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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는 문턱에서
설날 풍경
2010-02-16 10:16:44최종 업데이트 : 2010-02-16 10:16:44 작성자 : 시민기자   심춘자

설날을 하루 앞두고 시골에 계신 아버지께서 직접 전화를 하셨다. 평소 소소한 일에는 엄마가 전화를 하는데 아버지께서 직접 전화를 하셨다는 것은 사안이 중요하단 것이다.  
긴장을 하고 "아버지 무슨 일 있습니까?"하자 아버지께서는 "이번 명절에는 집에 올 생각하지 마라. 눈이 많이 내려서 집에서 꼼짝도 못하고 있다."하신다. 

경상도인 큰댁에 가면서 친정엔 어떻게 해야 하나 결정하지 못하고 있었다. 다행히 명절을 앞두고 눈이 그쳤다는 소식을 동생이 전했다. 
차례를 지내고 형님들도 친정엘 가시고 무작정 도로에 '차들은 다니겠지'하는 마음으로 친정인 동해로 향했다. 늦은 밤길이라 눈이 얼마만큼 왔는지는 가늠할 수 없었지만 천지가  하얗게 변한 것은 분명했다. 
마을로 들어서는 길 양 옆에는 어른들의 키보다 더 높은 벽이 생겼다. 제설 작업을 하고 양 옆으로 밀쳐 논 눈이었다. 

봄이 오는 문턱에서 _1
봄이 오는 문턱에서 _1

타지에 있는 자식들에게 눈길이 위험하여 오지마라는 전화를 돌렸지만 설 전 날 부모님 두 분만 있으려니 "마음이 좀 안 좋았다"는 엄마의 말씀 앞에 사남매가 모두 둘러앉았다. 

눈이 많이 내렸다. 내려도 너무 많이 내렸다. 성인의 허리까지 내렸다고 하니 1미터는 족히 내린 것이다. 그래도 집 앞까지 제설작업을 해주는 세상이라 눈치우기가 많이 쉬워졌다. 
예전에 눈이 이렇게 많이 내리는 날에는 마을 사람들이 모두 나와 눈을 치우지만 하루 종일해야 겨우 사람들이 다닐 수 있는 소로를 만들뿐이었다. 마당이나 집으로 들어오는 입구에는 세배를 하러 온 사촌들이 눈을 치우는 작업을 했다니 여간 다행스런 일이 아니었다. 

봄이 오는 문턱에서 _2
봄이 오는 문턱에서 _2

봄이 오는 문턱에서 _3
봄이 오는 문턱에서 _3

눈이 내린 세상은 아이들이 즐겁다. 오랜만에 사촌들과 만나서 눈사람도 만들었다. 할아버지께서 직접 만들어 준 눈사람 앞에서 눈싸움도 하고 무릎이 푹푹 빠지는 눈밭에서 뛰어노는 것이 시간가는 줄도 모른다. 
눈썰매를 탈 수 있게 만들어 둔 곳에는 덩치가 큰 아이들이 눈 속으로 자꾸 발이 빠져 허우적허우적 거렸다. 비료부대에다 보릿짚을 넣어 만든 썰매는 푹신했다. 체중이 가벼운 어린 조카들이 탄 썰매는 한참을 내려간다. 밀고 구르고 눈밭에서 추운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 엄마 아빠가 놀던 모습을 보는 것처럼 똑같다. 

점심을 먹고 난 아이들은 또 마당에서 이글루를 만들겠다고 삽을 들고 바쁘게 움직이더니 뚝딱 만들어 놓고 이병헌과 김태희가  출연했던 "아이리스"의 한 장면을 만들어 보겠노라고 난리이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눈 집에 들어가 쪼그리고 않아있는 모습이 영락없는 우리가 놀던 옛 모습과 다르지 않았다. 감기 걸릴까 노심초사하는 할머니의 걱정에도 아랑곳하지 않는 아이들은 지금 시간이 살면서 오래도록 가슴에 담아두고 정이 그리울 때마다 꺼내 볼 것이다. 

눈이 내린 마을을 새로 난 소로를 따라 둘러보았다. 소나무 지붕에 무거운 눈 이불이 덮였다. 수 십 센티의 두께의 눈이 너무 무거워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수 십 년을 마을을 지키고 있는 소나무 군락지역은 어떤 산수화보다 더 아름다운 풍경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마을 뒷길은 치워지지 않은 눈으로 더 이상 가 볼 수 없었는데 그곳엔 아름드리 소나무 한그루가 허연 뿌리를 하늘로 치켜들고 쓰러져있다. 과도한 눈 무게에 이기지 못하고 뿌리 채 뽑힌 모양이었다. 

봄이 오는 문턱에서 _4
봄이 오는 문턱에서 _4

하얀 눈으로 덮인 마을은 조용하고 아늑해 보였다. 마을의 안녕을 빌어주는 재실 고목의 위용도 변함이 없다. 재실 지붕의 고드름이 햇빛을 받아 보석처럼 빛난다. 똑똑똑 떨어지는 눈 물이 고드름을 타고 지상으로 내려왔다. 눈으로 보는 세상은 분명 겨울의 한가운데 있는데 절기는 벌써 봄을 달리고 있다. 

벌써 입춘이 지난 지 보름이 되어가고 있다. 눈 내린 하얀 세상에도 새로운 꽃을 피우기 위한 생명들은 일어나고 있다. 이번 겨울에는 유난히 눈이 많이 내렸다. 눈이 많이 내린 그 다음해에는 농사가 대풍이라 했던가? 

올해에는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살기 좋아졌다" "행복하다" 이런 말들을 많이 하게 되길 봄이 오는 문턱에서 생각해 보았다.

설날, 폭설, 눈싸움, 이글루, 심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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