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구와 멀어지는 사회는 아픈 사회
치링 타망이 어서 가족을 만나 식구가 되기를 기대한다
2013-04-15 10:25:53최종 업데이트 : 2013-04-15 10:25:53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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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링 타망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집을 나섰다. 치링 타망의 아우와 그의 아들, 치링 타망의 아들이 함께 나마스떼 인사하고 있다. 가운데 치링타망의 조카를 치링은 만나지 못했다. 치링의 아우네 집에서 술을 내리고 있다. 식구가 나눠 마실 술인데 나도 작은 플라스틱 병에 담아 주어 지인과 마셨다. 치링타망의 가족, 그리고 네팔인들의 발전의 기대가 그들의 식구와 가족을 해체시키고 있다. 그러나 나는 네팔인들에게서 더욱 절절한 것을 본다. 이별이 길면 그리움도 깊어진다. 물론 깊고 깊은 이별, 멀고 먼 이별이 영원한 이별을 가져오기도 한다. 성실한 삶을 사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과 식구를 동시에 지켜내는 듯하다. 치링 타망의 가족에 대한 그리움도 그런 것이라 믿는다. 네팔인들의 삶의 모습을 한국 사회의 변화과정과 비교할 때, 매우 어려운 점이 있다. 한국은 단일성이 있다. 한국에도 많은 산이 있지만 비교적 평평한 편이다. 거의 대부분의 지역을 하루면 가고 올 수도 있다. 그러나 네팔은 그런 것이 불가능하다. 한 달을 여행하는 일은 보통이다. 그러나 만약 한국에서 갑자기 한 달을 만나지 못한다면 일을 그만두었거나 실종신고를 해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의 60년대와 70년대쯤으로 비교하기가 쉽다. 주로 사우디로 가고 독일로 갔다. 지금 네팔인들이 한국, 아랍에미레이트, 말레이시아, 이스라엘, 일본, 미국, 영국 등으로 떠나듯 해외로 나가 돈벌이를 하던 시절이다. 그때가 한국사회에 가족과 식구가 달라지던 시기란 생각이다. 가족이지만 한솥밥 먹지 못하던 시절이다. 지금 네팔인들이 그렇다. 사람들은 한솥밥 먹던 사람에 대해 깊은 그리움을 갖는다. 그런 점에서 가족애와 식구애는 또 다른 느낌이다. 식구이면서 가족인 그의 형제와 조카들이 소식을 전한 나를 반겼다. 헤어지는 길에 멀리서 손을 흔들어 안녕을 빈다. 고마운 인사다. 해가 저물어가고 있다. 멀고 먼 산중이다. 저 산들을 굽이굽이 돌아온 길이다. 나는 치링 타망을 대신해 그의 가족과 한솥밥을 먹었다. 한 차례지만 그들과 나는 매우 가까운 가족이 된 느낌으로 헤어졌다. 치링 타망은 한 번도 본 적 없는 그 아우의 두 딸과 아들을 나는 만났다. 내가 사진을 보냈지만 그는 홀로 누군지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지금 네팔인들은 마치 정글속을 헤매고 있는지도 모른다. 가족과 식구의 행방을 찾아 서로 만나느라 말이다. 어떤 사람은 20년이 넘게 가족을 찾지 않고, 어떤 사람은 10년, 5년 헤어져 산 지 1년도 못되어 그리운 가족과 헤어져 살고 싶지 않다며 일을 포기하고 돌아오는 사람들도 있다. 어떤 사람은 불의의 사고로 돌아오기도 한다. 식구이면서 가족인 사람, 식구이지만 가족이 아닌 사람, 가족은 아니지만 식구인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은 식구이면서 가족인 삶을 살기위해 분투하고 있다. 치링 타망도 어서 식구를 회복하기 바란다. 치링 타망의 집을 떠나오는데 높고 높은 험한 산 굽이굽이로 노을이 깊어지고 해가 저물고 있었다. 그가 벌어온 돈으로 새로 지은 집에 이웃해 사는 아우네와 정겨운 삶을 살아가기를 기대해본다. 네팔의 새해 아침이 밝았다. 네팔력으로 오늘은 2070년 1월 2일이다. 그의 가족사진을 카톡으로 받아본 치링 타망은 "형님, 식사하셨어요?"라며 벌써 며칠 째 카톡을 통해 고맙고 기쁘다고 인사를 전해온다. 그리운 식구, 그리운 가족의 얼굴을 보고도 그리 기뻐할 수 있다. 우리는 일상에서 그런 기쁨을 잊어버렸다. 참 많은 것을 가졌으면서 많은 것을 잊고 살고 있다. 나는 이름만 들어도 기쁘고 목소리를 들으면 더 기쁘고 만나면 한없이 기쁜 사람들을 가졌다. 내가 그런 사람들에게 기쁨이 되기를 바라며 오늘을 산다. 치링 타망, 먼주 구릉, 써뻐나 타망, 다딩, 식구, 가족, 김형효, 카트만두, 네팔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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