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산에 갔습니다. 시어머님 작고하신 지 벌써 두해가 되었습니다. 시간은 참 잘도 흐릅니다. 개인적으로 막내며느리인 저를 아주 많이 예뻐하셨고 어머님의 손길이 여기 저기 민들레 꽃대 자라듯이 또 올라와서 상추를 먹을 때마다 상념에 젖게 만들었습니다. 그 어머님 기제사가 내일이다 보니 선산에 가게 되었습니다. 선산에서 시부모님을 만나고 오다_1 우리 시 아주버님께서는 지정된 곳에 산소를 다듬고 관리하도록 삽이며 장갑들을 다 챙겨 놓았기 때문에 남편은 무덤위에 비로 인해 파헤쳐져서 보기 흉한 부위에 흙을 다시 덮는 작업을 합니다. 조부님부터 세 번씩 흙을 붓고 차례대로 내려옵니다. 그 모습이 또 가슴이 저며 옵니다. 조상이 없이 우리가 없고 부모님 없이 또한 우리가 없는데 참 많이 지나치고 지내나 봅니다. 일요일 한적한 오후에 시부모님 산소에 다녀오니 마음이 또 그렇게 한결 가벼워지는 것입니다. 가만 보니 외롭지 않도록 들꽃도 참 많이 피어서 우리 시부모님을 지켜 주고 있었던 것입니다. 다른 날보다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어쩜 이렇게 예쁘게 피어서 산소 길을 지켜 주고 있을까. 선산에서 시부모님을 만나고 오다_2 선산에서 시부모님을 만나고 오다_3 선산에서 시부모님을 만나고 오다_4 새삼 고맙고 합니다. 이천만원짜리 가치를 한다는 소나무도 있습니다. 그 소나무 아래에서 지난 어린이날에 벌초도 하고 가족들이 모여서 고기도 구워먹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 했는데 그때 이후 어머님을 뵙게 되었네요. 갖고 간 한라봉을 어머님 아버님 산소에 올려놓았더니 남편이 "그곳은 발바닥 쪽인데" 합니다. "아버님 일어나서 운동하시라고" 하였습니다. 아버님 어머님 발바닥 쪽에 한라봉 한 개씩 꽂아 놓고 신맛이 나지 않기 때문에 잘 드시겠다고 궁시렁 거렸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정말 덧없고 시부모님 너무 보고 싶습니다. 어머님은 막내 집에 자주 오셨기 때문에 더 그립고 얼마 전 딸아이가 "엄마, 오늘 따라 할머니가 더 그리워" 하면서 눈물을 글썽거려서 저도 함께 따라 울었습니다. 시어머님생시에 그렇게 방을 하나 더 있는 곳으로 이사를 가서 어머님 방하나 드리고 싶었는데 항상 딸 방에서 함께 주무셔 딸은 할머니와의 추억이 누구보다 더 진하게 자리 메김 하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작고하시고 이렇게 넓은 집에서 우리 가족만 살고 보니 시어머님 생각이 더 간절합니다. 시어머님께 잘못해 드린 것만 생각나고 시어머님께서 잘해주신 것은 더 생각이 나고 그렇습니다. 내일 제사를 잘 지내고 나면 이젠 무슨 때가 아닌 한 달에 한 번씩이라도 할머니 보러 아이와 손잡고 가는 날을 만들어 보아야겠습니다. 시어머님께서 베풀어 주신 사랑에 비하면 십분의 일도 다 실천하지 못하고 사는데 산소 들러 돌아오는 길에 선배님이 만드신 텃밭에 들렀습니다. 우리 집 베란다 텃밭과 견줄 수 없이 아주 채소들이 잘 자라주어 상추를 뜯었습니다. 내일 제사상에 남편은 생시에 좋아하신 상추를 제사상에 올린다고 합니다. 비록 농사를 직접 지은 것은 아니지만 텃밭에서 직접 딴 상추를 깨끗이 씻어서 올린다고 합니다. 제사상의 음식들이 정말 정성에 의해 잘 차려질 것 같습니다. 산소에 다녀오니 더 마음이 진지해지고 고인의 넋을 기리는 아주 뜻 깊은 날이 되어 버렸습니다. "사랑합니다. 이음전 어머님, 당신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답니다. 항상 우리 가족들 잘되도록 빌고 계실 것이라 믿고 또 그렇게 살고 있으니깐요" 기제사, 선산, 시부모님, 불효, 생시, 남편, 시민기자 김성희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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