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하늘이 연출하는 백설(白雪)의 축제
2008-02-26 17:46:34최종 업데이트 : 2008-02-26 17:46:34 작성자 : 시민기자 윤재열
|
눈이 왔다. 간밤을 틈타 도둑눈이 수북이 쌓였다. 눈이 그린 도심의 풍경이 우리 마음을 촉촉이 적시고 있다. 눈은 고향의 문을 밀고 온다. 눈은 타관에서 지쳐서 헤매는 현대인들의 삶을 푸근하게 감싸주면서 온다. 그래서 눈이 오는 날은 오히려 바람도 따뜻하게 불어온다. 오늘처럼 낱낱의 눈이 수직으로 떨어져 넉넉하게 수평적으로 확산하는 날은 마음속에 따뜻한 화해의 세계가 열린다. 그 따뜻함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의 괴로움을 달래고, 존재에 대한 내밀한 속삭임도 들려주는 공간을 이룬다. 요즘 건조한 날씨만큼이나 무기력한 일상에 빠져 있었다. 글을 쓰는 것조차 두려웠다. 글이란 진솔하게 마음을 엮어내는 것인데, 내 스스로 무기력하게만 느끼는 삶을 남에게 보이기 두려웠기 때문이다. 눈이 오면서 잡초만 무성했던 마음조차도 포근해졌다. 순백의 공간이 나의 영혼을 씻어내고, 군색했던 삶도 은빛으로 응결시키고 있다. 이렇게 눈은 새로운 존재로 화(化)하는 미학이 있다. 나뭇가지에도 신비와 경이로 눈꽃이 피었다. 누가 이보다 더 아름다운 무채색의 채색을 연출할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림에 대해서는 문외한이지만 동양화를 선호한다. 특히 눈이 온 그림은 그 여백이 주는 섬세하고 투명한 서정이 나 자신을 관조의 세계로 한참을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그래서 연초에 달력을 걸 때도 눈이 온 그림을 찾아서 건다. 눈이 온 세상을 흰색으로 장식했다. 꼼꼼하게 빈 곳이 없이 백설의 가루를 평등하게 뿌렸다. 하늘이 내리는 눈은 차별하지 않는다. 어디든 내리고, 또 누구에게나 똑같이 내린다. 눈은 온 세상을 하야 빛깔로 장식하는 듯하지만, 한편 생각해보면 눈은 세상의 온갖 대상을 소멸시키는 역설적 존재이다. 눈 오는 날은 온 세상을 투명화 시켜서 그 모든 것을 무(無)로 변용시킨다. 2월, 때 늦은 서설이 우리 곁에 왔다. 메마른 대지를 적시고 있다. 이것이 생명수가 되어 올 봄은 더 빨리 올 것이다. 겨우내 언 땅에서 몸을 움츠리고 있던 새싹들이 갈증을 이기고 3월의 봄을 힘차게 열 것이다. 연관 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