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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러운 삶, 우리 할아버지
의미있는 일생을 살았던 할아버지를 존경합니다
2010-03-11 05:09:12최종 업데이트 : 2010-03-11 05:09:12 작성자 : 시민기자   한인수

며칠전 할아버지의 부고를 받았다. 
올해 86세인 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병치레 한번 없이 건강하게 사셨다. 친가쪽에는 이런 부고가 처음이어서 얼떨떨하기도 했다. 친척이 아닌 지인들의 장례식에는 많이 참석하고 위로를 해보았지만 친가 쪽에 부고를 받기는 처음이었다. 
새벽4시경 문자메세지로 부고를 받은 나는 잠을 이룰 수 없었다. 아내와 상의를 한 후 오전 중으로 고향에 내려가기로 했다. 회사에 경조휴가를 신청한 후 11시경 고향으로 출발했다. 

내려가는 동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그다지 슬프다는 느낌을 받지는 않았다. 
3시간 가량 차로 이동해서 장례식장에 도착하니 가족들이 대부분 도착해 있었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고모들까지 있었다. 
내가 도착했을 때는 입관을 하지 않아서 상복을 입지 않았다. 오후 3시가 되어 입관을 시작했다. 처음 입관하는 모습을 보았다. 아무 느낌이 없었다. 

차가운 스텐레스 받침대 위에 뉘여져 있는 할아버지의 시신은 금방이라도 일어나서 나의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다. 
울음을 터뜨리는 가족들이 있었지만 나는 울지 않았다. 
입관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나는 깜짝 놀라게 되었다. 입관하는 사람들이 할아버지의 관을 태극기로 덮었다. 나는 태극기로 감싼 관은 처음 본다. 할아버지는 6.25에 참전한 국가유공자였다. 그 순간 나는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국가를 위해서, 가족을 위해서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전쟁에 참가했다는 그 사실 때문인지 나는 눈물을 흘릴 수 밖에 없었다. 

자랑스러운 삶, 우리 할아버지_1
할아버지의 합동안장식

3일동안 장례식장을 찾는 손님들은 접대하고 난 뒤 할아버지는 화장터에서 한줌의 재로 남게 되었다. 
국립묘지에 묻히게 될 할아버지의 유골을 들고 국립묘지로 이동했다. 영천에 있는 호국원에 도착해서 절차를 밟았다. 국가유공자였기 때문에 합동안치식을 했다. 
나는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지금 내가 살아있는 것은 과거 할아버지의 헌신과 전쟁참여로 남아있던 후손들의 결실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합동안치식이 끝나고 충령당이라는 납골당으로 이동하는 동안 눈물만 흘렸다. 할아버지의 사진을 고이 안고 걸어가는 동안 하늘에서는 비가 내렸다. 
투명한 유리로 덮여진 할아버지의 납골처를 보고 있자니 웬지 살아계실 때는 좋은 집에서 못 사셨는데 돌아가신 다음에는 아파트처럼 깔끔한 곳에서 지내는 것 같아서 기분은 한결 나아졌다. 
모든 절차가 끝나고 가족들이 집으로 가는 버스에 탑승할 무렵 나는 할아버지의 납골처를 한번 더 찾아가서 인사를 했다.

"할아버지, 그 동안 험한 세상 사신다고 고생 많이 하셨어요. 더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인사드리지 못한거 죄송해요. 할아버지가 의미있는 삶을 산 것처럼 나도 의미있는 삶을 살겠어요. 전쟁이라는 험한 일을 겪고 나서 남겨주신 지금 나의 삶이 결코 헛되지 않도록 열심히 살겠습니다. 할아버지, 고맙습니다. 이젠 편히 쉬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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