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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져 가는 용사들을 찾아서. 한국전쟁 참전여군 김정순 여사
“함께 훈련받던 우리 동기들 찾고 싶어요”
2021-06-24 14:21:16최종 업데이트 : 2021-06-24 14:54:42 작성자 : 시민기자   김낭자

6.25 참전용사 김순임어르신

6.25 참전용사 김정순 어르신

 

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군대에 자원입대한 참전용사가 있다. 곱디고운 18세 나이, 단발머리 소녀는 이제 지팡이에 의지 한 채 지난날 전쟁통속 이야기들을 꽃피웠다. 호매실동에 살고있는 김정순씨(89)를 만나보았다.

 

대한민국 예비역 하사 김정순

수원 토박이인 김정순씨는 여섯 딸 중 셋째였다. 꽤 부유했던 집이었다. "아버지는 통장도 하고 대한청년단 단장도 하셨어요. 어느 날 수원에서 여군을 뽑는데 장소가 아버지 사무실이었죠. 아버지가 '너 한번 나가볼래?' 물으시길래 겁도 없이 '그래요. 내가 나갈게요!' 했어요. 참 무서운 게 없던 나이였어요."

 

그렇게 입대하게 됐다. 그녀 나이 18세. 입대 초에는 후회도 많이 했다. "훈련이 고됐죠. 비상이다 집합이다 불려나가고 상관에게 맞기도 많이 하고. 내가 왜 이 고생을 사서하나 싶다가도 또 동기들과 지내면서 잊고 그랬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때가 좋았다고 말한다.

 

한창 전쟁중인 시기 훈련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 피난 갈 때 군대생활을 시작했지만, 항상 앞서 훈련받았다. "무섭지 않았어요. 겁나고 무섭고 그런 것은 없었어요."

 

수원에서는 6명이 같이 입대했다. 당시 서울 종로국민학교가 여군 훈련소였다. "200명 정도 모였던 것 같아요. 훈련소에서 1년 정도 훈련을 받고 배치가 됐죠" 주로 부대 행정이나 사무보조를 담당했다. "저는 사단장님 심부름을 많이 했어요. 사단장님이 나타나면 바짝 긴장하던 기억이 생생해요."

 

힘든 훈련 과정을 버틸 수 있던 건 동기들 덕분이었다. 친하게 지내던 동기가 언제부터인가 연락이 안 된단다. "어디로 이사를 갔는지 소식을 알 수 없네요. 같이 훈련받고 밤이면 막사에서 이야기도 참 많이 나눴는데 연락이 끊겨 아쉬워요. 성이 최 씨였는데 이름은 이제 기억이 안나요"

 
훈장받고 목에 두르고 사진을 찍은 김정순 어르신

훈장을 목에 두르고 사진을 찍은 김정순 어르신



전쟁 중 오른팔 총상 당해

어느 날, 훈련소에서 중공군이 내려온다는 소식이 들렸다. 며칠 후 집합 명령이 떨어져 연병장으로 뛰어가다 오른팔에 그대로 총알이 관통했다. "기절한 것 같아요. 깨어보니 부산 5육군병원이었어요" 환자들이 너무 많아 급한 사람을 먼저 치료해야 한다 했다. "한참있다 제 팔을 보더니 총에 맞은 오른팔을 치료하기 어렵다고 절단을 해야 한다더군요" 어린 마음에 큰 충격이었다. 이 후 15육군병원으로 옮겨졌고, 다행히 절단 하지 않고 치료가 가능했다.

"얼마나 기뻤는지 몰라요. 이 덕에 국가유공자가 돼서 살고 있지요. 대우도 참 좋고, 그 때 고생한 보람을 느낍니다." 사실 팔꿈치 아래쪽 비스듬히 맞은 총상이 각도만 조금 달랐어도 죽을 수 있었음에도 "그 덕에 이리살고 있다"고 말하는 김씨였다.

 

팔이 불편해 부대에서 제대를 권유했다. 어쩔 수 없이 2년 반만에 제대를 하게 됐다. "팔만 아프지 않았어도 더 복무했을 거라며 아쉬웠다고 말한다. 여전히 총상 입은 팔은 불편하고 힘들다. "오른팔은 한동안 못썼어요. 지금까지 병뚜껑 한 번 제대로 못 땄으니까요. 도와주는 분이 계시니 살아요. 청소, 빨래, 반찬 도움 주니 이렇지 아니면 어떻게 사나 싶어요."

나이가 드니 건강도 안 좋아져 이제는 3일에 한번씩 침을 맞고 물리치료 중이다. 지파이 없이는 걷기도 힘들다.

 

제대 이후 학교로 돌아가지 않고 바로 결혼을 했다. 아들이 내년이면 일흔이라며 웃는다. "군인에게 시집가서 이사를 많이 다녔어요. 양구, 속초 등 안 가본 곳이 없어요. 남편은 대위로 예편했죠. 살면서 고생 안했어요. 스무살에 시집가서 아들 하나, 달 뚤 낳고 잘 살았습니다"

일본에 있는 딸들이 코로나 때문에 1년 넘게 만나지 못해 보고싶다는 김정순씨. "

 
 

6.25 참전용사 김순임어르신

수년이 지났지만, 전쟁에서의 총상이 고스란히 상처로 남아있다



"여군시절 사진이 하나도 안 남았어요. 동기들 사진, 단체사진, 명함만한 사진 다 여기저기 이사 다니면서 없어진 것 같아요. 너무 아쉽죠. 친구들도 그립고..."

 

지난 해 한국전쟁 70주년 기념으로 국가보훈처에서 유공자 문패를 달아주었던 것이 요즘 가장 큰 자랑이라는 그녀.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을 묻자 "하루빨리 코로나가 없어져서 걱정 없이 살고 싶다"며 "모두 건강관리 잘하라"고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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