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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디에 살든 우리는 뭉쳐야 한다
우크라이나 고려인을 만나다(4)-전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장 강정식 교수와의 만남
2010-07-07 08:48:49최종 업데이트 : 2010-07-07 08:48:49 작성자 : 시민기자   김형효

강정식 교수와는 이미 1년전 만난 적이 있다. 또한 '2009까레야다' 우크라이나 거주 전고려인문화축제에서도 만나 잠시 눈인사를 주고받았다. 
필자는 지난 7월 1일 방학 중인 학교에서 만남이 어려웠다. 그래서 고려인 협회 사무실에서의 만남을 기대했었다. 미리 연락을 취했을 때 강정식 교수는 학교가 아닌 사무실에서 만날 것을 제의해왔다. 필자는 당연히 고려인 협회 사무실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도 불발로 끝났다. 그 이유는 강정식 교수를 만나서 알 수 있었다. 

지금 우크라이나 고려인 협회 사무실 겸 우크라이나 고려인 문화센타는 7월 20일 개관예정으로 한창 수리 중에 있다고 했다. 
예빠토리야 한글학교 방학을 맞아 우크라이나에 고려인들과 만나는 인터뷰를 하고 있다는 간단한 인사와 소개를 마치자마자 기다린 듯 이야기를 이어갔다. 

우크라이나 고려인 3만5000명을 대표하는 우크라이나 고려인 협회장으로서 그가 평상시 고민하고 일 해온 이야기들이 쉽게 전해져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다. 그들의 삶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많지 않은 데 관심을 갖고 한국에 소개하려고 한다는 이야기에 할 말이 많은 느낌이었다. 오늘의 이야기는 필자의 질문 내용은 생략하고 그의 말을 옮기는 형식으로 기록하고자 한다.

어디에 살든 우리는 뭉쳐야 한다 _1
필자와 강정식 교수 바쁜 시간을 내어 필자와 만났다. 그의 사무실에서 나눈 많은 이야기들을 다 풀어내지 못하는 아쉬움이 있다. 아직은 편하게 하지 못하는 숨은 이야기들을 나중에 할 기회가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맨 먼저 입을 연 것은 고려인문화센타 수리와 앞으로 문화센타를 운영하는 문제에 대한 이야기였다. 필자는 사전에 문화센타 소식을 모르는 상태였기에 질문조차 하지 못한 이야기인데 현안이어서인지 빠른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최근 대사관을 통해 100여대의 컴퓨터를 기증받았으나, 오래된 중고컴퓨터였으며 상태가 좋지 않다. 필자는 마치 필자가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마음 아프게 하소연을 들어야했다. 

고려인문화센타의 수리가 끝나면 그곳에는 전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 사무실이 입주하고, 도서관을 운영할 것이다. 회의실 겸 강당은 35평 규모로 운영될 것이다. 그리고 주 1~2회 한국 영화를 상영할 수 있는 영사실을 갖출 생각이다. 
화려하지는 않지만 내실있는 문화센타 운영 청사진을 갖고 있지만, 실행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우선 도서관을 운영하려고 하고 준비를 하고 있지만 현재 도서는 100여권에 불과하다. 대학에 있는 책과 대사관을 통해 도움을 요청할 생각이지만 현재로서는 모든 것이 미지수다.

매년 가을 10월 우크라이나 거주 전고려인축제인 '까레야다'가 열린다. 
올해 개최지는 수도 키예프인데 15주년을 맞아 더욱 성대한 행사계획을 갖고 있다. 우크라이나 고려인협회 창립은 1992년에 되었으나 문화축제는 이번이 15주년이다. 이 행사에는 우크라이나의 주요 고려인 거주지를 중심으로 구성된 19개 고려인 지부에서 참여한다. 
올해는 15주년을 맞아 규모 있게 진행할 것이며 먼저 한국음식페스티벌을 열 생각이다. 또한 한복전시관을 열고 한국 화가의 그림을 전시할 계획도 갖고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예산 규모에 따라 조정될 수밖에 없다. 

매년 행사가 열릴 때마다 부득이 한국기업들을 찾아 도움을 요청해왔고 올해도 도움을 요청할 계획이지만, 그 도움이 행사 규모에 비해 너무 미미하다. 
현대, 기아, 엘지, 삼성 등에서 협찬을 해주지만 그것도 수차례 간곡한 청을 넣어 겨우 받아내는 예산 규모가 업체당 1000달러에서 2000달러 정도다. 
매년 1회 열리는 가장 큰 우크라이나 거주 고려인행사라는 점을 감안하면 참으로 작다는 생각이다. 특이한 것은 기업 규모면에서 견줄 수 없을 것 같은 세라젬의료기가 작년 행사에서 2000달러를 내놓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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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식 고려인 협회장 인사 2009년 헤르손에서 열렸던 까레야다(고려인축제)에서 개회 인사말을 하고 있는 강정식 고려인 협회장

격정적인 토로를 이어갔다. 그것이 지금 주요 현안이라서 그런 듯했다. 
이야기를 이어가는 중에도 계속 휴대전화가 울렸다. 마침 니꼴라예프에 고려인 문화센타를 짓는데 그곳에 한국어강사를 보내려고 한다는 영사의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지금 키예프 외국어대에 한 명 지원받고 있는 코이카 단원을 그곳으로 보내면 안되겠느냐고 묻는다면서 심각하고 엄중한 표정으로 난색을 표한다. 
얼핏 불만스런 표정이 비쳐진다. 그 틈에 필자는 다른 사색을 한다. 내년 8월이면 그나마 우크라이나에서 철수하는 코이카 활동 이후에 한국어교육은 어떻게 이어갈까? 그것은 고려인 동포에게도 한글보급을 위해서도 모두 필요한 일이다. 정부 차원에 대책이 필요할 것 같다.

이제 강정식 교수 가족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의 가족들은 대다수 고려인의 이주사로 보면 조금 늦은 이주다. 필자의 기사에서 이어지는 이주사는 개별 가족사 중심의 이야기이다. 그래서 전체 고려인 이주사와 다른 점이 많음을 참고하고 읽어주시길 바란다. 

강정식 교수는 사할린 이주 1세대인 아버지 강해동과 어머니 김학선 사이에 1남 3녀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이주 1세대인 그의 아버지는 충북에서 1942년 사할린으로 이주해와 경남에서 이주해온 김학선을 만났고, 김학선은 이미 결혼을 해서 전남편과 사이에 딸이 있었다고 한다. 둘은 1946년 사할린에서 결혼했고 1948년 강정식이 출생했다. 

위로 누이가 있는데 그 누이는 어머니 김학선이 전남편과 사이에서 태어난 분이다. 그리고 세분의 여동생들은 사할린과 블라디보스톡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들은 모두 대학을 나온 인텔리로 사범대를 나와 교사로 재직하기도 했고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하고 관련분야에서 종사하기도 했다. 

강정식 교수는 키예프 공대를 나와 해당분야 공장에서 20년을 재직하였는데 그 공장에서 10년은 부사장으로 일했다고 한다. 키에프 세라믹 후도레스트이에서 일하다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경제적 침체를 맞아 전공을 바꾸어 독학으로 한국어를 익히고 급기야 키예프 외국어대 한국어 학과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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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춤 추는 고려인 아이들 2009 까레야다(고려인 축제)에서 부채춤을 선보인 고려인 아이들

그의 말에 의하며 1968년까지 사할린과 중앙아시아 일대에 조선학교가 존재했었다고 한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조선학교를 나와서는 러시아어도 안되고 일자리도 못찾아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래서 대부분의 사람이 현지어인 러시아어를 익히고 배우는 대학을 선호하게 되었고 많은 인텔리로 성장하기도 했다고 전한다. 
지금 그가 재직중인 키예프 외국어대의 한국어학과 제자들은 우크라이나 상주기업의 일꾼으로 진출하였고 매년 12~14명의 입학생을 선발하고 있다. 전체 한국어학과 학생수는 70명선이라고 한다. 

지금 그는 슬하에 강루슬란(1975년생, 호텔레지던트 학과졸)이라는 아들과 강빅토리야(1978년생, 한국어학 박사)딸이 있고 둘 모두 가정을 이루었다고 한다. 
그의 딸 강빅토리야도 그의 제자이다. 필자는 고려인 한국어학과장의 아들, 딸이 한글 이름이 없다고해서 그의 딸과 아들에게 한글 이름을 지어줄 것을 제안했다.강정식 교수는 곧 그의 아들과 딸에게 한글이름을 지어주시겠다고 응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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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인사를 나누는 고려인들 2009 고려인 축제가 끝나고 각기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돌아가는 길이다. 서로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는 고려인들......, 그들은 오는 9월 24~25일 예정인 키예프 2010까레야다(고려인축제)에서 다시 만나리라.

필자는 마지막으로 지금 이 시기 가장 바라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 아마도 그의 대답은 우리 모두의 대답일 듯하다. 
"우리는 어디에서 살든(남도 북도 해외도), 조선인, 고려인, 한국인, 북한인이라 불려도 서로 뭉쳐서 살아야한다. 우리 문화를 가르치고 익혀서 문화, 풍습 언어를 익혀서 뭉쳐서 살아야한다." 
그가 한 말은 어쩌면 이 시대 우리 민족 구성원 모두가 가장 듣고 싶은 말, 가장 하고 싶은 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허나 아쉽게도 우크라이나에 살고 있는 고려인들끼리도 서로 알아보지 못하고 만나보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서로의 삶에 바쁜 탓도 있고 신분상의 처지에 자각을 잃은 민족의식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따져보면 조국이 해결해 주어야할 것들은 아닐지? 지금 3만5000명의 우크라이나 고려인 외에도 고려인들이 더 있을 가능성이 많지만 그 통계조차 모르고 있는 현실을 어서 개선해야 할 것이란 생각이다. 필자도 현지의 협회장도 모르는 고려인들을 여러 차례 만난 경험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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