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세 시대…인생 3모작 시작하는 신중년
일터에서 보람 찾는 실버청년들…배움터지킴이‧조경관리사‧요양보호사로 새 출발
2019-12-23 14:23:19최종 업데이트 : 2020-01-06 09:28:43 작성자 : 시민기자 김연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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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과 한국전쟁의 격동기를 겪으면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우리나라 경제의 기틀을 다졌던 베이비붐 세대가 정년퇴직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정들었던 직장을 떠나고 있다. 퇴직자들은 은퇴 이후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젊은 시절 직장에서 낙오되지 않으려고 치열하게 살아온 그들이 나이가 들어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다. 일부는 운이 좋게 정년퇴직을 하는 사치도 누렸지만 이들 대부분이 또 다른 인생을 살아가기 위해 처음가는 길에 도전하고 있다.
100세 시대다. 장수의 상징이었던 60살 환갑잔치는 옛말이 되었고, 70살 고희(古稀)를 넘겨도 노인정에서는 어린아이 취급을 받는다. 농촌에는 청년회 회원 나이 상한선이 70세라고 한다. 정년퇴직을 하고 60세 이후 인생 2모작을 살고, 다시 인생 3모작(70세를 넘어 경제활동 중인 직장인)을 살아가는 실버청년을 만나보았다. 영통구 매탄동 한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등굣길 신호등을 지키면서 학생들의 안정한 보행을 돕고 있는 '배움터 지킴이' 최아무개(남, 72세,매탄동)씨의 일정을 따라가 본다. '배움터 지킴이'가 초등학교 앞 횡단보도에서 안전한 등굣길을 돕고 있다. "내 나이가 70이 넘었는데 아침마다 아이들을 만나는 일이 즐거워요. 배움터 지킴이 일을 시작한 지 햇수로 7년이 됐어요. 아침 8시부터 학생들의 등교가 끝날 때까지 학교 앞 횡당보도에서 학생들이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게 신호수 역할을 하고 있어요." 최 씨는 녹색신호가 들어오면 큰소리로 "건너세요", 적색 정지 신호 때는 "정지하세요"라고 외친다. 그러면 횡단보도를 건너는 학생들과 대기 하고 있던 운전자들이 경각심을 갖게 된단다. 깃발만 들고 신호를 하는 것보다 큰소리로 외치면 더욱 안전하게 길을 건널 수 있게 될 것 같아 그의 목소리 톤은 높아져만 간다.
등교가 끝나면 학교를 둘러보고 학생들에게 위험이 될 수 있는 것이 없는지 살핀다. 또 학교를 드나드는 학부모와 외부인의 안내를 돕고 있다. 나라의 보배인 어린이들을 돌본다는 자부심은 어느 직업보다 높은 긍지를 갖게 한다. 근무는 두 사람이 오전 8시부터 12시까지, 12시부터 오후 4시까지 2교대로 4시간씩 하고 있다.
최 씨는 젊었을 때 문구점을 운영했다. 그래서 그런지 나이가 들어 아이들을 돌보는 학교 일을 하게 된 것 같다. 사업을 할 때는 영업에 매달려 세월이 어떻게 가는지 몰랐으나 이제는 본인이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다는 보람 속에 하루하루가 즐겁다. 학생들이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자기를 알아보고 달려와 인사를 할 때면 이것이 살아가는 이유 같아 그렇게 기쁠 수가 없단다. 왜 쉬지 않고 일을 하느냐고 걱정인지 핀잔인지 모를 말을 하는 친구도 있지만 "본인이 즐기는 일을 하면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보람 있는지를 몰라서 하는 말"이라고 한다. 학생들이 등교를 마친 9시가 넘어가자 배움터 지킴이 최씨는 앞으로 건강이 허락하는 날까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이 가득한 학교에서 인생 3모작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고 말하며 횡단보도 신호 깃발을 접는다.
젊은이 못지않은 열정으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며 정원사 일을 하는 조경관리사 김학용(남, 73세, 원천동)씨를 작업현장에서 만났다. 나뭇가지를 다듬으면서 조경관리사로 인생 3모작을 살고 있는 김학용 씨. 그는 공공기업 현장관리 업무를 담당하다 60세에 정년퇴직을 했다. 실업급여를 수령하는 동안 제 2인생을 위해 자격증 취득에 도전했다. 식당을 운영해 보려고 조리사 자격을 취득 했으나 자식들과 주변의 만류로 포기하고 전기 자격증 공부를 했다. 6개월 동안 학원을 다녔는데 인문계를 전공해서 인지, 나이가 많아서 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아 중도에 그만 뒀다. 이 같은 과정을 거처 정원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해 조경관리회사에서 제2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시골에서 자연과 함께 자라서 그런지 나무를 관리하는 일이 적성에 맞았다. 남들 보기에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것 같아도 자신의 손에서 다듬어지고 자라는 나무를 바라볼 때 보람을 느낀단다. 이곳에서 65세까지는 근무가 보장되는데, 65세가 넘어서면 촉탁직으로 일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나이가 경쟁력이라는 말이 실감나지만 건강한 마음으로 일할 수 있다는 것에 고마움을 느낀다.
자녀들이 성장하여 가정을 이루어 분가해 살고 있으니 이제는 돈 들어갈 데가 없어 통장 곳간이 차곡차곡 쌓인다. 김씨는 "생활비는 국민연금으로 충당하고 매월 입금되는 월급은 전부 쌓여만 가고 있다"면서 긴 가위로 높은 곳에 매달린 시들은 나뭇가지를 다듬는다.
결혼과 육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정의 울타리를 지키며 평생을 보낸 이옥자(여, 70세, 매탄동)씨는 자신이 아닌 타인을 돌보는 일로 인생 3모작을 살아가고 있다. 맞벌이 부부로 살아온 이 씨는 자식들이 출가 하고, 남편이 퇴직하자 남편과 함께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남편이 실업급여를 받는 1년 가까이, 국내는 물론 해외까지 그동안 다니지 못했던 여행을 다녔다. 한 환자가 요양보호센터에서 미술치료를 받고 있다. 그러던 중 평소 가깝게 지내온 친구가 거동이 불편한 친정어머님을 돌보아야 한다며 요양보호사 공부를 하는 모습을 접했다. 부모님이 연로하신데다 혹시라도 치매에 걸리면 가족이 돌보는 요양보호제도를 이용하여 친구가 어머님을 모실계획으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그때 친구가 다니던 요양보호사 학원에 등록하여 이론과 실무를 익혀 자격증을 취득했다.
자격증 취득 이후 처음에는 요양보호센터에 취직했지만 얼마 전부터 하루에 3시간 주 5일 근무하는 재가복지 일을 하고 있다. 재가복지는 장애가 있거나 거동이 불편한 사람의 가정으로 출근하여 환자를 돌보는 일이다. 재가 복지 출근시간은 환자의 요청에 따라 오전 오후로 지정할 수 있어 여가나 취미 활동을 할 수 있다.
처음에는 요양보호사 일이 힘들었으나 이제는 환자를 돌보는 직업에 자부심을 갖는다. 일에 대한 자긍심이 없으면 어떠한 일을 해도 힘들다. 남에게 도움을 받을 나이가 되었는데 직업인으로 남을 돕고 산다는 것에 보람을 느낀다고 이 씨는 말한다.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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