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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하는 청춘] ④ 대기업 때려치우고 산골 간 도시촌놈 이성원씨
2023-02-28 09:21:07최종 업데이트 : 2023-02-27 08:00:07 작성자 :   연합뉴스

시골살이 로망 이루기 위해 2천800시간 교육받으며 꼼꼼한 귀촌준비
생면부지 제천서 이장·법인 대표 등 1인 3역…치유농장 조성 계획
[※ 편집자 주 = 좁아진 취업문과 불투명한 미래 때문에 청년들의 고민이 깊습니다. 치열하게 경쟁하지 않으면 낙오되기 십상이라는 위기의식도 팽배합니다. 그러나 조금은 다른 방식으로 모험을 택하는 젊은이들도 많습니다. 숱한 시행착오를 겪으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현장서 답을 구하는 이들입니다. 연합뉴스는 열정과 아이디어로 똘똘 뭉쳐 꿈을 실현해가는 청년들의 이야기를 총 20회에 걸쳐 매주 월요일 송고합니다.]
(제천=연합뉴스) 심규석 기자 = 2019년 충북 제천으로 귀촌한 이성원(39)씨는 수산면 대전2리 이장을 맡고 있다. 2020년 차린 농업회사법인 팜어스 대표이기도 하다.
평상시 들녘에서 땀을 흘리는 농부 직업까지 합치면 1인 3역을 한다.
미혼인 그는 동트기 전인 오전 6시부터 농사일을 하다가 오전 9시면 팜어스 대표가 돼 농촌관광을 하겠다는 고객들의 신청을 받고, 코스를 구상해 의견도 교환한다.
마을 어르신들의 '호출'이 올 때면 이장으로 변신해 어디든 달려가 일을 도와드리고 건의사항을 모아 수산면에 전달하기도 한다.
얼핏 보면 이 마을서 태어나 자란 토박이처럼 보이지만 인연이 전혀 없던 외지인이다.
그의 삶의 터전은 서울이었다.
오랫동안 다닌 직장은 LG그룹 계열사인 LG CNS였다. 그는 2011년부터 7년간 이곳에서 전사적 자원관리 시스템 설계와 업무분석 컨설턴트 일을 했다.
그 뒤 디지털케이블방송인 옛 CJ헬로에서 1년가량 프리랜서로 일하면서 프로젝트를 수행한 특이경력을 소유했다.
도시에서만 살아 시골생활을 전혀 모를 것 같은 '도시촌놈'이 2019년 돌연 귀촌을 선택했다.
시골에 살거나 농사를 지어본 가족도 없던 터라 주변에서는 그의 농촌행을 뜬금없는 '사건'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귀촌은 그가 대학 시절부터 꿈꾸던 로망 같은 것이었다.
10년 가까운 직장생활 역시 '시골촌놈'이 되는 데 필요한 자금을 마련하는 준비과정의 하나였다.
그는 MZ세대답게 귀촌 준비를 똑소리 나게 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강원도 정선의 지인 농장을 오가며 농사를 배웠다.
정착할 곳을 고르는 데도 신중했다. 전국 구석구석을 직접 찾아 비교한 끝에 충북 최초이자 전국 11번째 슬로시티 인증을 받은 제천시 수산면을 선택했다.
이 지역을 오다가다 봤던 달팽이 모형의 홍보판에 쓰인 '슬로시티 수산'이라는 글귀가 마치 '치유'를 상징하는 것처럼 보였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2017년부터 이곳에 땅을 샀다. 작년까지 산 땅은 5천평에 달했다.
2018년부터 2년간 귀촌을 위한 교육을 차근차근 받았다. 충남 천안의 연암대학교가 운영한 청년창업농 1기, 제천시의 체류형 농업창업지원센터 4기를 수료했다.
충북농업기술원이 운영하는 유기농업대학 일반·심화반에 다녔고, 충북대학교 치유농업교육과 고려대의 복지원예교육을 포함, 농업 관련 여러 분야를 두루 섭렵했다.
작물 재배, 과수 재배, 가공, 마케팅, 회계 등과 관련한 수강 시간만 무려 2천800시간에 달할 정도다.
"기초가 없어 배워야했지만 마을에서 함께 지낼 어르신들이 하시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서라도 공부를 해야 했다"는 그는 이젠 농업기술센터에서 귀농·귀촌 강의를 할 정도로 수준이 높아졌다.
귀촌 5년차에 접어든 지금도 늦은 밤까지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성공한 귀촌 모델이 되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그는 5천평의 밭에서 방풍나물, 당귀, 곰취, 눈개승마, 두릅, 둥굴레, 옥수수, 감자 등 다양한 약초 작물을 재배한다. 1천400평의 과수원에서 복숭아 농사도 짓는다.
생산한 농작물은 폭넓은 인맥을 활용해 전량 직거래한다. 택배 발송이 아니라 서울이든, 부산이든 직접 배달하는 대면 서비스를 한다.
배달 이튿날에는 고객들에게 일일이 전화를 걸어 상품 상태나 만족도 등을 확인할 정도로 품질로 승부를 건다. 하자가 있을 경우 두말 않고 환불해 주다 보니 이제는 농산물 출하기에 맞춰 주문이 쇄도할 정도로 단골 고객이 늘었다.
여행을 좋아해 30여개국을 다녔다는 그는 2021년 농업회사법인 팜어스 명의로 농촌관광사업인 '농촌애(愛)올래 프로그램'도 시작했다.
정해진 코스에 맞춰 관광객들이 함께 움직이며 식사를 하고 체험도 하다가 숙소에 들어가 잠을 청하는 틀에 박힌 농촌관광이 아니다.
숙박, 식사, 체험, 관광 등이 모두 포함된 맞춤형 패키지 관광 프로그램을 고객들에게 제공하는 것인데, 산이 좋다면 산을 중심으로, 호수가 좋다면 호수를 중심으로 코스를 짠다.
나물반찬이든, 고기반찬이든 원하는 음식도 반영한다.
코스 예약과 고객 상담은 그가 혼자서 전적으로 맡는다.
고객들의 기호를 감안해 초안을 만들어 보낸 후 여러 차례 수정과정을 거치면서 숙박, 식사, 체험, 관광 코스를 확정하는 형태여서 만족도가 매우 높다.
그는 "남쪽의 청풍호를 중심으로 여행했다면 다음에는 박달재, 의림지를 중심으로 방문해 달라고 권유한다"며 "한번 다녀간 관광객을 다시 만날 때 정말 일할 맛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요즘 월악산 자락의 골뫼골 체험휴양마을, 산과 하천이 어우러진 명암산채건강마을 등과 협약을 통해 농촌관광의 폭을 넓히고 있다.
귀촌에 성공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그는 또다른 꿈을 키우고 있다.
치유농장을 만들기 위한 10개년 계획을 수립한 것이다.
외지인들이 밭에 심어진 농작물을 구경하면서 대자연과 호흡하고 산책도 하면서 일상생활의 스트레스를 털어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작년에는 농촌지도사들의 조언을 받아 5천평의 밭 한가운데 연꽃을 심을 물웅덩이도 직접 만들었다. 올해는 조경수를 심고 야자매트를 깔아볼 계획이다.
이씨는 "팜어스빌리지로 이름 붙인 이곳을 10년간 가꿔볼 생각"이라며 "이것저것 하며 자신감이 생긴 만큼 이제는 제천 최고의 치유농장을 만드는 꿈을 꾸고 있다"고 말했다.
ks@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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