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 추8경의 공간적 배경인 용연 중국 북송시대에 시작된 8경 문화는 천년 이상 꽃이 만개해 오늘날에도 우리 주변에서 자주 볼 수 있다. 소수(瀟水)와 상강(湘江)이 만나는 지점 8곳의 절경을 그린 소상팔경도(瀟湘八景圖)가 그 시원인데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 폭넓게 확산되어 우리의 문화가 되었다. 8경 문화는 조선후기에 이르러 우리 강산을 주체적으로 보는 진경문화로 발전하면서 관동팔경, 관서팔경, 단양팔경 등 각 지역의 명승을 그리는 것으로 확산되었다. 정조대왕은 수원화성을 축성하고 수원화성과 신도시 화성의 아름다운 경치, 애민정신을 바탕으로 한 정치적 이상향, 발전하는 화성의 모습까지 담아 화성 춘8경, 추8경을 정했다. 한글본 정리의궤에는 화성 16경을 춘추 8경으로 나누어 김홍도가 비단 병풍 2좌에 그렸다는 기록이 있다. 현재 한정품국과 미로한정 두 작품만 남아있다. 수원8경 화산두견의 공간인 화산 숲, 화산에는 융건릉이 있다. 춘8경은 화산서애(花山瑞靄, 화산의 상서로운 안개), 유천청연(柳川晴烟, 버드내에 비갠 후의 아지랑이 낀 경치), 오교심화(午橋尋花, 오교(매향교)에서 꽃을 찾음), 길야관상(吉野觀桑, 관길야(觀吉野)의 뽕을 보는 것), 신풍사주(新豊社酒, 신풍루 앞에서 사일(社日)에 술 먹는 경치), 대유농가(大有農歌, 대유평(大有坪)의 농사하는 노래), 화우산구(華郵散駒, 영화역(迎華驛)에 말을 풀어 놓음), 하정범일(荷汀泛鷁, 연꽃 물가에 채일(채색 배)을 띄움) 이다.
추8경은 홍저소련(虹渚素練, 화홍문 물가에 흰 깁을 편 듯함), 석거황운(石渠黃雲, 만석거의 누른 구름), 용연제월(龍淵霽月, 용연의 개인 달), 귀암반조(龜巖返照, 귀암에 도리어 비치는 경치), 서성우렵(西城羽獵, 서성 밖에서 화살을 꽂고 사냥하는 경치), 동대화곡(東臺畵鵠, 동장대의 새를 그린 솔(과녁)을 쏘는 경관), 한정품국(閒亭品菊, 미로한정(未老閒亭)에서 국화를 품평함), 양루상설(陽樓賞雪, 화양루(華陽樓)에서 눈을 보는 경관) 이다. 수원8경 팔달제경의 공간적 배경인 팔달산, 용도의 소나무 숲에서 불어오는 솔바람이 시원하다. 정조대왕이 명명한 화성 춘8경, 추8경은 100여 년의 세월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수원8경으로 자리 잡았다. 추상적인 내용은 빠지고 수원의 아름다운 경관이 추가되었다. 처음에는 의도적으로 정한 것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수원의 백성들 입에 오르내리는 풍경으로 정리된 것으로 보인다. 1912년 4월 7일 매일신보에 이원규의 수원팔경가가 실렸다. 화성 춘8경, 추8경이 수원8경으로 정리된 최초의 기록이다.
화산두견(花山杜鵑, 화산 숲속 두견화 위에서 슬피 우는 두견새 소리), 나각망월(螺角望月, 동북공심돈 위로 뜨는 달맞이), 화홍관창(華虹觀漲, 화홍문 7칸 홍예 수문에서 쏟아지는 물보라), 남제장류(南堤長柳, 수원천 긴 제방에 늘어진 수양버들), 북지상련(北池賞蓮, 만석거에 핀 아름다운 연꽃), 광교적설(光敎積雪, 광교산에 쌓여있는 흰 눈), 서호낙조(西湖落照, 서호의 저녁노을), 팔달제경(八達霽景, 팔달문에서 바라본 팔달산의 비갠 후 풍경)이 수원8경의 원형이라 할 수 있다. 수원8경 화홍관창의 공간적 배경인 화홍문 사카이 마사노스케(酒井政之助)의 '발전하는 수원(1914)'과 '수원(1923)'이라는 책을 통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수원에서 회자되던 수원8경의 일부를 일제가 교묘하게 왜곡했다는 사실이다. 1913년 후지노란 자는 화산두견(花山杜鵑)을 화산척촉(花山躑躅)으로, 팔달제경(八達霽景)을 팔달제미(八達霽美)로, 나각망월(螺角望月)을 나각대월(螺角待月)로 바꿨다. 1914년 사카이란 자는 팔달제경(八達霽景)을 팔달청람(八達晴嵐)으로, 화산두견(花山杜鵑)을 화산척촉(花山躑躅)으로, 나각망월(螺角望月)을 용지대월(龍池待月)로 바꿨다.
수원8경 중 3경의 명칭이 바뀌었는데 화산은 사도세자의 묘가 있는 공간이고, 팔달산은 수원화성과 화성행궁의 주산인 공간이고, 동북공심돈은 수원화성의 상징적인 공간 중 한곳으로 수원의 정체성과 정신문화적으로 중요한 공간이다. 한자의 뜻으로 보면 큰 차이가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자연적이면서 자주적으로 만들어진 명칭이 일제의 우리 정신문화 말살이란 기조가 반영되어 폄하, 변형, 왜곡된 것이다. 이후의 수원8경은 조선의 친일파 지식인들과 멋도 모르고 부화뇌동한 자들에 의해 일제가 교묘하게 왜곡한 수원8경을 오늘날에도 앵무새처럼 반복하고 있다. 수원8경 북지상련의 공간적 배경인 만석거 수원시청 홈페이지에서 수원8경을 제1경 광교적설(光敎積雪), 제2경 팔달청람(八達晴嵐), 제3경 남제장류(南堤長柳), 제4경 화산두견(花山杜鵑), 제5경 북지상련(北池賞蓮), 제6경 서호낙조(西湖落照), 제7경 화홍관창(華虹觀漲), 제8경 용지대월(龍池待月) 이라 소개하고 있다. 일제가 왜곡한 수원8경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어 오류의 확대 재생산이 이루어지고 오늘날 많은 수원시민이 왜곡된 수원8경을 말하고 있는 현실이 안타깝다.
화성성역의궤에 '용연(龍淵)'이란 용어가 8번 나오지만 용지(龍池)라는 표현은 단 1번도 사용하지 않았다. 두견화(杜鵑花)는 진달래꽃 이지만 척촉(躑躅)은 철쭉꽃이다. 우리가 언제까지 아무생각 없이 일제의 잔재물인 수원8경을 말해야 하는지 안타깝다. 혹자는 수원8경이 뭐가 중요하며, 용어가 바뀌면 어떠냐고 말하기도 하지만 우리 정신문화 뿌리는 우리가 자각해야만 찾을 수 있는 것이다. 나라를 잃고, 역사를 잃고, 정신문화를 잃어버려 우리가 무엇을 잃어버렸는지도 모르고 살았던 시절도 있었지만 친일 잔재를 척결하면서 우리의 정신문화를 되찾고 있다. 정신 차리고 우리 선조가 만든 수원8경을 말할 때이다. 수원8경, 화산두견, 나각망월, 화홍관창, 남제장류, 북지상련, 광교적설, 서호낙조, 팔달제경, 한정규 연관 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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