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큰이모부가 폐암 말기로 한달 동안 투병생활을 하시다가 뇌사상태가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돌아가셨다. 아직 60세도 되지 않은 큰 이모부의 죽음은 실로 안타까운 일이었다. 더군다나 이모부가 젊은 시절부터 늑막염, 당뇨병 등의 병치레를 곁에서 해오던 큰 이모의 상실감은 어디에도 비교할 수가 없었다. 사진/김우영 늘 밤잠을 설쳐가며 아르바이트와 공부를 병행하다가 얼마 전에 겨우 번듯한 직장에 취업이 됐다고 기뻐했던 녀석이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예쁜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카톡으로 여자친구 사진을 보내왔었다. 이제 30대초반의 나이가 되어 장가도 가야하고 스스로 자신이 닦아가야 할 길이 구 만리다. 외아들로 누구에게 의논할 상대가 없다는 것이 그에겐 더욱 가혹한 형벌인 거 같았다. 얼마전, 이모부가 뇌사상태로 있을 때 어디에도 속내를 털어놓을 수 없었던 녀석이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와 울면서 차라리 그냥 가시는 게 좋을 거 같다고 했단다. 당사자가 되어보지 않는다면, 누구도 그런 그 녀석의 속내를 손가락질 할 수 없으리라. 새삼 이모부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죽음 후에는 살아온 모든 것들이 수면 위로 떠오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오랜 세월 힘들게 안간힘을 쓰며 살았을 이모부지만 결국 본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얽혀버린 돈 관계 앞에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슬픔보다 살아남은 자의 짐이 커져버린다면 그 죽음은 곧 원망이 되어버리고 만다는 사실을. 돈 앞에 결국 인간의 삶이 이토록 무기력해져야 하는가를 생각하니 힘이 빠졌다. 하지만, 그 역시 인생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누군가 말했다. "인생에서 가장 불확실한 것은 살아있다는 것이고, 가장 확실한 것은 죽는다는 사실이다." 정말 인간이라면 누구나 내 죽음을 생각하면서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 할 것이다. 한 치 앞을 모르니 더욱 더 주변에 베풀고 적어도 남에게 피해는 주지 않도록 살아야겠다. 죽음 뒤에 한줌의 재로 가볍게 훌훌 떠날 수 있도록 말이다. 이모 곁에 있는 가족들이, 이제 집도 절도 없어진 이모를 어떻게 보살펴야 할지 걱정을 하고 의견을 모은다. 지금까지 누나를 죽도록 고생만 시키다가 떠나버린 매형이 삼촌들은 밉다. 큰 삼촌은 이제 더 이상 돈 빌려주면 당장 이혼하게 될 줄 알라는 으름장을 외숙모에게 들어야만 했다. 한동안 외갓집은 이모부가 남긴 부채정리와 보증문제 등으로 정신이 없을 거 같다. 어쩔 수 없이, 돈 때문에 자꾸 언성이 높아지고 힘들어지는 여러 관계들이 있겠지만, 그래도 가족이 있어 힘이 되고 살아갈 희망이 있다고 느끼게 되는 계기가 되길 바라본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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