 거치며 왕의 오랜 숙원사업이었던 수원화성 축성에 앞장서서 추진할 수 있었다. 정조 대 명재상의 반열에 오른 채제공의 역사를 고스란히 반추할 수 있는 화성축성 전시도 볼만하다. 

하이라이트 '초상화 3점' 놓치지 마시라

영조는 번암의 스승이었던 오광운을 심히 아꼈다. 그 영향이 번암선생으로 이어져 청요직을 두루 거칠 수 있었다. 특히 도승지 재직 시 사도세자를 보호(세자의 폐위 비망기가 내려지자 죽음을 무릎 쓰고 철회시킴)한 노력은 후대 정조대에 와서 왕의 최측근에 설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번 전시의 최대 하이라이트는 보물(제1477-1호, 2호, 3호)로 지정된 초상화 3점이다. 번암 초상화는 현재까지 정본 6점, 초본 3점 등 총 9점이 나와 있는데 조선시대 사대대 초상 중에서 가장 많다. 
어진화사(임금의 초상을 그리는 화가) 이명기가 왕의 명으로 그린 '흑단령포본' 1점, 금관을 쓰고 붉은색 조복을 차려입은 '금관조복본' 1점, 분홍색 시복차림에 선추가 달린 부채를 들고 있는 '시복본' 1점이 그것이다. 

'번암 채제공' 화성박물관 기획전 하이라이트는?_4
보물로 지정된 번암 채제공 초상화 3점과 유물들

3점 모두 얼굴색이며 주름 심지어는 검버섯에 하얀 수염, 안감까지 비치는 옷자락의 음영, 문양, 옷의 질감 등 섬세함에 혀를 내두를 정도로 사실적이다. 
한참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당대 명재상의 기백까지 느껴지고, 자태에선 강직함이 묻어나온다. 초상화 3점만 확실하게 감상한다 해도 일부러 낸 시간이 절대로 아깝지 않을 정도로 세계 유일무이한 걸작품이다.

우리 역사와 문화 긍지 속에 단합해야

이외도 전시실엔 번암 채제공과 관련된 호패와 홀, 의궤, 간찰(편지), 고신(임명장), 인장, 족보, 어찰(임금이 내린 글), 현판, 문헌, 문집, 지도 등이 즐비하다. 

이중 '함인록(含忍錄· 원한을 삼키고 분통을 참아야하는 어쩔 수 없는 처지에서 나온 글)'은 정조의 왕위계승을 알린 국서의 내용이 맞지 않는다고 트집을 잡은 청 황제에게 해명하기 위해 사은사로 떠난 132일 동안 중국 북경에서 보낸 소회와 견물을 일기형식으로 쓴 글이다. 번암집 전문에 실려 있는 이 문집의 이름에서 바로 우리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엿볼 수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최우선으로 필요한 부분이 바로 자강(自强)이다. 이 힘은 우리문화와 역사를 사랑하는데서 부터 비롯된다. 군대, 경제, 문화도 우리 힘으로 키우고 비축해야 남들이 깔보지 않는다. 명군 정조와 명재상 채제공의 돈독한 관계처럼 각자 자기의 이익과 주장을 내세우기보다는 인내하는 가운데 공동의 이익을 위하는 지혜로 뭉쳐야 한다. 

안팎의 위기 해결책을 여기 화성박물관 '번암 채제공' 기획전에서 찾아보자. 지극한 선으로 한평생을 살았던 명재상 채제공을 만나 현실의 답을 얻을 수도 있을 듯하다. 

* 2013 수원화성박물관 특별기획전 번암 채제공

-전시기간: 2013. 11. 28(목)~2014. 2. 2(일)
-매월 첫째주 월요일 휴관
-전시장소: 수원화성박물관 기획전시실
-주소: 수원시 팔달구 창룡대로 21(매향동 49)
-문의전화: 031-228-4243

* 특별기획전 연계 프로그램

-명사특강 '조선시대 사대부 초상화의 전개'
 12월 5일(목)/ 오후 1시 박물관 영상교육실

-학술대회 '번암 채제공의 생애와 활동
 12월 5일(목)/ 오후 3시 박물관 영상교육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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