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짓기 심사를 하러 갔다. 단체를 밝히기 곤란하지만 정부 기관이었다. 그리고 꽤나 상급 단체였다.
나란 위인은 이런 부탁을 받으면 정확한 시간에 도착하려고 마음먹고 여유 있게 나선다. 이는 평생 교직 생활을 하면서 생긴 버릇이다. 이날도 30분이나 일찍 도착했다. 밖에서 기다리기 추워서 사무실에 들어갔다. 업무 관계자를 만나서 차를 마시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관계자가 심사의 공정성을 위해서 선생님을 세 분 모시고, 문인협회 회원을 세 분 모셨다고 한다. 계속해서 초.중.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것이기에 교육청 협조를 얻어 선생님을 모셨고, 또 전문성 확보를 위해서 문인협회에도 초청을 했다는 이야기다. 이 말에 내 말을 덧붙이고 싶었는데 심사위원이 하나 둘 도착하면서 전달하지 못했다. 지금도 아쉬움이 남는데 이런 생각이 그때의 경우만 아닌 듯해서 지면을 통해서 밝혀두고자 한다. 먼저 문인이 글짓기 심사를 하는데 전문가라는 생각에는 이의가 없다. 하지만 문인들에게는 심사비를 많이 줘야 하는 부담이 있고, 교사는 그렇지 않아서 편하다는 데는 마음 한 구석이 꺼림하다. 그들은 글짓기 심사에서 문인과 교사를 놓고 확고하게 전문가와 비전문가로 구분하여 말한다. 심사비도 차별하는 것에 대해 정당하게 생각한다. 이번뿐이 아니다. 비슷한 경험이 많다. 이런 데는 이유가 있어 보인다. 필자를 비롯해서 선생님들은 근무하는 학교 이름을 소개를 해도 두루 통한다. 하지만 문인들은 회사에 근무한다고 말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다. 그러다보니 문인은 시인이니 수필가니 하면서 편의상 전업 작가처럼 소개된다. 그런데도 이후부터 필자는 평범한 교사로 못 박고, 문인은 처음 만나는 사람처럼 호들갑을 떤다. 앞에서 이야기 한 것처럼 비교를 하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심사를 하면서 이름을 트고 대화하다보면 선생님들도 모두 등단을 한 작가다. 선생님들은 대학에서 문학 공부를 했다. 비교의 저울에 올리고 싶지 않지만 이왕 이야기가 나왔으니 교사와 문인을 견주면 할 말이 많다. 문인은 글만 쓰지만 문단에 입성한 교사는 글을 쓰고, 아이들에게 글을 쓰는 것을 가르친다. 필자의 공치사나 교사와 문인의 전문성을 저울질 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그러나 선생님은 심사비에 부담이 없는데, 문인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심사비를 많이 줘야한다는 의식은 고쳐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이왕 시작한 김에 하소연 하나 더 풀어놓아야겠다. 살다보면 예의 없고 논리가 부족한 사람들이 많다. 글짓기 심사를 하는데 장학사를 찾고 교감을 찾는 사람들도 그런 부류다. 학력 위조를 한 당사자들이 문제였지만 우리는 실력보다 학력을 중시하는 사회 풍토에 대해서 반성을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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